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

첫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첫째 주




금요일



드디어 더위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덥고, 켜면 추운 정도의 애매한 더위가 남아 있지만 나가서 산책할 수 있는 날씨다.


신기하게도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다르다. 실제로 사계절마다 달 모양이나 색깔이 달리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요 며칠의 달은 가을 달처럼 보인다. 노랗고 또 때로는 붉고 크고 밝고 환하다.

벌써 가을이 오고 있다.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계절.


여태 읽은 미니멀리즘 책에서 정리정돈을 제쳐두고 하나같이 먼저 강조하는 것이 있었다. 미니멀리즘 마인드셋이었는데, 물건을 살 때 의도적 소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인가? 원한다면 무엇 때문에 원하는가? 허영심? 욕심? 뒤처지기 싫은 마음? 심리적 결핍(아마 이것이 앞의 모두를 아우르겠지만)?


그래서 생각하다보니, 소비뿐 아니라 삶에도 이러한 ‘의도’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삶의 여러 영역에 의도를 가지고 결정하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 이를테면 지금 이 쿠키를 먹으면 부가적인 385칼로리가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미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삶 전체의 방향성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내가 의도를 가지고 있었나?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그것이 내게 필요한 행위인지, 내 삶에 전반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지, 아니면 그저 하고 싶어서 혹은 좋은 것 같아서 하는 행위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올해의 프로젝트로 하고 있는 영어 과외만 해도 그랬다.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재 직장인으로서 업무에 들이는 시간, 공모전이 있을 때 글을 써야 하는 시간,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집을 청소하는 등 생활 유지에 드는 시간, 친구 관계에 들이는 시간, 가족에게 투자하는 시간, 연애에 들이는 시간 등을, 또 거기에 투입해야 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또 이 외에도 매일 해야 하는 것들이 더 있다).


요 몇 달간 대면과 화상 과외를 소화해 내면서 집을 청소할 시간조차 부족해 허덕였고 정신적 압박을 계속해서 느꼈다. 시간 계산상 아무리 해낼 수 있는 일정이라 해도, 내 에너지와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쉬는 시간과 여유 시간을 갖지 못하면 긴장도와 불안도가 올라가고 인내력이 떨어지고 금세 지치게 되었다. 영어 공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도 그랬다.

나는 항상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사는 사람이었고 생산적으로 사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벅차다는 신호가 계속해서 들렸다. 어쩌면 미니멀리즘에 몰두하게 된 것조차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것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비우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8월이 지나면서부터 머리 한구석으론 이미 내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영어 실력이 조금 좋아졌으니 이참에 박차를 내서 수준을 엄청 올려볼까? 아니면 다시 중국어 공부로 돌아가서 이제 HSK 5급을 노려볼까? 아니면 아예 새로운 것을 해볼까? 스페인어?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작곡 공부? 다시 수영을 배울까(한 번 도전했다가 물이 무섭고 체력이 달려서 실패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 삶(Intentional living)’을 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 배우는 걸, 나의 기술을 갈고닦고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으나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삶과 나라는 개인을 거리를 두고 바라봤을 때 나한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마음의 평화, 그리고 글쓰는 시간이었다. 중국어든 스페인어든 언제든 배울 수 있는 것이고, 영어는 지금 수준으로도 사실 나쁘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면 소설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소설을 언제나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조금씩 쓰고는 있었지만 충분치 않았다. 입으로는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항상 글을 써야 한다고 나불거렸지만 정말 솔직히 말해, 소설 쓰는 건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며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미루는 경향도 있었다. 또 내가 쓰는 글의 8할 정도는 거지 같았기 때문에 그걸 대면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늘긴 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고 폭이 너무 작아서 성에 차지 않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영어나 중국어 공부 같은 것은 미뤄두는 게 맞았다. 아무리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일이라 해도 영어나 중국어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불과했다. 내가 깎아야 하는 진짜 방망이는 글쓰기였다. 하기 싫어도 의도를 가지고 해야 했다. 어차피 이 방망이를 아예 내려놓진 못할 테니까.


그래서 내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명상과 미니멀리즘,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어 공부는 2년 전부터 친구와 하고 있는 간단한 주간 스터디, 그리고 매월 1권씩 원서 읽기만 유지할 생각이다. 중국어는 듀오링고만 하는 것으로(듀오링고는 이제 660일을 넘겼다). 건강은 챙겨야 하니 수영 정도는 할 수도 있고, 아님 러닝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운동은 귀찮으니 천천히 생각해야지.



주말


요즘은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고 싶기도 하고, 집이 너무 갑갑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공간이 좁은 것은 그렇다쳐도 창문이 너무 작고 창밖으로 옆 빌라의 벽이 보여 답답하다. 그런데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서울의 월세가 너무 올라서 이사갈 만한 곳이 없다.


집의 가구 위치라도 바꿔서 구조를 바꿔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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