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릿빛 광택의 갈색 피부, 잘록하고 날씬한 허리, 잘 다듬어진 톱날같은 근육질의 뒷다리... 나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요안이다. 남쪽 상동면에는 평거마을이란 자그마한 산촌이 있다. 평거마을 뒷산을 넘어가면 아름다운 옥산강이 흐르고 있다. 옥산강과 뒷산 사이에는 경사지고 좁은 구릉지가 있는데 나는 이 구릉지의 메주콩밭에 산다.
오래전에는 이 구릉지에 많은 콩밭이며 옥수수밭과 복숭아과수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평거마을 박영감이 경작하는 두어마지기의 이 메주콩밭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평거마을에 주민이 많이 살아 이 구릉지에 논밭이 많을 때는 풀색노린재 무리, 썩덩나무노린재 무리 등 많은 이웃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무리가 유일하다.
우리에게는 불문률이 있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번식해야 한다. 그 선을 넘으면 않된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의 양식은 메주콩 꼬투리이다. 꼬투리에 구침을 박고 즙액을 빨아 먹는데 먹은 부위의 콩은 어쩔수 없이 마르거나 충실하지 못한 쭈글텅이 콩알이 된다. 이 메주콩밭이 외지다 보니 박영감이 신경을 많이 않쓰고 되는데로 가을이 되면 콩을 털어서 수확해 간다. 하지만, 노린재로 인해 콩의 작황이 너무 않좋다고 생각되면 재난이 찾아온다.
박영감이 시끄럽고 낡은 경운기에 방제기를 가지고와 살충제를 뿌리는 날에는 정말 큰일이다. 많은 노린재가 죽거나 운좋게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몇일간 살충제가 묻은 콩을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박영감이 이 외진 메주콩밭까지 농약을 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선까지는 피해가 가지 않게 먹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않된다. 생존의 문제이다. 그러니 항상 맘껏 먹지를 못하고 또 박영감이 가끔 풀메러 올때면 모든 노린재들은 납작 업드려 가슴을 조려야 한다.
그래도 우리 노린재 무리의 우두머리인 대석은 참으로 지혜로운 노린재이다. 위기가 올때마다 우리를 잘 이끌고 다독여 왔다. 가급적 무리지어 날라 다니지 말 것, 하루에 콩 8개씩만 먹을 것, 이른 아침이나 저녁때에만 먹을 것, 전체 모임때는 빠지기 말것 등 생활수칙을 만들어 우리 노린재들을 잘 이끌고 있다.
때론 지나친 식욕을 참지 못하고 콩밭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콩을 찔러대는 통통이 노린재 만오나 한낮에 요란하게 때를 지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어린 노린재들도 대석의 말이라면 군말없이 따른다.
우리 노린재 무리에는 야소란 독특한 친구가 한명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특별하다기 보단 무리에 잘어울리지 못하는 친구이다. 다른 노린재들도 딱히 야소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야소는 다른 노린재에 비해 왜소하고 콩밭보다는 혼자 강가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 한다. 친한 노린재가 없는 야소는 나하고는 가끔 이야기를 한다. 비온뒤 내가 몸을 말리러 양지바른 강가 모래밭으로 나갈때면 야소는 항상 강가를 날아다니고 있다.
“야소, 잘지내니?”
“어 그래 요안.”
“넌 잘 먹지는 않고 왜 맨날 여기서 날아다녀? 않 힘들어?”
“괜찮아. 나는 그냥 여기가 좋아.”
항상 그렇듯. 별로 많은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나도 그저 몸을 말리며 야소의 경쾌하고 가벼운 비행을 쳐다볼 뿐이다.
옥산강 너머에는 지평들 이라는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 평야에는 많은 콩밭과 주변에는 사과, 복숭아, 배 과수원이 셀수도 없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옥산강을 넘어 갈수가 없다. 폭이 넓고 물살이 빠른 옥산강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의 비행 거리로는 그곳까지 한번에 날아갈 수가 없다. 자칫 날개에 힘이 빠져 빠른 물살에 휩쓸려가고 말 것이다.
촌장 대석의 이야기로는 아주 오래전에는 강중앙에 풀과 작은 관목들이 나있는 모래톱이 있어서 이곳에서 모래톱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반대편 강변까지 날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해전 큰 홍수때 모래톱이 쓸려가 유실되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우리가 반대편으로 갈 수 없고 이곳에만 고립되어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노린재도 옥산강이나 지평들 이야기는 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부디 지금처럼 평거마을 박영감이 오래오래 이 자그마한 메주콩밭을 경작해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던, 따가운 햇살의 7월 어느날 기억코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