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 ⑤

[우당탕탕 설늙은이] 어쩔 수 없잖아 고민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고

by Pabe

나의 첫 번째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하얀 분이셨다. 새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는 뒤로 동그랗게 묶은 모습에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분이셨다. 한날은 궁금함에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약을 얼마나 먹게 될까요?"

"이 병은 길어도 1년 정도면 나을 거예요."

그때 물어본 질문은 나를 굉장히 슬프게 한 질문이 되었다. 선생님이 가뿐히 이야기하신 기간을 훌쩍 넘어 29살에 반 정도가 넘어갈 때까지 약을 먹어야 했기에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물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데이터라는 기반이 있는 말이긴 했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나 카페만 찾아봐도 같은 병을 앓았던 분들이 빠르면 몇 개월 안에 약을 끊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데이터 수치라는 탄탄한 신뢰기반에 나는 또 희망과 긍정을 쌓았다.

'이제 곧..나도...곧.'

1년이 지나고 나는 다수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는 걸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긍정 한 줌을 놓지 않은 상태여서 끝을 상상하는 걸 놓지 않았다. 20대의 대부분을 병원과 피검사 그리고 약을 먹는 것이 일상에 추가된 것은 괜찮았지만 약을 줄여가는 과정이 나를 서서히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 상태는 꼭 이것과 비슷했다. 인터넷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보게 된 옛 형벌. 옛날에 행해지던 죄수를 벌하는 방법으로 온몸을 의자에 묶고 머리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고문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똑똑 떨어지는 감각이 몸에 새겨지면 불안감에 사람이 미쳐버린다고 한다.

'아, 어쩜 내 경우와 닮았을까.’

이전의 삶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3알, 3알, 3알, 2알 반, 2알 반, 2알 반, 다시 3알..

병원을 들락날락했던 주기가 짧았던 시절 나의 상태에는 기적이 없었고 늘 보던 수치그래프도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으며 좋지 못한 몸 상태만 확실히 확인하고 오는 텁텁한 일상이 이어졌다. 내가 먹던 약의 개수는 겨우겨우 내려갔다가 가뿐히 다시 증가했다. 곰탱이답게 느린 나의 회복속도와 낮아지는 수치정도에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서서히 메마르고 지쳐갔다. 처음 약을 타러 약국에 갔을 때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 달 치 분량의 약을 세분화시킨 비닐에 넣어 약국 이름과 약의 정보가 쓰인 종이봉투에 터질 듯 담아서 내게 건네주면 무슨 꽃다발을 받은 듯 아래쪽 종이봉투를 움켜쥐어서 받았다. 꽃은 화사하고 향기롭기라도 하지 좀 아프면 3일 치 약을 처방받다가 불현듯 30일 치의 약을 받기 시작하다니 창백한 흰색 알약은 쓸 뿐이었다.


약을 먹게 되고 병원을 다니는 것은 나와 가족만 아는 것이었다. 교수님이나 동기들에게 이야기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나는 너무 잘 깨닫고 있었다. 알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이건 오롯이 내가 나 혼자서 해결할 문제이자 개인사정이라는 네 글자로 끝나는 단출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랬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하고 조언이 필요하면 구하고 강의가 필요하면 듣고 그런데 그 문제가 천재지변이라면 난 신경안 써.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고민해서 뭐 해?"

"그치만..그치만! 그래서 슬프니까 울고 싶잖아."

"울어서 해결이 되면..음..했겠지? 근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잖아."

여담으로 나와 성향이 달랐던 내 동기와 나눴던 문제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 병도 문제에 속했지만 내 생각의 주 흐름은 이런 것이어서 그저 엄청난 약봉지와 피검사를 받아도 나아져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 이성적으로 생각했고 순간 초조함 따위의 감정을 느껴도 별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이었기에 이내 곧 무덤덤해졌다. 이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나는 감정을 둔화시켰다. 바쁜 환경, 내 우선순위를 위하여 이성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을 쫓는 방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삶이란 이런 부분들이 있는 거니까. 나만 아픈 것도 아니고 조금의 유난이라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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