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정윤은 곧장 화장실로 갔다. 거울 앞에 섰다. 이 집의 유일한 거울. 얼굴에는 여전히 구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타원의 커다란 구멍에 이마부터 눈썹, 눈, 코, 입, 뺨까지 다 잡아먹힌 것 같았다. 손을 들어 턱을 만지작거리자 거울 속의 인간이 구멍의 아래를 더듬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검으면서 흰 구멍의 아랫부분을.
돌이켜보면 자신은 사실 그 얼굴이 사라져서 안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윤정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무의식중에 이렇게 되기를, 아름다운 사람과 얼굴이 뒤바뀌기를 기도했는지도 몰랐다. 거울로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교환의 대가인 걸까.
정윤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었다. 침을 꿀꺽 삼킨 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카메라 앱을 켰다. 셀카라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고 찍을 일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한 적 없었다. 조금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전환한 뒤 자못 어색한 자세로 팔을 들어 스스로를 향해 사진을 찍었다. 낯선 셔터 소리가 목을 간질였다.
이십 분 정도 시도한 뒤에야 제법 자연스럽고 셀카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카메라 소리가 턱 끝을 얼마나 때리던지 얼얼할 지경이었다. 정윤은 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그는 침대 프레임을 살 여유가 없었고, 어차피 조그만 원룸에는 프레임을 놓지 않는 편이 넓어 보여서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둔 채 생활했다).
사진 속의 여자는 정말로 예뻤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치 배우 같았다. 동네 싸구려 미용실에서 만 원 주고 자른 단발머리가 이렇게 그럴 듯하게 보일 수는 없었다. 정윤은 본인의 원래 얼굴을 기억했다. 그 얼굴과 이 얼굴은 같은 종족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구멍이 뚫린 것은 얼굴 안쪽인데, 얼굴의 골격이나 두상까지도 다르게 보였다. 정윤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더 잘 알았다. 변한 것은 이목구비뿐이 아니었다. 머리 전체가 통째로 뒤바뀐 것 같았다.
그런데 얼굴이 완전히 딴판이 되었는데 어떻게 학원 사람들은 다들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걸까? 이목구비는 물론 인상까지 달라졌는데. 그들에게는 본래의 얼굴이 좀 예뻐진 정도로 보이는 것일까? 정윤은 잠시 동안 얼굴이 사라진…아니, 다른 사람과 바뀌어버린 이 현상의 메커니즘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이런 얼굴을 갖게 되다니.
심장 뛰는 소리가 가슴속을 두드렸다. 가볍지만, 길게. 누군가 조심스레 나무문을 두드리는 듯. 정윤은 그날 잠이 오지 않아 동틀 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붙였다.
윤정은 이튿날 곧장 연락해 왔다. 너무나 거침없는 기세에 정윤은 순식간에 그녀에게 휘말렸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나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윤정의 연락이 반갑기도 하고 꺼림칙하기도 했다. 분명히 얼굴을 돌려달라고 하겠지. 난처한 자리가 될 거야. 게다가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그 얼굴을 보는 것 자체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그것을 마주하면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감이 올라왔고,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가슴께를 가득 채웠다. 어찌되었든 마주친 이상 영영 피해 다니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정윤은 어떻게 이 얼굴을 얻게 되었는지 모르니, 돌려주는 법도 몰랐다. 윤정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 보았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별 일 있겠어, 정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출근했다.
“정윤 쌤, 혹시 이번 금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정윤은 들고 있던 학생들의 작품을 놓치고 말았다. 데생 한 뭉치가 좌르르 쏟아졌다. 연필화 십 수 장이 순식간에 바닥을 메웠고, 콘크리트에 종이 부딪는 소리가 정윤의 발등을 때려왔다.
말을 붙였던 지훈은 어이쿠, 하더니 몸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작품을 주웠다. 정윤은 그가 연거푸 이상한 질문을 던질까 두려워 재빨리 종이를 주워 모은 뒤 지훈이 건네는 데생들을 받고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다행히 그는 정윤을 다시 붙잡지 않았다.
남자를 안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윤은 고민에 빠졌다. 생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누군가가 데이트 신청을 할까 걱정이라니. 고작 사흘 전만 해도 배부른 소리 한다며 고깝게 보았을 터였다.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연애 경험은 전무했지만 남자를 대상으로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가 한 번도 남자를 그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던 십대 후반의 자신을 정윤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얼굴로는 절대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없었다. 남자들에게 그는 항상 조롱과 괄시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학창 시절 날이면 날마다 등허리로 날아와 박히던 욕설과 조소, 뺨을 갈기던 경멸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했다.
그 남자가 시간 있냐고 물은 것은 데이트 신청을 하려던 게 맞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정윤의 주말 스케줄에 대해 물어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애당초 잡담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고 말이다. 지레 겁먹기는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었고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지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기분은 좋았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네, 생각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날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래. 남들이 보는 내 얼굴. 내 목 위에, 내 머리에 달린 얼굴이 이것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보면 볼수록 더 눈을 뗄 수 없는, 그 얼굴.
설사 돌려줄 수 있대도 그러고 싶을 리 없잖아.
무심코 뇌리에 떠오른 문장에 정윤은 스스로도 놀랐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윤정이 약속 장소로 잡은 카페는 조용하고 사람이 없었다. 특별히 분위기가 좋거나 커피가 맛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마 내 얼굴로 다니는 게 쪽팔려서 한적한 델 골랐나 봐. 그렇게 예쁜 여자가 갑자기 내 얼굴 같은 걸 달고 다니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양 무릎을 요란하게 두드려 대는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를 삼십 분째 느끼고 있을 때쯤, 윤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후드까지 뒤집어 쓴 모습이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나 자세, 제스처, 그 모든 것이 눈에 설었지만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 얼굴을 머리에 붙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윤은 기다린 것에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불쾌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면 안도한 가슴을 끌어안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얼굴을 돌려내라는 곤란한 요구에 답할 필요도, 역겨운 그것을 다시 쳐다볼 필요도 없어질 터이니.
사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그녀가 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 또 싫지만은 않았다. 고맙게도 모자를 쓰고 왔으니 얼굴을 피하기 쉬웠고,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언제나 예쁜 여자를 동경하고 남몰래 좋아했던 그의 고질병이 도진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비록 그런 꼴이 되어버렸다 해도 원래는 배우처럼 예쁜 사람이니까.
조용히 정윤의 맞은편에 앉은 윤정은 후우, 한숨을 푹 쉬었다.
“도저히 못 살겠다. 진짜. 이대론.”
정윤이 어색하게 웃었다.
“몇 살이에요? 나랑 나이 비슷하죠? 하, 그래두 아줌마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아냐, 차라리 예쁜 아줌마가 낫나? 아, 몰라, 다 싫다 진짜. 내 얼굴, 이제 쫌 돌려줘요. 도대체 진짜아, 계속 모자 쓰고 숨어 다니고, 남친도 못 만나고, 친구랑 술도 못 먹고, 동생은 졸라 놀려대고, 이게 무슨 지랄이야. 정마알.”
“저…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아 진짜, 그게 뭔 소리예요. 모른다니, 말이 돼요? 그럼 이런 일이 그냥 막 벌어진다고? 어느 날 갑자기? 아니 미안한데, 우리 솔직해져 보자구요, 진짜 진짜, 솔직히! 못생겼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긴 쫌 그렇긴 한데, 어쨌든 난 이쁘잖아요 완전. 평범한 수준도 아니고 이런 얼굴이랑 하룻밤 새에 그냥 띡 바뀐다고? 그냥 진짜 갑자기이? 그걸 믿으라구요?”
정윤은 할 말이 없었다. 넉살 좋게 대꾸할 언변도 순발력도 없었고, 무례하긴 해도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신이었더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였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 미치겠다 진짜. 나 이대론 못 사는데. 어떻게 살아 이러고오오…….”
윤정은 후드 안에 쓴 야구 모자의 챙을 잡고 푹 눌렀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어…저……미안해요. 제가 한 건 아니지만. 진짜로요.”
진짜로 미안하다는 건지, 진짜로 내가 한 게 아니라는 건지 정윤은 제 입으로 말해놓고도 헷갈렸다. 어쨌든 원래는 예쁜 여자가 저렇게나 좌절하고 있으니 괜스레 미안하고 딱하기는 했다.
정윤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알자 윤정은 우는 소리를 한참 하더니 돌연 벌떡 일어나 가 버렸다. 아, 몰라, 집에 가고 싶다, 나 갈래요 하며 벌떡 일어났을 때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어깻죽지를 때리던 느낌이 생생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그는 내내 머리가 혼란스러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침대에 누워 윤정을 이해하려 애써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하긴 내가 그렇게 예쁜 여자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위층 집에서 쿵쿵 걸어 다니는 발소리가 정수리를 두드렸다. 정윤은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이젤 앞에 섰다. 지금 구상하는 그림에는 노래가 필요했다. 아주 까맣고 어두운, 우물 속 그림자 같은 노래. 그는 휴대폰의 음악 앱을 켜고 이어폰을 낀 뒤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