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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비둘기 Jan 20. 2023

(3) 얼굴을 잃다





윤정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목덜미를 옥죄어왔다. 밤새 기분 나쁜 꿈을 꾸었나. 항상 별 생각 없이 보던 하얀 천장도 기이해 보였다. 심장이 급하게 뛰었다. 빈속에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매일 귀찮게 굴며 연락해오던 남자에게 쫓기는 것처럼.

평소 같았다면 좀 더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렸겠지만, 그날은 유독 마음이 반쯤 도망간 듯 기분이 이상했다. 윤정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팔을 뻗어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거울을 들었다. 거울 손잡이를 쥐는 감각은 언제나와 같이 친숙해서 기분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거울을 마주한 순간. 그 순간은 며칠째 연달아 꿈에 나왔다. 꿈에서 그 거울 속 얼굴을 보는 순간이면 항상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잠이 깼다. 그렇게 깬 잠은 다시 오지 않아서 꼼짝없이 밤을 새야 했다. 

그때의 느낌……윤정은 눈앞이 아득해지며 몸이 빙글빙글 돌아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는 바닥이 없었다. 그저 떨어지기만 했다. 아래로, 아래로. 또 아래로. 아직 꿈속인가 보았다. 아주 나쁜 꿈. 윤정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말로 옮기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감, 가슴을 조이는 답답한 기분만 남기고 그 내용은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는 그런 꿈.

그는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이불에 문질러 닦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가,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가 떴다. 꿈이 아닐 리가 없는데 꿈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몸을 에워싸고 빙빙 돌았다. 침대 헤드에 기댄 등의 감각, 이불 속에 파묻힌 다리의 감각, 거울을 꽉 잡은 손의 감각, 가슴속을 두드리는 심장의 감각, 말라붙는 입속의 감각. 그 모든 게 진짜 같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했다.

거울 속에는 얼굴이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얼굴의 형상은 있었으나 그 안이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니까 얼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캄캄했고 그 안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검어서, 거울에 이마를 붙이고 들여다봐도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 그것보다도 더 까맸다. 

거울을 내동댕이치고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손끝에 얼굴이 닿지 않았다. 목과 어깨는 잡히고 느껴지는데 얼굴이 잡히지를 않았다. 있는 힘껏 팔을 내뻗어도 손은 허공만 휘저었다. 

윤정은 소리를 질렀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이 감각에 짓눌려 죽어버릴 것 같았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질렀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는 셀카를 찍었을 때 더 심각해졌다. 그런 끔찍한 생김새라니. 윤정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닦고, 눈을 비비고, 스마트폰을 껐다 켜고, 카메라 앱을 껐다 켜고, 심지어 폰을 포맷까지 했다가 다시 사진을 찍어 보았다. 동생인 민정의 핸드폰을 빌려서도 찍어 보았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사진은, 얼굴은 여전히 끔찍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 보여? 라는 울음 섞인 물음에는 언니 얼굴에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 못생겨졌냐, 라며 비웃는 민정의 조소만 돌아왔다.

윤정은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남자친구인 성우의 연락도 무시했고 시끄럽게 구는 동생도 무시했다. 아, 사실 민정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갑자기 못생겨졌다며 고소해하는 게 어찌나 짜증나던지 뺨을 갈겨 버리고 싶었다. 그러잖아도 민정보다 나은 점이라곤 얼굴밖에 없었는데 저 년 잘난 척하는 꼬라지를 어떻게 보지? 부모님은 어차피 너무 바빠 집에서 얼굴도 보기 힘들었고, 윤정에게 관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으니 변한 점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윤정이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집에 칩거하자 다음날 성우가 집에 찾아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치킨 배달이라 지레짐작하고 배달 기사와 마주칠 새라 조심조심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는 남자친구가 서 있었다.

“정윤정. 너 왜 말도 없이 잠수 타?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성우는 살며시 열린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윤정을 보더니 적잖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얼굴이 말도 안 되게 못생겨졌다는 걸 눈치 챈 게 틀림없었다. 사귄 지 삼 년이 넘었더니 멋있어 보일 때보다는 밉게 보일 때가 더 많은 남자친구였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울음이 저절로 터졌다. 

“나, 나, 얼굴이……몰라, 이상해…죽을 것 같애. 죽고 싶어 진짜. 나 어떡해…….”

“야, 잠깐만.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해.”

성우와 윤정은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윤정이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이나 한다며 탐탁지 않아했지만 정작 성우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딸인 윤정보다 성우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민정도 성우를 좋게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히 성우가 좋은 대학에 갔기 때문이었다. 윤정은 미성년자일 때부터 계속해서 자신 한 명만 만나온 것이 성우에게 지겹지는 않은지 이따금 궁금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겨웠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미인이라도 성우만큼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 얼굴까지 괜찮은데다, 속궁합도 성격도 잘 맞는 애를 만나기는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깨달음은 다 경험에서 나왔다. 몰래 몰래 다른 남자들도 만나보았기 때문이었다. 작업을 걸어 오는 남자들은 항상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실은 일일이 거절하는 게 더 어려웠다. 윤정은 이따금 성우처럼 누구나 부러워할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이런저런 경험까지 쌓아 본 자신에게 괜스레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바람은 아무나 피우나?

그러나 이럴 때 함께 있어줄 것은 역시 성우밖에 없었다.

너무나 오래되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익숙해진 남자친구는 윤정의 방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윤정은 먼저 말을 꺼낼 용기가 들지 않아 훌쩍훌쩍 울기만 했다. 조용한 방에 그의 흑흑거리는 울음소리와 코 훌쩍이는 소리만 울렸다.

“야, 일단 울음 뚝 그치고……. 어, 음. 금방 돌아오겠지.”

“언제 돌아오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나 진짜, 이런 꼴로 살기 싫어…. 이게 인간이야? 이게 사람 얼굴이냐고오…진짜.”

“아니, 그 있잖아. 나는 괜찮으니까.”

뭐라고? 귓속으로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이 얼굴이?

“거짓말 하지 마.”

“아니야. 진짜야.”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그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윤정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괜찮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남자친구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다른 날보다 적극적이었다. 성우가 혀를 밀어넣으며 옷 사이로 손을 넣어 팬티 위로 그녀의 성기를 문질렀다. 윤정이 거칠게 숨을 뱉었고, 남자가 하반신을 붙여왔다. 뜨겁고 단단했다. 둘은 누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옷을 벗어던졌다. 


윤정의 방에 있는 전신 거울은 침대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이 방에서 섹스를 할 때면 그 거울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곤 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눈이 갔다. 종종 섹스 자체보다 거울 속의 자신에 더 열중하기도 했다. 흥분했을 때건 그렇지 않을 때건 남자와 몸을 겹치는 자신의 모습은 색달라 보였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스스로 좀 기묘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거울의 방향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성우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윤정은 자연스럽게 거울로 시선을 향했다. 남자의 다리와 뒤엉킨 자신의 가늘고 긴 다리, 먹은 게 없어 쏙 들어간 배가 마음에 들었다. 성우가 그녀의 가슴을 입에 넣었다. 윤정은 간지러움에 웃으면서 그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무심코 다시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거울 한가운데 뻥 뚫려 있는 차갑고 거대한 구멍을 보았다.

“아아악!”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홱 돌렸다. 거칠게 움직이는 바람에 유방을 물고 있던 성우의 머리통을 팔로 치고 말았다. 남자도 놀란 나머지 짧게 아, 소리를 쳤다.

“왜, 왜 그래? 내가 너무 세게 물었어? 괜찮아?”

그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윤정을 붙들었다. 그는 여자친구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많이 아파? 그만할까?” 

윤정은 눈을 꾹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떴다. 여전히 눈앞에서 구멍이 어른거리는듯했다. 성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충격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남자친구가 걱정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아니…그냥 좀 놀라서 그랬어.”

그는 거울에서 멀어지고 싶어 이불을 몸에 덮은 채 침대로 올라갔다. 성우도 따라 올라왔다. 발기한 채였다. 윤정은 이불 속에서 다리를 뻗어 옆에 비스듬히 눕는 남자친구의 다리에 감았다. 성우는 그제야 웃음을 띠며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본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틀째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갑갑해 견딜 수가 없었다. 편의점이나 카페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해가 어느 정도 기울자 윤정은 챙이 긴 야구 모자를 뒤집어쓰고 집밖으로 나섰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길에서 사람을 볼 때마다 욕을 얻어먹지나 않을까 두려워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못생긴 얼굴로 사는 게 이토록 힘겨운 일일 줄이야. 

어찌나 땅만 보고 걸었는지 어디까지 온 건지 가늠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머리를 살짝 들어 카페를 찾던 그때, 그 얼굴이 보였다.


내 얼굴이다.


윤정은 입을 틀어막고 헉 숨을 들이켰다. 온종일 스마트폰의 사진첩으로, 예전 인스타그램 피드로 들여다보던 그 얼굴이었다. 윤정의 얼굴. 세상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되찾고 싶은 그 얼굴. 거울 속 뻥 뚫린 거대한 구멍이 있는 자리에, 원래 있어야 하는 그것.

그의 얼굴을 단 인간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걸이였다. 윤정은 입술을 꼭 깨물고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그 인간은 얼굴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바뀐 건지 모른다고,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시뻘건 거짓말이 틀림없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반드시 꿍꿍이를 알아내어 얼굴을 돌려받겠다고, 이런 끔찍한 짓의 대가도 치르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저 야비한 사기꾼, 도둑의 얼굴일 뿐인데. 

자신의 얼굴……윤정은 셀카를 수도 없이 많이 찍었고 거울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맨눈으로, 현실에서, 직접 스스로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너무나 이상해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은 자신이 알던 것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자신의 얼굴이 어떠한 표정을 짓고, 말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 윤정은 자못 어색하게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그 망할 년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밧줄에 꽁꽁 묶인 것 같았다.

내 아름다운 얼굴. 내가 얼마나 아꼈는데. 몇십만 원짜리 온갖 유명한 세럼, 에센스, 수분크림을 매일 매일 소중히 발라주었고, 선크림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치덕치덕 발랐으며 마스크팩도 이틀에 한 번씩 꼭 해주었다. 생리 기간이 가까워지면 허벅지를 때려 가며 초콜릿과 떡볶이 먹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따금 피부과에 가서 관리도 한 번씩 받았다. 그렇게나 잘해주었는데 저 못생긴 여자에게 홀라당 도망치다니. 떡하니 거기 가서 붙어 있다니. 윤정은 얼굴 생각을 하다가 밤을 꼴딱 새었다.    


      

동이 틀 무렵 간신히 잠들었다가 해가 중천에 뜬 오후에야 일어난 윤정은 방의 거울을 모두 치웠다. 옮길 수 없는 전신 거울은 다용도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보자기 같은 천으로 가렸고, 옷장에 달린 거울은 민정의 방에서 사진 포스터 같은 걸 주워 와 붙여버렸다. 손거울과 탁상 거울은 전부 굴러다니는 쇼핑백에 넣어버렸다. 휴대용 손거울처럼 작은 것까지 다 모아보니 거울이 모두 열아홉 개였다. 팩트나 쿠션처럼 화장품에 달린 건 뗄 수가 없어서 그냥 두었다. 안 열어보면 그만이니까.

이제 최소한 내 방에서는 그 끔찍한 것을 보지 않을 수 있겠지.

구멍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했다. 꿈에도 매일같이 나왔다. 꿈에서 윤정은 구멍에 빠지고, 잠기고, 먹히고, 갇혔다. 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안 되겠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정윤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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