[우당탕탕 설늙은이] 몸: 아프다 + 머리: 안 아픈데?
내 몸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 내 몸은 아프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약을 먹고 있는 와중이어도 이걸 먹고 정상범위의 수치로 되돌아가면 내 몸은 이전과 같은 상태일 것이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내 몸과 정신에 가득했다. 이 병이 '완치'라는 판정을 받아도 다시 발발할 수 있는 불완전한 완치임에도 나는 그렇게 나를 속였다. 그런 나도 속임 당함에 있어 완전한 합의를 했다. 내가 나와 한 부자연스러운 동의였다. 현실에서는 외국에 나갈 수 없고 여전히 땀을 많이 흘리고 심장의 존재가 느껴졌지만 원래의 나는 운동을 해서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이것은 나로,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의 이상한 통증이나 몸의 반응들이 이를 부정이라도 하는 듯 시위를 해도 나는 그저 그 순간을 지나감으로써 무시하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할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내게 이전과 다른 반응들이 생겨났다. 시끄러운 분위기나 인파 그리고 그 중심에 술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동기 한 명은 유독 내가 술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소위 떠도는 말로 술을 마시고 보이는 진면모를 나누어야만 진짜 친한 사이라는 말을 신뢰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술을 싫어했고 분위기로 마신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논리라면 더 어릴 때 친구들은 친구가 아니고 어른이 되어 술을 나눠야 그제야 친구로 불릴 수 있다는 근거가 이상한 논리가 아닌가.
애초에 몸에 술이 맞지 않아, 늘 거절해 왔지만 그 꾸준한 바람에 응하는 답변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학교 아래에 있는 치킨집으로 가서 치킨과 술을 시켰다. 나름 중간지점이라는 합의점을 찾아 낮은 도수의 술을 시켰다. 역시 낯선 맛이었고 그 분위기도 내게 있어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뻐하는 동기의 얼굴을 보고 이 소소한 것을 바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에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다 먹고 그 길로 집으로 가는 데 몸이 이상했다. 추운 날이긴 했으나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음에도 몸은 으슬거렸다. 그리고 점점 몸살 비슷하게 바뀌었고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반응이 일었다.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이해하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나는 몸이 아프면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뜨끈한 이불에 누워 잠을 청했다. 몸의 통증에 끙끙거리며 잠을 자려고 노력했는데 너무 아팠다. 이 당시 나와 같은 반응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지식인에 찾아봐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딱 한 잔, 그것도 아주 낮은 도수에 술로 인해 삐뽀삐뽀 비상벨을 울리는 몸을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잠들면서 다시는 입에 술을 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또 다른 반응은 치과에서 일어났다. 스케일링만 받으러 갔다 하면 잇몸이 부어있다는 말을 쉽게 들었기에 교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는 하나의 덧니와 조금 삐뚤빼뚤한 아랫니가 있어 스케일링을 받으면 늘 그 부위들이 다른 부위들보다 아팠고 매번 잇몸이 부었다는 말은 언젠가 나이 든 내가 빨리 치아와 이별을 할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진짜 치아로 씹는 고기맛과 가짜 치아를 심어서 씹는 고기맛은 다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에 그런 슬픈 일은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싶었다.
교정 후기를 찾아봤는데 공통적으로 충치가 잘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교정을 하면서 충치가 생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교정 중에는 치료를 할 수 없어서 교정이 다 끝나고 나서야 충치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있었다. 좀 더 내 치아를 사용해 씹어보고자 한 행동이 오히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라면 안 하는 만 못하지 않겠나. 잇몸치료를 해서 깨끗한 구강 환경을 구축한 뒤 교정을 받으러 갈 계획을 세웠다.
스케일링이 샤워라면 잇몸치료는 떼를 미는 과정이 포함된 정성스러운 목욕에 속하는 데 이 조건이라면 교정을 하는 동안에 충치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섰기 때문이다. 나의 이 멋진 계획을 오랫동안 내 치아를 관리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드렸다. 그리고 곧바로 잇몸치료를 위해 마취하고 상하좌우로 구간을 나눠 치료했다.
치료를 하기 위해 마취주사를 잇몸에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손부터 팔까지 벌벌 떨리기 시작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런 적은 없었기에 당황하고 있었던 찰나 치료가 시작되었다. 잇몸과 치아 사이에 끼어있는 어떤 구조물을 빼내는 느낌은 너무 묘한 작업이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자리에서 가시를 발굴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쪽 치료가 끝나고 두 번째 치료가 끝나고 세 번째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쯤에 이 이상한 반응을 이야기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어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적잖은 당황을 하신 것 같았으나 이후 선생님의 대답이 내 몸의 반응보다 더 무서웠다.
"그러면 마취를 하지 말고 할까요?"
정말 헉 소리가 났다. 치과치료를 무난하게 받는 나지만 마취를 해서 치료하는 것을 마취를 뺀다면 분명 후회가 몰아칠 일이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또 적당한 합의점을 찾았다.
"그.. 그러면 조금만 놓을까요?"
적량보다 적게 놓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마취를 맞고 치료를 받았다. 이후 잇몸치료를 끝내고 무사히 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왜 마취에서도 이런 반응이 일어났는지 의문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