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주
5월 첫째 주로 쳐야 하나 4월 마지막 주로 쳐야 하나 조금 고민하다가 달력 상으로는 4월이 나흘 있으니 4월로 치기로 했다.
퇴근길에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그렇다, 그 내향적이며 이따금 명상을 하는 남자와 이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그가 딸기를 샀다기에 나도 문득 딸기가 먹고 싶어졌다. 게다가 이제 딸기가 끝물이라 아주 싸게 파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년 겨울이 될 때까지 더는 딸기를 먹지 못할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딸기가 생각나도 먹기 힘들지 몰랐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과일가게에 들렀다. 저녁 시간이라 이제 막 장사를 접으시려는지 과일이고 야채고 대부분 치워져 있었지만 아직 무언가를 사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이기에 나도 기웃거렸다.
딸기가 보였다. 단 두 팩이 남아 있었고 한 팩에 사 천원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한 팩이 더 놓여 있었는데 좀 무른 것인지 삼 천원이라 적혀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한 팩에 만 원 넘게 주고 샀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사 천원도 거저나 다름없었다. 굳이 삼 천원짜리를 사고 싶지는 않아 사 천원짜리 한 팩을 집어드는데, 정리하고 계시던 직원 분이 말씀하셨다.
“그거 두 팩 다 가져가시면 육천 원에 드릴게요. 그리고 이것도 천 원에 드릴 수 있는데 그냥 다 가져가실래요? 잼 해서 드세요.”
그러니까 칠천 원에 딸기 세 팩을 얻을 수 있는 거였다. 냉큼 좋다고 말하고는 딸기 세 팩을 받아왔다. 검은 봉다리에 담긴 딸기는 꽤나 묵직했다.
순식간에 딸기 부자가 되었다. 무르기 전에 세 팩을 다 먹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정말 딸기잼을 만들어야 했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았다.
딸기잼은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블루베리와 라즈베리로 콩포트를 만든 적은 한 번 있었는데 잼이나 청은 만들어 본 일이 전무했다. 어려울 건 없겠지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샐러드 약간과 편의점 소시지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딸기를 여섯 알 먹은 뒤 다시 팩을 열었다. 무른 걸 최대한 골라내 잼을 만들고 상태가 좋은 것은 그냥 먹을 작정이었다.
삼 천원짜리 팩에도 생각보다는 무른 딸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샅샅이 살펴가며 분류하니 잼으로 만들 딸기가 800그램정도 나왔다. 딸기를 흐르는 물에 두 번 정도 씻은 뒤 식초를 두어 방울 떨어뜨린 물에 담가 놓고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처리했다. 더는 안 입는 낡은 바지도 한 벌 꺼내와 에코의류함에 넣었다(이것이 과연 진짜 에코일지는 항상 의문이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보며 딸기 꼭지를 하나씩 땄다. 꼭지를 제거한 딸기를 냄비에 넣고 갈색설탕을 350그램, 백설탕을 200그램 정도 넣었다. 설탕 550그램(사실은 막 부어서 이것보다 조금 더 들어갔다)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설탕을 쏟아부은 딸기를 대강 으깨고는 불을 강불로 올렸다. 그리고 레몬즙을 계량스푼으로 한 스푼 넣었다.
딸기가 설탕에 녹으며 끓기 시작하자 달콤하고 향긋한 딸기 설탕졸임 냄새가 풍겼다. 약불로 불을 줄였다. 그리고는 물을 끓여 잼을 넣을 유리병을 열탕 소독하고, 널어둔 빨래를 걷어 개고, 택배를 뜯어 택배 상자와 송장을 처리하고, 옷 수납함에 넣어 두는 제습제를 교환하고, 돌돌이로 바닥을 한 번 밀었다.
제법 오래 끓였는데도 잼의 점도가 여전히 물 같았다. 이제는 온 집안이 딸기잼 냄새로 가득했다. 냄새가 독하지는 않아 달달하고 좋았다.
잼을 저으며 몇 번 걱정하다가 두 시간이 가까이 되어도 농도가 변할 기색이 없자 검색을 해 보았다. 알고 보니 그게 정상이고 너무 오래 끓이면 잼이 이후에 숙성되면서 너무 꾸덕해진다고 했다.
바로 불을 내리고 얼마간 식힌 뒤 유리병에 잼을 옮겨담았다. 이전에 다이소에서 사온 유리병과 엄마가 자몽청을 넣어주었던 누텔라 병까지 두 개 병이 가득 찼다. 한 김 더 식혀준 다음에 냉장고에 넣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무언가를 해본 듯하다. 딸기잼이 부디 맛있었으면 좋겠다.
잼을 끓인 냄비의 설거지는 다행히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Buttermilk Graffiti를 다 읽었다. 내가 원서로 읽기 시작한 사이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성공으로 머잖아 번역서가 나오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국내의 독자들도 이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니 못내 반갑다.
이 책을 읽어가는 와중에 공모전에 낼 새로운 단편 소설을 썼는데, 파이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집필을 시작하기 몇 주 전에 동네에서 맛있는 파이 가게를 발견한 영향으로 이런 소재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고 여겼는데 쓰고 나서 보니 이 음식 여행 에세이의 영향도 없지 않은 듯하다. 내용은 물론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먹는 것에 관해 쓰는 게 몹시 즐거웠다. 그렇게 오래 글을 써 왔는데도 작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라는 것은 내게 즐거움보다는 힘겨움과 고군분투에 가까웠다. 조금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 올해부터인 것 같고(올 초에 시작한 것은 중편이어서 쓰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지난달의 단편 작업부터는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아주 재미있었다. 역시 먹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때는 역시 밥 시간이다. 자는 시간도 좋지만 그래도 먹는 때가 조금 더 좋다. 한 끼니라도 맛 없는 걸 먹고 싶지 않다. 짧은 인간의 생애에서 최대한 맛있는 것만 먹다 가고 싶다. 다양한 걸 먹어보고 싶고 이상한 것도 먹어보고 싶다.
음식에는 영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없는 사람과는 우정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정이란 모든 관계의 시작점으로서 기능하는, 애정의 한 갈래로서 상정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같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없는 사람과는 그 어떤 의미 있는 관계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번 생에는 언어와 글쓰기를 너무 사랑해 말을 다루는 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요리나 베이킹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음식으로 아름다운 걸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고 무언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 수 있었으면 싶다.
지금도 할 수 있잖아,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창조력은 소설 쓰기에 쏟아붓고 있는 느낌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재능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재료와 분량을 머릿속으로 조합해 맛을 상상하고 예측하는 걸 곧잘 하는 편이다) 일단 남는 창조적 에너지가 있으면 글쓰기에 다 써 버려서 주방에서까지 뭘 더 개발할 의지가 들지 않는다. 이번 생엔 글렀다.
그렇지만 역시 요리사들은 멋지다. 미각과 시각과 후각과 청각과 촉각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작업이란 얼마나 도전적이고 흥분될까? 게다가 사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많지만 음식을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폭넓은 소비자군이 부럽기도 하다.
다음 번 소설도 먹는 걸 소재로 해야 하나?
연휴가 길어 매우 행복한 나날이다.
참, 며칠 전 만든 딸기잼은 맛있었다. 설탕 양을 인터넷 레시피보다 대폭 줄인 데다 반 이상 갈색설탕을 넣었는데도 굉장히 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수제로 만든 것은 항상 파는 것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있어 기성품보다 맛이 좋길 기대했는데 별반 다를 바가 없어 그 점은 조금 맥이 빠졌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