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주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다 읽고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이란 책을 읽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 시기부터였을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생겼다.
정확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집이 좀 더 깨끗했으면 좋겠다고 죽 생각해오던 차에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다큐멘터리를 봤고 그때부터 미니멀리즘이란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그전에도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라든가 미니멀리스트 스타일 어쩌고 하는 키워드는 여기저기서 보고 듣긴 했으나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이란 무엇인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게 된 계기는 그 다큐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다큐멘터리의 감독인 맷 디아벨라의 유튜브를 몇 번 보았고(그는 구독자가 상당히 많은 유튜브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때때로 집의 물건을 제법 비우기도 했다.
곤도 마리에나 다른 정리 대가들이 하듯이 온 집의 물건을 몽땅 버리는 레벨까지는 도전하지 못했지만 필요 없거나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꽤 버렸다.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를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그게 어렵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니 멋지게 꾸미고 다니는 다른 사람들을 볼 일도 없었고 멋진 물건을 파는 어딘가에 갈 일이 없었으니까. 옷도 안 샀다. 일 년 동안 옷을 분기별로 한 벌만 사는 챌린지를 스스로 했었는데 지키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엔데믹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맞이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간 쌓인 것에 대한 반작용처럼 인테리어도 패션도 맥시멀리즘이 트렌드가 되기 시작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이 각종 장식과 레이어드로 화려해지고 오늘의 집 앱에는 예쁜 물건이 꽉 찬 사진이 잔뜩 올라왔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소품 샵도 많아진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원래 물건이 많았지만 갑자기 더 물건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도 예쁜 물건과 옷을 자꾸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혹했고 어느 샌가 미니멀리즘에서는 스르륵 멀어졌다.
모르는 사이 집에는 다시 옷과 물건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다시 물건들이 거슬리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진짜 비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솔직히 말해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사사키 후미오와 도미니크 로로의 책도 모두 그의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진짜배기 미니멀리스트로 그의 집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본인 것 한 벌만 달랑 있어서 나 때문에 한 벌을 더 사야 했다.
베개도 단 하나, 의자도 하나, 바디워시도 핸드워시도 없었고(비누로 해결한다) 심지어는 소금, 설탕, 간장, 고추장 같은 기본적인 양념조차 없었다(간편식만 먹는다).
물건이 어찌나 없는지 거의 호텔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호텔에는 전기 포트라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호텔에 물건이 더 많을지도.
남자친구의 집에 가보기 전부터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예상했던 바기는 했지만, 역시나 엄청나게 깔끔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컴퓨터 한 대,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책만 몇백 권 들어차 있었다(공짜 도서관이 생겨서 기뻤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달에는 폭염과 우천으로 재택을 여러 날 하면서 그의 집에서 일주일을 넘게 보냈다.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물건이 없고 깨끗한 곳에 있으면 더러운 것이 더 잘 보이고, 걸리적거리는 물건이 없어서 청소도 더 쉬워진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집에서보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정리를 더 자주, 더 깔끔하게 하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이 적으니 신경이 덜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물건이 많은 환경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뇌의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그걸 한 번 깨달으니 내 집의 물건들을 더더욱 치우고 싶어졌다.
한 번에 집을 뒤엎어서 전부 갖다 버리는 식으로는 하지 못하겠지만 서랍 하나, 수납장 하나씩 차차 정리해 볼 생각이다. 며칠 전에는 필요할까봐 모아 두었던 여분의 케이블과 나사못, 쓰지 않는 공구 등을 버렸다. 소형 서랍 한 칸이 가벼워졌다.
아마 내게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은 옷일 것이다. 멀쩡하고 적당히 마음에 드는 옷을 버리기가 너무 어렵다.
문제는 그런 옷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단 옷을 버리는 숙제는 맨 뒤로 미루고 쉬운 것부터 버려볼 생각이다.
언젠가는 내 집도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물건이 없는 공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