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

넷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넷째 주




월요일


월요일과 금요일은 재택근무일이다. 오늘도 업무 시간인 오전 열 시에 맞추어 느지막이 일어나 일하다보니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에 들깨버섯탕을 간단히 해먹고 커피를 사러 나왔다. 햇빛이 환하고 공기는 아직 덥지 않아 아름다운 날씨였다. 초록색으로 바뀐 횡단보도의 신호등 타이밍이 애매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밖에 있으려고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 서서 기다렸다.


단골 카페로 가자 이제는 친숙한 사장님이 여느 때와 같이 반겨주셨다. 그새 통성명도 했고 직업도 알려드렸고(나는 사장님의 성함도 직업도 알고 있는데 사장님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이 조금 신경 쓰였었다), 또 어쩌다 보니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지난 주에는 연애를 갓 시작했다고, 그래서 주말에 카페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까지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매주 방앗간 참새처럼 드나들던 손님이 오지 않으면 궁금해 하실까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사장님이 커피를 내려 주시는 사이 잠시 수다를 떠는데 다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나는 계산대를 독차지하고 있다가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났다. 다른 손님들이 메뉴를 고민하는 사이 금세 내 커피가 나왔다.

갑자기 손님이 많아졌네요, 하니 사장님이 손님 몰고 오셨나 봐요 하셨다. 그 말에 기뻐서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더니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집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열심히 광합성을 하며 돌아가는데 자취하는 빌라 건물 앞에서 막 나오고 계시던 집주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우리 집주인들은 딱 내 엄마아빠와 동년배이신 부부이신데 내가 사는 빌라 전체를 관리하시며 꼭대기층에 살고 계신다. 나는 이따금 내가 구운 빵이나 여행지에서 사온 먹을거리를 선물해 드리고, 집주인 내외는 이따금 직접 기른 야채나 선물로 들어온 과일, 고구마 따위를 가져다 주신다.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하니, 오늘 월요일 재택하는 날이구나! 하며 반갑게 웃으셨다. 내가 재택하는 날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게 기뻤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데 내 주변에는 참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들이 많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부지런히 일했다.



수요일


여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번 공모전도 물 건너간 것 같다.

이 세상은 내 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걸까 싶어서 조금 슬퍼진다.



목요일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너무 배가 불러서 환승하는 중간역에서 아예 내려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밤 열 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고 5차선쯤 되는 대로변이었다.

마주보는 방향으로 오고 있던 아저씨 한 명이 내 쪽으로 손을 흔들길래, 내 뒤편에 아는 사람이 있나보다 싶어서 별 생각없이 지나치려던 차였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점점 더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는데 보도에 주차된 차 때문에 더 이상 피해갈 공간이 없었다. 나와의 간격이 1.5미터쯤 되자 그 아저씨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나를 끌어안으려는 자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밤이긴 했지만 야심한 시간도 아니었고,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도시인 서울에서, 그것도 대로변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인간은 처음 본지라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달렸다. 근처에는 파출소나 경찰서가 없어서 당장 몸을 피할 곳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쫓아올 것 같아서 앞만 보고 뛰었다. 다행히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필 그날은 집까지 오는데 길을 가는 행인이 거의 남자 보행자들뿐이었다. 그냥 길을 걷는 행위조차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방금 겪고 나자 길을 가는 남자들이 언제든 공격해 올 수 있는 대상인 것처럼 느껴져 위축되었다.


법적으로 따지면 충분히 형사 사건으로 고소할 수 있는 정도의 명백한 성범죄를 살면서 몇 번이나 겪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여자로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하다.



일요일


공기가 더워지고, 습도가 높아지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완연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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