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 ⑬

[우당탕탕 설늙은이]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by Pabe

오랜만에 간 병원은 내게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늘 적응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느 날, 어느 시간 때에 맞물리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아픈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수납처에서 자신을 부르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각각 담당 의사 선생님을 보러 온 환자들이 소파에 다닥다닥 앉아있다. 그 인원을 정량화하라고 한다면 많음과 너무 많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대기는 총 세 번 이뤄진다. 수납처와 혈압체크를 하는 곳 그리고 담당 의사 선생님 방 앞에서 나보다 빨리 왔거나 예약이 걸린 사람들의 뒷모습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그제야 내 차례가 된다. 한국은 빠름이 미학인 나라인데 이 공간만큼은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너무 느리게 흘러서 아픈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대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특히 같은 의사 선생님 방 앞에 몰려 있으면 단박에 같은 병 때문에 온 사람이라는 걸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고, 저분은 너무 늦게 병원에 오셨었나 봐. 눈이 조금 돌출되셨구나.'


이곳의 풍경은 사시사철 눈이 시리고 아프다. 같은 의사 선생님을 보러 온 어린 여자아이와 엄마를 보면 내가 이 병원에 왔던 첫날이 겹쳐진다.


'아아, 엄마랑 왔구나. 앳돼 보이는 게 20대 초반 같은데 빨리 나아서 병원에서 안보였으면 좋겠다.'


친구의 보기 싫었다는 말을 마음에서부터 같은 걸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오래되었다. 환자로 들락날락한 횟수만 세어도 내 직장 연차를 쉬이 넘기에 그럴 만도 한가. 주변에서 도와주어도 새벽에 깨서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남은 구역감과 심장의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 잠을 이룰 수 없는 그 숱한 밤을 스스로 견뎌야 할 통증들과 고통이 있는데 저렇게 마르고 어린아이가 그 지루한 과정에 놓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했다. 엄마의 팔을 꼭 붙잡고 이동하는 여자아이를 보면 많이 슬프다. 그냥 이 병원의 풍경이 슬프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채혈을 하고 약국에서 약을 타간다. 그럼 필시 약봉지는 약봉투에서 미어터질 듯 담겨서 나머지 절반이 채 담기지 않은 상태로 튀어나와 있거나 너무 가뿐히 원기둥의 플라스틱 통에 담겨 약봉투에 약이 담겨 있는지 없는지 모를 묘한 부피감을 보인다. 둘 다 흔하지가 않다.


오랜만에 간 병원은 또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바뀐 상태였다. 두 번째의 명랑하고 쾌활한 어투로 대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의 퇴사에 또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 상태가 되었지만 선생님들의 스타일 차이에서 오는 신선함이 있어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첫 번째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분위기의 선생님이 계셨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특유의 차분한 어조가 많이 비슷했다.


"전에는 한 달이나 육 개월에 한 번씩 왔는데 이제 일 년에 한 번씩 와요."

"음, 차트기록을 보니 일 년이 아니라 육 개월에 한 번씩 오셨네요."


이 대목에서 아직은 내가 병원과 많이 멀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감상 분명 일 년에 한 번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라니 아무리 익숙해졌다 해도 이건 좀 충격이긴 했다. 그래도 현재 내 상태에 대해서 이전과 이후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설명을 차분히 꼼꼼히 설명해 주셨기에 이해하기 좋기는 했다.


"저, 선생님.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심장이랑 갑상선 문제를 발견해서 왔는데 처음 검사했던 병원에서 심장이 부어있다고 들었는데 갑상선이 괜찮아지면 심장크기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나요?"


갑상선은 완치판정을 받았지만 내내 남아있던 의문을 오늘 확실한 답을 들으리라 하는 마음에 질문을 드렸다.


"갑상선 문제가 발생하면 심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심장 엑스레이를 찍어본다고 해서 심장상태를 완전히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엑스레이에 보이는 외형을 보고 설명을 하는 거니까요. 원한다면 심장 검사를 해서 상세한 사항을 보는 게 좋겠죠. 그렇지만 심장 검사 비용이 부담이 되실 수 있어요."


병이라는 건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검사를 해봐야 아는 결과이니 그게 맞다. 조금 답답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 몸의 상태에 중심을 두고 인지할 수 있는 지금의 나에 대해 만족했다. 대단한 포장으로 겹겹이 쌓아 올리지 않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 지금의 나를 나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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