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주
타인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떤 유튜브 영상을 봤다. 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 다정한 것이 이긴다는 주제였다.
다정하다는 게 뭘까?
누군가는 상냥한 말씨와 태도를 다정하다고 할지 모르고 누군가는 물질적인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행동, 누군가는 쉽게 져 주는 성격 특성을 다정하다고 할지 모른다. 쉽게 남을 믿거나 쉽게 친절을 베푸는 것을 다정함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다정한 태도가 낯설고 어색했고 조금 더 커서는 거기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다정한 태도가 반드시 관계에서의 양보나 배려, 의리와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워서, 혹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겨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다정함과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사실 한 사람이 정말 다정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어떤 관계든 간에 이삼 년은 만나 보아야 알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엔 내 기준의 다정함에 지나지 않을 거다.
요즘 들어서 나는 별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물론 나도 따뜻한 환경을 좋아한다.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갔을 때 모두가 미소 띤 얼굴로 친근하게 스몰 톡을 거는 문화가 좋았다. 적잖은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피로한 얼굴로 날 선 태도를 곧잘 취하는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일상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컸고 삶의 질이 좋아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다정함이 아니라 친절함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남에게는 다정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싶다. 친절하고 예의바르면 되는 것 아닐까. 웬만하면 웃고, 예의 있게 말하고, 나이스하게 대하고, 그걸로 끝.
아무에게나 다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나 자신, 그리고 내 바운더리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줄 것으로 남겨두고, 타인에게는 무례하지만 않으면 된다. 가끔 힘이 남고 여력이 된다면 조금 더 마음을 나누어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 자신과 상황이 허락할 때만으로 한정하고 싶다.
가장 어려운 건 그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일 아닌가 생각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접하게 된 것 중 특히나 좋았던 것 두 가지.
첫 번째는 정말 정말 뜬금없는 FOX 스포츠의 어질리티 챔피언십 재방송이었다. 그렇다. 멍멍이들이 운동 신경을 뽐내는 그것. 예전에 이따금 강형욱의 견종백과를 유튜브에서 보기는 했는데 그 외에는 사실 강아지나 고양이 관련된 영상은 거의 전혀 보지 않는다. 길에서 마주치면 너무 귀여워서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동물 영상을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어질리티 방송이 내 알고리즘에 왜 떴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최상단에 뜬 그것을 순전히 호기심에 눌렀고 한 시간이나 홀린 듯이 보고 말았다. 캐스터들이 강아지 스포츠를 열정적으로 해설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개들의 운동신경이 놀랍기도 했고 귀여웠고 또 귀여웠다. 어질리티 관련 영어 단어도 몇 개 알게 되어서 실질적인 소득도 있었다.
두 번째는 클래식 음악인데 유튜브로 음악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클래식은 별로 들은 적이 없어서 역시나 다소 뜬금없던 영상이었다. 아믈랭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우아한 유령이라는 곡의 피아노 연주인데 이것도 별 생각 없이 눌러봤다가 종종 찾아 듣게 되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수십 번 들었는데 사실 아직도 우아한 유령이라는 곡이 누가 쓴 곡인지는 모른다.
그나저나 클래식 음악 영상의 댓글란을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교양 있는 사람이 많았던가 신기해진다. 댓글 중에 피아노를 칠 줄 알면 아믈랭만큼은 못 쳐도 쳐 보라고 권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참고로 피아노는 스무 살 이후로 만져본 적이 없다. 악보는 읽을 줄 알고 그냥저냥 따라할 수는 있는데 오래 배우지도 않았고 잘 친다고는 절대 못 한다. 손도 굳은지 오래고 아마 지금은 왼손 오른손을 따로 쓰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아노는 부동산이 중요한 취미다. 피아노를 놓을 곳이 필요하다. 본가에 어릴 때 쓰던 전자 피아노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원룸에 가져오기에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한데, 일단은 내년에는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으므로 하고 싶은 것 리스트에 넣어 두어야겠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와 감정적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일 뿐이고 본인의 스타일대로 사는 것뿐이다. 딱히 내게 비연결감을 주려고 한다거나 외롭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도 자신의 행동으로 나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아주 우회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면 (공격적으로 들리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그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답이 없고 내 손만 만지작거린다. 눈도 잘 맞추려 하지 않는다. 기분이 상했느냐고 물으면 기분이 상할 일이 뭐가 있냐고 물음을 되돌린다. 표정은 부드럽고 산뜻해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내게는 그 행동이 방어적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나는 그런 행위 하나하나 때문에 내 감정을 모두 격없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역시 이 사람도 아닌 걸까, 싶다가도 말간 얼굴을 보면 또 모든 것이 헝클어진다.
그가 방어적으로 해석되기 쉬운 행동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또 내가 그런 행동을 내 주관에 따라 해석하는 것도 사실이다. 말이 너무 없어서 모든 걸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거라고 내심 그의 탓을 하다가도 그런 행위 하나하나를 일일이 해석하며 의미부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떠올린다.
그나마 스스로 위안이 되는 것은 예전이었다면 해석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진작 도망쳤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것. 비록 그러한 일들에 대해 좀 많이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