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
대선일을 껴서 제주도에 1박을 다녀왔다. 제주도의 산뜻한 공기와 이국적인 야자수가 그 무엇보다 좋았다. 목요일은 재택으로 근무하고 현충일과 토요일은 남자친구와, 일요일은 다른 친구와 함께 보냈다.
여기 일기에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5월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1대 1을 전문으로 하는 과외형으로 6개월짜리 코스이다. 내 영어 실력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특별히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 영어 실력의 부족은 항상 느낀다.
한국어가 나오듯이 영어가 술술 나왔으면 좋겠다. 그냥 말하는 것, 그냥 쓰는 것 이상으로 유창하고 유려했으면 좋겠다. 영어를 아름답게 쓰고 싶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어를 아름답게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괴상한 욕심이다.
수업은 수강신청 형식이라 요일마다 고정된 것은 아닌데 최소 주에 3회는 들으려고 한다. 영어 학원 세션이 없는 날이면 다른 화상 영어를 한다. 그래서 거의 주에 5일은 영어 회화 수업을 듣고 있다.
퇴근해서도 영어를 하고 주말에도 영어를 하고, 남은 시간에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집안일을 할 시간이 도무지 없었다. 냉장고에는 사두고 해먹지 못한 식재료들이 썩어가고 있었고, 빨랫감도 쌓여 갔고, 화장실에는 곰팡이가 슬그머니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제일 급한 건 이불 빨래였다. 우리 집은 제법 서늘한데다 난 추위를 많이 탔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겨울 이불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여름 이불로 바꿔야 할 시기였다. 이불 빨래를 못한 지 꽤 오래되어 묵은 냄새도 희미하게 나는 것 같았다.
일요일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 이불부터 걷어냈다.
사계절용 이불을 빼서 속이불과 시트를 분리하고, 겨울용 이불도 걷고, 매트리스 시트도 벗겼다. 무거워서 혼자 들고 가기 어려운 겨울 이불은 밀어두고 사계절용 이불의 속이불과 시트, 새로 산 여름 홑이불을 커다란 비닐에 넣고 한아름 안았다. 현금이 있는 지갑을 오랜만에 꺼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니 습하고 더웠다. 완연한 여름이다.
비록 이틀뿐이었지만 제주에 있다 서울에 오니 공기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서울보다 낮아 쾌적했다. 요사이는 어딜 가도 그랬다. 대전도, 강릉도, 제주도, 상하이도 그랬다. 어딜 가도 서울이 더 덥고 습했다. 본가가 대구에 있는 회사 후배 한 명은 작년 즈음부터는 대구가 서울보다 시원하다고 했다.
이전에 어떤 기사에서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서울의 기온 상승폭이 빠르고 크다고 한 것을 본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도시는 누구보다 빠르게 더워지고 싶어서 박차를 가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서울은 점점 더 생명이 살기 힘든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탁방에 도착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빨래를 기다리며 통화를 하고 계셨다.
내 이불들을 세탁기에 쏟아넣고 청정세탁 모드로 돌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매트리스 시트가 벗겨져 있는 알몸의 매트리스를 돌돌이로 밀어주고 바닥 청소를 간단히 했다. 새 시트를 씌운 뒤 밀어두었던 겨울 이불을 집 세탁기에 넣고 이불빨래 모드로 돌렸다. 아직 물건이 들어 있는 여행 가방을 정리하니 벌써 삼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회용 쇼핑백에 이불용 비닐을 넣고 다시 집을 나섰다.
세탁방에 도착하니 통화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그새 빨래가 끝나 집에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 이불 돌아가는 소리만 부지런히 들렸다. 오 분 정도 기다리니 빨래가 끝났다. 이불들을 건조기에 밀어넣고 24분을 맞춰 건조를 시작했다. 건조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들고 온 다회용 쇼핑백을 가지고 근처 다이소로 향했다.
며칠 전에도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비닐백이 다 떨어진 것을 채우러 다이소에 올 수밖에 없었다. 일회용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음식용 소형 비닐백 한 팩을 다 쓰는 데 1년 더 걸리는 것 같다) 그래도 안 쓸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로 바꾸기에는 원룸 냉장고가 너무 작았다. 비닐백과 베이킹용 포장 봉투를 사서 다이소를 나왔다.
세탁방에 돌아와 들여다보니 건조기 시간이 4분 남아 있었다. 얼추 시간이 맞아 기분이 좋았다. 건조가 끝나 문을 열어보니 따뜻한 기운이 얼굴을 확 덮쳤다. 이불을 요리조리 들춰 보니 폭닥폭닥 잘 말라 있었다. 보송해진 이불들을 다시 이불용 비닐에 밀어넣은 뒤 어깨에 쇼핑백을 메고, 커다란 이불 꾸러미를 한아름 안은 채 세탁방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마무리하고 깨끗한 여름 이불을 펼쳐 침대에 덮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고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다. 오늘은 깨끗한 이불 속에서 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