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

셋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셋째 주




목요일


당근으로 처음으로 옷을 샀다.


당근에 계정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몇 년 동안 두어 번밖에 써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파는 건 어쩐지 무서워서 구매만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일환으로 물건 비우기를 위해 몇 번 판매하는 경험을 해 보았는데 덕분에 이 앱과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뭘 사 볼 생각은 별로 없었다. 주변에 당근을 곧잘 사용하며 물건을 사고팔고 사용하는 이들이 좀 있긴 했으나 남들이 쓰던 물건을 쓴다는 개념도 좀 마뜩찮았다. 그것도 일반적인 물품은 모르겠지만 옷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내가 물건을 팔게 되면서, 또 미니멀리즘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미 꽤나 많은 중고 옷을 입고 있었다. 친척들이 이따금 옷을 잔뜩 보내주곤 했는데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나 비싼 브랜드의 것은 스스럼없이 아니 아주 잘 입고 다니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일본에 잠깐 살 때는 세컨드 스트리트(체인 형태의 오프라인 중고 매장)를 아주 유용하게 이용했던 게 나였다. 굳이 당근의 물건을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또 남들이 쓰던 걸 쓰면 신제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탄소발자국도 줄이게 될 테니 환경에도 훨씬 나을 터였다.


그러던 와중에 유튜브에서 패션 관련 영상을 보다가(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데 이런 것이 치명적이라는 걸 알지만 난 예쁜 걸 너무 좋아해서 안 볼 수가 없다) 문득 Cos의 옷이 궁금해졌다.

코스는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시도할 생각을 안 했었다. 나는 회색이나 검은색이 전혀 어울리지 않고, 주로 망고나 앤아더 스토리즈에서 판매하는 높은 채도의 컬러감 있는 옷을 즐겨 입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의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고 또 코스에서 선보이는 디자인이 기본적이고 깔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잘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적 가치에 맞아 보였달까? 또 비록 Spa브랜드라고는 하나 품질이 괜찮아 보여서 어쩌면 오래오래 입을 수 있는, 패스트 패션처럼 소비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번 당근을 이용해보자는 생각에 당근에서 cos를 검색했고 역시나 많은 물건의 리스트가 떴는데, 그 중 꽤 마음에 드는 상의가 있었다. 화이트 데님의 민소매 탑이었고 등 부분에 지퍼가 달린 것이었다. 가격은 1만원.


만 원이라니, 실패해도 배운 값으로 칠 수 있는 금액이었다. 판매자에게 채팅을 걸어 보니 몇 번 입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말투도 아저씨 같아 좀 수상쩍었지만(판매내역을 보니 남자 물건도 많고 일관성이 없었다) 만 원이니까, 사 보기로 했다. 거래 장소도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내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판매자도 도착했고 신속한 쿨거래로 한 3분 만에 거래가 끝났다. 판매자는 역시나 아저씨였는데 알고 보니 이 옷은 아내분 옷이었다고. 내가 옷을 펼쳐 보고 한두 가지 물어본 뒤에 입어볼게요, 했더니 그분이 어 네네 하면서 멀찍이 떨어지시길래 여기서 입어본다는 얘기로 착각했구나 싶어 서둘러 오해를 정정하고 금액을 지불했다. 아무리 그래도 끈나시를 훤한 대로변에서 입어볼 수 있을 리가요.


집에 와서 입어보니 옷이 내게 잘 맞고 예뻤다. 만 원에 코스를 득템하다니 아주 흡족한 거래여서 앞으로도 당근을 종종 이용할까 싶다. 더구나 지구에도 더 좋은 선택이니 기분도 훨씬 좋다.


아참, 그래도 미니멀리즘 원칙을 적용해 한 벌을 샀으니 한 벌을 버리기로 했다.



금요일


요즘 알아차림 명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얼마 전 희한한 경험을 했다.


제대로 뭘 배운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읽은 바에 따르면 알아차림 명상은 사실 명상의 시작이자 끝 아닐까 싶은데 사실 이게 말이 쉽지 실천에 옮기기에는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알아차려라’, ‘관찰해라‘, ’바라보아라’ 이런 말은 많은데 나의 생각과 감정은 고사하고 신체적 반응을 관찰자처럼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조차 말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내 신체에 대해 했던 관찰이라곤 여태 살아오면서 ‘기침과 콧물이 나는 걸 보니 감기가 걸렸나보군’이나 ‘배고프다‘ ’졸립다’ ‘아프다’ 이 정도가 다였다.


그래서 명상의 세계에 기웃거리면서도 알아차림이라든지 관찰자가 되는 것에 대해 항상 막연한 느낌이 있었고 노력해 보아도 잘 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1, 2년 전쯤 내가 밥을 허겁지겁 먹는 경향이 있다는 걸(사실은 ‘경향‘이 아니라 항상 허겁지겁 먹는다) 알아차렸는데 그게 상시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을 음식 섭취에서 오는 도파민으로 덮으려 하는 신체적 습관(or a coping mechanism)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그 정도였는데, 지난 번 언젠가 명상을 마칠 때쯤 나를 지나치게 다그치는 내면의 목소리가 좀 줄어들었다는 걸 느낀 이후로 그 ‘관찰하기’가 좀 더 잘 되는 것 같다. 적어도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희한한 경험이 뭐였냐면, 며칠 전 남자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말하는 내 목소리를 남처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꼭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아주 이상하고… 목소리가 왜 이렇지 말은 왜 이렇게 하지 하는 식이었달까? 그런데 그걸 입을 열어 말하는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는 내 목소리를 내 몸 속 혹은 머릿속에서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귀로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주 이상했다.


그것이 알아차림 명상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전혀 관계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 들어 내 생각이나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얼마간 수월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상 기법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내 생각을 냇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바라보라는 것은 별로 와닿지 않는데 그건 내 언어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보다는 (다른 데서 본 것인데) 내가 하늘이고 생각은 구름 감정은 날씨라는 비유가 훨씬 와닿았다. 아마도 내가 우르릉쾅쾅하는 날씨를 온몸으로 겪고 있기 때문에 그게 더 와닿는지도.

언젠가 이 모든 것들과 거리두기가 더 능숙해지면 냇물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저녁에는 동생과 이모와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초밥으로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딸기빙수를 먹었다.

이모는 일흔이 넘으셨는데 아주 건강하시다.

동생은 부모님과 본가에 살고 있는데 본가 아파트에는 재건축 이슈가 있어 요즘 시끌시끌하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둘 다 재건축에 대해 공부를 해 보아야 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생이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기로 해서 보컬 레슨을 듣고 있다고 했다. 들을 만한 아티스트도 누군가 추천해 주었는데 까먹었다. 요즘 들을 노래가 없어 곤란하던 차였는데 다시 물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년 8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