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 있기를
심심해서 채널을 돌려보다가 한 방송에서 정형돈 님이 퀴즈로 우리말 "아름답게"에서 "아름"은 무슨 뜻일까요?라고 문제 내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문제의 정답은 "나"였다.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았다.
요즘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던 고민과도 맞아떨어져서 더 소름이 돋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아기자기한 것도 좋고, 시크한 것도 좋고. 시끄러운 음악도 좋고, 조용한 음악도 좋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남들이 이게 좋다고 하면 또 그게 좋아 보여서 우르르 따라 몰려갔나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취향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저 사람은 본인의 취향을 찾았구나. 나는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도 못 찾았는데 하면서.
다른 친구와 최근에 전화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노트를 펴고 중간에 길게 선을 그어서 반을 나누라고 했다. 그리고 왼쪽엔 내가 뭘 할 때 기쁜지(Spark of Joy)를 적고, 오른쪽엔 뭘 할 때 불안한지 또는 불편한지(Uncomfortable/Uneasy)를 적으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좋은 방법 같아서 몇 가지 적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 할 일을 할 때는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면서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구나. 나는 생각보다 더 계획적인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소위 "취향"이라고 하는 걸 못 찾은 것은 그냥 이게 나라는 사람인 거였구나.
나는 호불호가 극명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새삼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야. 그건 그 사람이고, 이건 나라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들어. 이런 느낌을 차츰 알아가는 중이다. 또 이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볼 줄 알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 감사하다.
혹자는 너무 미래가 안 보이는 20대 후반 청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차근차근 스스로의 인생 단계를 밟아나가는 나 스스로가 너무 좋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또래 젊은이들도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갔으면, 그리고 이런 느낌을 함께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