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 ⑦

[우당탕탕 설늙은이] 도망가는 것만이 답이라니

by Pabe

휴학기간이 끝나갈수록 몸의 상태는 꽤 괜찮게 돌아왔다. 워낙 증상들이 큰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만 안 하게 돼도 괜찮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때도 같은 생각이지만 휴학을 하려는 마음을 갖고 행동에 옮긴 덕분에 맘껏 아픈 상태를 신경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개강 후 버스나 지하철도 탈 수 있었고 걸어 다니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나의 이전의 일상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학교 수업은 다음 해가 되면 색다른 수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래학번일수록 코딩을 배우기도 하고 코드를 짜는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했는데 4학년이었던 나는 디자인의 다른 전공학생들과 융합디자인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학기 수업이 끝나고 방학이 되면 이탈리아의 한 디자인학과와 교류하며 디자인 작업을 해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물론, 이 수업을 들으려면 각자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했고 선발된 학생들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해외 중의 으뜸은 유럽여행이 아닌가. 갈 수 있다는데 가야지.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했던 활동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허겁지겁 준비해서 제출을 마쳤다.


이 수업은 다른 디자인 전공생들과 함께 팀작업을 해야 하는 수업이었기에 결과 하나하나가 달랐다. 시각, 영상, 환경, 산업 전공생들의 의견을 모아 단계를 거칠수록 멋지고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 누구 하나 의견을 내지 않는 학생이 없고 마냥 불평불만을 내세워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도 없었다. 스포츠 팀처럼 아름다운 조별과제를 꿈꿨던 나였던지라 이 수업에서의 조별과제가 너무 행복했다. 모든 작업을 정리하여 전시를 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근사한 결과물이었던지라 다른 전공교수님께서도 관심을 가지시기도 했었다.

"이거는 무슨 수업이니? 이렇게 전시해 놓으니까 멋지구나."

이상을 현실로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수업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문제가 터졌다. 어린 나이 덕인지 혹은 나름의 조심했던 덕인지 수치가 떨어졌었는데 수치가 훅 튀어올라 2.5알 먹던 걸 다시 3알을 복용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날 두려움이 몰려왔다.

"선생님, 제가 외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갔다 와도 괜찮겠죠?"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수치가 잘 내려가는 상태였으면 몰라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올라와서 외국 다녀오시는 걸 권할 수 없어요."


비행기 티켓도 끊어놨는데 짐 싸서 가면 되는데 갈 수가 없다. 가면 안 된단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데 기회를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첫 복용약 개수가 3알이었고 2.5알로 내려갔다가 다시 3알로 돌아왔던 것이었다. 그 말은 몸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는 의미였기에 또 엄청 아픈 증상들이 나타날까 봐 한껏 예민해졌다. 내 욕심과 기회에게 안녕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학교로 전화를 걸어 내 상황을 전했다. 보내야 하는 학생 수가 한 명이 빠지게 되다 보니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 수업과 관련된 다른 교수님도 오시고 전체회의가 이뤄졌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은 내게 같은 비행기로 티켓을 끊어 같이 가자고 권유를 해줬다. 고마운 친구들에게 나는 솔직히 내 상태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감췄던 내 상태는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이때 이렇게 될지 몰랐기에 갖은 당혹감과 감사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있는 힘껏 도망가자. 이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방법은 도망가는 거다.'

내 결심은 하나로 모였다. 도망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지만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도망을 가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조언? 해결방법? 아니, 이거는 천재지변급이다.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내게는 무시하고 가는 선택을 할 권리가 애초에 없었다. 친구들에게는 웃는 얼굴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지만 마음은 녹아내렸다.


방학기간에는 수치가 빨리 내려오길 바라며 쉼에 집중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수치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잘 내려오던 수치도 기회도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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