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하는 어린 어른
튼 살은 계속 번져만 갔다. 어디까지 가려나 싶을 정도로 붉은색 선은 계속 아래로 향했다. 그 끝 지점은 팔꿈치로부터 손가락 세 마디 정도를 남겨둔 지점에서 멈췄다. 튼살은 붉은색일 때 피부과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들 하지만 이 당시 학교 과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쪽잠을 자고 과제를 쳐내고 졸업작품 준비를 하는 일상이 매일 흘러갔기에 이 치료의 순서가 밀리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1학점을 남기고 졸업을 못한 지인도 봤기에 졸업작품에 더 열을 냈다.
'이번 한 번에 끝을 내리라.'
물론, 너무 선명한 것이라 의식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잠깐 시간을 내서 씻으러 가면 옷을 벗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 너무 선명히 보였기에 둔한 감각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긴 했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으로 병원에 가게 되면 늘 피검사를 해야 했다. 특별히 어떤 것을 추가로 본다고 하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세 병의 피를 뽑았다. 피를 뽑는 것, 주사 바늘이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아무렇지 않았다. 피를 뽑고 있는 과정 전체를 눈에 담는 스타일이라 무서운 것에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바늘을 상상하는 게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시각이 차단되기 때문에 다른 감각에 의존하게 되고 그 다른 감각은 대신 일을 해야 하기에 감각을 더 예민하게 세우려 할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벌게진 피부가 언뜻 보이는 팔을 내어 고무밴드를 팔에 채울 때 보이는 게 싫었다. 그건 누가 봐도 튼 살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기에 반팔 셔츠를 정리하는 척하며 잡아당겨 아래로 내리기 급했다. 그런 나를 보고 채혈해 주시는 분이 안타까움을 표현하시며 내 마음에 공감해주기도 했다.
'이것도 결국 들켰다. 튼 살이 있는 걸 들켰구나.'
가장 가까이, 수많은 환자들의 채혈을 하면서 다양한 병을 봐 왔을 그분의 안타까움이나 공감이 듬뿍 담긴 말은 감사한 말이었다. 나조차 나를 제대로 보지 않았을 때에 나의 아픈 면을 정확히 보는 말은 내 안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리고 감추려 나름 애를 써도 병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너무 쉽게 공개된다는 점이 싫기도 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가지 마음이 들었던 나는 붙여주신 방수 대일밴드를 꾹 누른 채 감사인사를 한 뒤 일어났다. 동시에 옷을 정리하면서 가려서 안 보이게, 안 들키게 꽁꽁 숨겼다. 이미 누군가에게는 들켰지만 남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안 들키면 될 일이라 생각하면서.
이게 그때 당시 초조했던 나의 무의식이 행한 행동으로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과 선택이었다.
쪽잠을 자며 어찌어찌 만든 작업물이 드디어 통과가 됐다. 전시를 했고 대학을 졸업했다. 물론 이때에도 약을 먹는 건 끝나지 않았다. 졸업식은 춥지만 산뜻한 공기가 느껴지던 날에 진행됐다. 더 이상 수업이 없으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학교를 갔다. 몇몇 아이들은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고 있었고 들뜬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전공 교수님들이 상장을 손수 읽고 나눠주시면서 졸업을 축하해 주셨다. 드디어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생각하며 기뻤다. 친한 동기들과 뒤풀이를 다녀오고 집에 도착해서는 일단 푹 잤다. 그간 못 잔 잠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고 또 잤다.
살은 대학에 들어온 직후보다도 많이 쪘긴 했지만 분명 모두가 보는 나는 아픈 곳이 없는 아이로 졸업을 했으리라. 모두가 가장 보통의 선택을 하는 것처럼 삶이란 이런 것이고 계속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요한 엔딩.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