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약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그제야 시간이라는 것을 갖게 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인지 이후인지 의사 선생님의 이제 운동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나 이외의 것에 집중했다. 내가 해야 할 일,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신경 썼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길로 복싱장으로 향했다. 집과는 아주 가까워서 끝나고 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해도 될 만큼의 거리에 있던 복싱장에서 처음 운동을 하다 깜짝 놀랐다. 내 몸이 한없이 무겁고 느렸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한쪽에 있는 유리벽에 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붉은색을 띠는 것이 곧 터질 것 같아 보였다.
운동을 한참 하던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간단한 맨몸운동을 따라 하다가 발목이 반대로 꺾여서 발 보호대를 차기도 하고 손목을 삐끗하기도 하고 허리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감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길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다시 운동을 이어갔다. 살이라는 건 또 쉽게 빠지지 않았다.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대사기능이 무너져 돌아오기는 커녕 너무 앞서나가버린 몸무게에 당혹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운동 시작 이후 네 달 동안 계속 같은 몸무게였다. 언제 빠졌는지 모를 4 킬로그램이 4달 동안 유지되어 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다 그 이후에야 몸무게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찌고 싶어서 찐 살이 아닌데 이걸 스스로 빼야 한다는 것에 억울했다. 내 의견은 깡그리 무시한 몸 혼자 벌여진 일인데 그걸 치우는 건 내가 하라는 것 같은 느낌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기뻤다. 몸무게가 줄어들고 나니 그전에는 버겁게 따라 하던 것이 어렵지 않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몸이 붕붕 뜰 것처럼 가벼웠다. 복싱장을 다니며 친해진 회원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운동하는 와중에도 맛집이야기를 나눴다. 어디가 맛있고 어디는 뭘 잘하는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몸이 되었던 것이다. 내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네일숍을 하던 회원이었다. 원래가 명랑하고 쾌활한 그분은 많은 손님들을 마주하다 보니 그런 것인지 변화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해 줬다. 운동을 한참 하던 어느 때에 그 회원으로부터 낯선 말을 하나 들었다.
"언니는 몸이 약하니까요."
약하다? 누가? 설마 내가? 약하다는 것은 나랑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언어. 겉으로만 봐도 나는 기골장대한 몸이었다. 그 외향을 뒷받침하듯 나는 친구와 똑같은 철봉에 매달렸다 떨어졌어도 몸 어디가 부러지거나 금 간 적이 없는 튼튼한 뼈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약하다고 한다면 누가 믿어줄까. 그런데 그 말은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게 울림을 주는 말이 되었다. 이따금 그때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면 엄마는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약해지지 말라는 말과 너무 새겨듣지 말라고 한다. 엄마의 염려와 연결된 그런 말은 아니었으나 이 말은 내게 있어 가스라이팅도 아니고 어떤 프레임을 씌운 것은 아니었다. 흔히 귀동냥하는 것처럼 우연히 외부에서 흘러들어 온 말에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걸 통해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면 중에 하나를 얻었다. 나에 대한 정보가 문득 이렇게 하나씩 늘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운동해서 10킬로가 빠졌다. 갈 길이 멀었지만 새로 산 바지가 맞는 쾌감도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 10킬로가 빠지니 몸에 대한 욕심이 피어올랐다. 이참에 근육을 다져놓으면 훨씬 좋은 몸이 될 거라는 생각에 헬스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도 집 근처를 알아봤고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헬스장이 있었기에 그곳을 방문했다. 모든 헬스장이 그렇듯 첫 방문에 무료 인바디 검사와 신체능력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설명을 듣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병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들었던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어우, 몸에 투자를 많이 하셨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수치면 심한데요."
전문가의 말이니 애를 써서 다르게 들으려고 해도 완강히 그 말이었다. 너 살이 진짜 많다라는 말을 이렇게 돌려 들을 수 있다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 나름의 노력을 들여 10킬로를 감량하고 방문한 곳에서 아주 차가운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뀐 내 몸 상태에 나의 관심과 애정이 가득했는데 그 한마디에 마치 아주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거기다 대고 내 대사상태나 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그분의 이해를 도운다고 해서 다른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나 깨달음이 있다면 살이 찌면 전후사정은 없이 그저 외견으로만 모든 걸 파악했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후, 나는 혼자 운동을 했다. 하지만 서서히 피어올랐던 내 다짐이 물 한 바가지에 꺼져버렸고 한 번씩 들었던 PT권유에도 도무지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몇 달이 흐르고 코로나가 온 곳에 확산하기 시작했고 누구도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