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중간에 내려 어린이대공원에 들렀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우리 집까지는 도보로 가기에 아주 가깝지는 않은 편인데 나는 걷기를 좋아해서 날씨가 좋을 때면 종종 걸어가곤 한다. 그간 겨울의 추위에 굴복해 올해 들어서는 이 길로 퇴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제부터 다시 어린이대공원을 찾기 시작했다.
어린이대공원은 작은 공원이다. 서울숲이나 올림픽공원 같은 공원에 비교한다면, 그리고 이름에 큰 대(大)자가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작은 편이다. 세종대를 마주한 정문에서 선화예고가 있는 후문까지 여자 걸음으로 십오 분도 채 걸리지 않으니 크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쨌든 동네 공원에 비하면 규모가 있고 시립 공원인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평일 저녁 시간 퇴근하고 걷기에 아주 적합하다.
저녁의 어린이대공원을 좋아한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퇴근길 저녁에 여느 때처럼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예쁜 서까래와 기와로 장식된 정문을 넘어가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사를 질렀다.
따스한 노란빛의 가로등들이 물 머금은 공기 덕에 뿌옇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해 진 공원을 밝히고 있었다. 비가 막 그친 터라 치맛자락을 펼치고 있는 상록수들도 어둑한 하늘도 모두 맑고 깨끗했으며 검은 콘크리트 땅은 젖어 있었다. 뒤편의 하늘에서는 조그만 별들이 몇 개 점점이 빛났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린이대공원에 좋은 기억이 많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음식점이고 카페고 죄다 일찍 문을 닫아 아무데도 갈 수 없던 그때에 유일하게 밤 열 시까지 운영하던 곳이 어린이대공원이었다. 당시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와 이곳저곳을 걸었고, 으슥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함께 웃었고 키스를 했다. 차가운 가을날 우리는 더웠다(지금은 헤어진지 오래다).
어느 여름밤 동물원 근처에서는 몇 번 만났다가 어긋났다가 다시 연락이 닿았다가 만났다가 했던 누군가에게서 부끄럼 섞인 고백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그와 사귀지는 않았다).
커다란 나무 아래 오랜 친구와 둘이 드러누워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던, 그러다 송충이를 여러 마리 만났던 다소 싸늘한 봄날도, 혼자 샌드위치와 커피를 싸들고 돗자리를 가져가 파란 하늘 아래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던 따스한 봄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대공원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어떤 누군가가 아니라 그 비가 그친 날의 저녁, 그날의 광경이다. 그저 지극한 아름다움에 오롯이 그 순간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그날 그때. 이따금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이대공원은 언제나 예쁘지만 그날 그 순간의 모습은 그때의 것이었나 보다. 공원의 나무도 가로등도 길도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매일 다르다. 그러고 보면 항상 똑같고 변함없는 것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물건조차 변한다.
베드사이드 스탠드를 켜 놓고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매일 똑같이 똑같은 침대에 눕는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이상하기도 하다.
어린이대공원에서 그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다시 언젠가 마주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날을 세우지 않는 사람, 무던한 사람이 좋다고 하는 말에 그냥 그렇구나 하며 웃기만 했다.
나는 예민하고 예민하고 예민해요. 조금도 무던하지 않아요. 이 발톱 세운 예민함이 나를 할퀴고 할퀴어서 그 상처를 감추려 항상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아침의 명상 없이는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영혼이 많은 공간에서는 금세 탈진해 내 영혼을 잃어버리고, 홀로 앉아 마음속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며 상냥하게 쓰다듬어 준 뒤에야 굉음은 소음이 되어 간신히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사람이에요. 저는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비가 그치니 하늘도 날씨도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올림픽공원에 가서 봄날을 만끽했다. 함께 고기를 먹고 사케를 마시고 칵테일과 케이크를 즐겼다. 별거 아닌 것에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요즘 살짝 다시 불면증 기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불안감이 올라오곤 했다. 이젠 많이 희미해져서 사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불안이지만 일부러 더 느껴보려 명상을 많이 했다. 이 정도 느낌은 무시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러면 얕은 잠을 자는 나날이 더 길어질 것을 안다.
사람들을 만나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그러고 나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이나 불안이 그저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것, 그렇게까지 고민할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만남은 나의 고민과 불안을 더 깊어지게 만든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더 보잘것없게 느껴져 뱃속에 꿈틀대는 자기비하를 감지하며 화장을 지우게 되는 만남도 있다.
반드시 그들이 잘나서 내가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체화된 비교와 초조함이 내게로 옮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으로 있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다. 찾기 어렵지만 있다.
어쩌면 삶이란 건 그냥 그런 사람들을 찾다가 함께하고, 떠나 보내고, 또 찾다가 함께하고, 떠나 보내고, 그러다 언젠간 내가 떠나고, 그러다 마는 것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