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

첫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첫째 주



주말을 넘겨 버려 비록 월요일에 업로드하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목요일


벌써 5월이라니. 5월. 한 달만 지나면 한 해의 반이 지나간다. 대체 어떻게 이다지도 시간이 빨리 가는지.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는 말이 정말 맞다. 속절없이 손가락 틈새로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시간을 붙드려 하는 건 바람을 붙잡으려 하는 행위 같다. 물에 비유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물은 손바닥 안에 고이기라도 하니까. 시간은 고이지 않는다. 단 1초도, 그 어떤 존재에게도 남아있지 않는다. 설령 사물이라 해도 그렇다.


쏜살같은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자니 문득 떠오르는 게임이 있다. 비포 유어 아이즈라는 스팀 게임으로 플레이 타임이 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짤막한 게임이다. 마비노기는 십 대, 이십 대의 몇백 몇천 시간을 녹였기 때문에 인생의 게임이라면 비포 유어 아이즈는 내 생의 두 시간도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인생 게임이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게임은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해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며 뱃사공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그래픽이 귀엽고 눈을 깜박이며 플레이한다는 생소한 시스템에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는데, 중반부 즈음부터 이 게임은 나를 상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갔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올라가는 크레딧을 스킵할 생각도 못 한 채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내 눈앞에서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으로 구성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눈 깜박임이라는 모션을 이용해 게임을 진행하는 플레이 시스템의 신선함, 주제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컨셉의 조화가 감탄스러웠고 눈 한 번 깜박하니 팔십 년 인생이 다 지나가 버렸다고들 말하는 인생 선배님들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누군가는 조그만 인디 게임 하나에 과장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게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같은 작품들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 일흔을 넘어 태어난 날보다 떠날 날에 더 가까운 그런 날이 머잖아 오고 말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주말의 끝


다가오는 수요일이 생일이라, 이번 주말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생일 축하상을 받았다. 금요일에는 퇴근 후 이모를 만나 저녁을 먹었고, 토요일에는 남자친구를—아직까지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좀 부끄럽다—만나 근사한 만찬을 대접받았고, 일요일에는 가장 오래된, 사랑하는 친구와 공연을 보고 맛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함께했다.


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감사히 여기기는 했지만 그에 비해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수용할 줄은 몰랐다. 머리로 열심히 생각해 관계 유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고 책임을 다하려 했다. 그렇게 하니 관계 유지는 되었으나 그 이상 어딘가로 가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의 초죽음에까지 이르렀던 혹독한 이별을 겪고 기나긴 우울증의 터널을 지나고 난 뒤에야 (마음수련과 함께) 사람의 감정이란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주변의 관계가 많이 변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제법 편해졌고 원래 친구들과도 훨씬 깊은 층위에서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게 호감을 표시하면서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경험도 많아졌다. 그저 나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좀 더 편안해진 것뿐이었는데. 서로 소중한 관계라고 여기는 관계들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생일에 별일이 있으나 없으나, 축하를 받으나 안 받으나, 별로 다르게 느끼지 않았다. 태어난 것이 뭐 중요한가 죽는 날이 중요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진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나 냉소주의 그 자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태어난 날은 죽는 날과 똑같이 중요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햇빛이 가득히 내리쬐는 날이면 지극히 행복해진다. 햇빛 한 줄기에 마음 깊이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순간 살아있음에 그 정도로 감사해 본 적은 거의 없다. 내 생명을 햇빛 한 조각보다도 경시해 왔다고 생각하면 내가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누군가가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준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축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태어난 것에, 삶이 주어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그리 되길 바란다. 햇빛을 향해 품는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내게 주어진 이 생에도 품게 되길 바란다.

언젠가는 그리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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