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주
어제 뒤늦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향이 있어 평소 뉴스를 거의 전혀 보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챙기지 않는 편이라 이제야 알았다(제인 구달 박사님의 소식도 아주 늦게 접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제목에 끌려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에 이미 읽어본 책이었다. 큰 기대 없이, 그저그런 우울증 에세이 아닐까 회의적인 마음을 품고 펼쳤었는데 생각보다 진솔하고 용기 있는 내용에 문장력이 뛰어나 인상에 남았었다. 그 뒤로 책이 히트를 쳤고 잘은 몰라도 우울증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건 거의 처음 아니었나 싶다.
이후에 작가가 예능 토크쇼인 유퀴즈에 출연한 영상을 봤다. 많은 조명을 받고 인정도 받고, 결혼도 하고 강아지도 두 마리나 기르고 있었는데도 내가 상상한 그의 이미지보다 우울증이 더 심해 보여서 조금 마음에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가족과 반려견이라는 안전 기지가 갖춰져 있다고 여긴 데다 그런 책을 쓸 만큼 용기 있고 강한 사람이니 잘 이겨내겠지 싶었고 그 뒤에 출간된 2편은 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어제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 나와 그 작가의 인연의 전부다.
그 뉴스를 접하고 나니 마치 내가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처럼 슬픔과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냥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당연히 이겨내리라 생각한 사람이 떠났다는 말에, 무언가 세상의 이치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나의 인생에서도 그러하리라고 자동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고인이 장기기증을 했다는 소식까지도 그런 동일시에 일조했는데 나도 몇 년 전쯤 장기 기증 신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살 때는 특별히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죽어서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발상이었는데 저자도 비슷한 생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세희 작가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겠지만.
기분이 저조한 나머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요모조모 털어놓았는데 감정적인 대화를 거의 나눌 줄 모르는 그에게는 안하느니 못한 말이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단 한 마디의 코멘트 혹은 음 하는 리액션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완전히 무시당한 기분에 무안해져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지만 며칠 뒤 만났을 때 '내가 우울하거나 슬프다는 말을 하면 그냥 우울했구나 한 마디만 해 주면 돼. 그럼 위로가 될 거 같아'라고 말해 주었다. 입력어를 넣었으니 나중에 출력이 되리라 믿어본다)
덕분에 기분은 더욱 가라앉아 저녁밥조차 먹기 싫었지만 어제 저녁에는 40분짜리 화상 영어 예약이 있었다. 빠지면 페널티가 있는 터라 안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힘을 내 참여했는데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온통 그것뿐이라 결국 백세희 작가의 이야기를 튜터링 중에 이야기하고 말았다. 고맙게도 화상 영어의 튜터는 그거 참 슬픈 일이라며 한 마디 해 주었다. 그에게는 큰 의미 없는 인사치레일 뿐이었는지 몰라도 내게는 그 한 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밤에 잘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는 마음이 많이 진정되어 잠들 수 있었다. 요새는 불면과 어느 정도의 수면 사이를 이상한 리듬으로 왔다갔다하는데 그래도 길게 보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여기까지가 어제의 일이었다.
오늘은 일하면서 업무에 심력이 많이 쓰여서 굉장히 지쳤지만 내일인 금요일은 오후에 반차를 냈다. 부모님이 놀러 오기로 해서다.
이삼 주 전 엄마와 아빠가 사는 본가 아파트에서 수도와 전기 점검으로 인한 단수와 단전이 예정된 터라 내 집에 피난을 와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애초에는 그냥 집만 내어주고 나는 사무실에 출근을 하려 했으나 이렇게 된 차에 그냥 오전에만 재택으로 일하고 오후에는 부모님 접대를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한두 시간이라도 더 같이 보내는 게 얼마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이야기를 하니 말인데 문득 올해도 거의 다 끝났구나 싶어 약간 슬퍼진다. 크리스마스는 좋지만 한 해를 보내는 기분은 언제나 덧없고 섭섭하다.
왜 이번 한 달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알았다.
최근 한 달간 사람답게 잔 날이 많이 쳐 줘야 삼사일 정도밖에 없었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펜을 잡았다.
백지에 아무렇게나 머릿속 생각을 휘갈기다 보면 내 몸을 잠식하고 있던 온갖 감정이 덜어지고 감정이 얼마간 빠져나가면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귀찮은 일이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 잘 안 하지만 제대로 수면을 취하려면 이 과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한 달 가까이 제대로 자질 못하니 이러다 수명이 이십 년은 단축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뭐였냐면 이렇다.
이 일기에는 적지 않았지만 최근 축소되고 있는 번역 업계에 대한 걱정을 좀 하고 있었다. 그래서 AI 때문에 로컬라이제이션 업계가 쫄딱 망하면 퇴직금을 들고 본가에 돌아가서 몇 달 좀 쉬다가 글쓰기에 집중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본가에 다시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신체에 엄청난 위협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집에는 내가 아주 불편하게 느끼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
그걸 깨닫고 난 뒤 이유를 찾아냈다는 안도감을 좀 느끼다가, 나 스스로에게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어젯밤은 아주 오랜만에 꿀같은 단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