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주
이모의 초대로 아주 오랜만에 음악회라는 것에 갔다. 주로 피아노 3중주 혹은 4중주 연주로 구성된 클래식 음악회였다.
공연은 오후 7시 반이었는데 퇴근하고 이동하니 일행(이모와 동생)과 만나서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혼자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먹었다.
기다란 바게트를 통으로 전부 샌드위치로 만들었는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반미 샌드위치였는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천천히 먹다 보니 어느 새 없어져 있었다. 그 커다란 바게트 샌드위치가 통째로 뱃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신기할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클래식 음악회에 가면 내내 꾸벅꾸벅 졸다 나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 수 없는 소양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불면증의 영향 때문인지(기본적으로 긴장도가 높아 상황을 불문하고 졸음이 오지 않는다) 혹은 둘 다로 인해서인지, 전혀 졸지 않고 끝까지 다 관람했다.
아는 것이 없어 온전히 제대로 감상했다고 하기는 어렵고, 딴 생각도 자꾸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즐겁게 들었다. 연주자들이 모두 숙련된 것 같아서 인터미션 시간에 리플렛을 들춰 봤더니 대부분 어딘가의 교수님들이셨다. 참고로 연주자의 숙련도를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별 게 없고 그냥 유튜브나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접한 영상에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보는 거다. 보통은 그런 경로로 접하는 연주가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일 확률이 높으니까.
나오면서 동생과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서로 이야기했는데 역시 예상한 대로 우리 둘의 취향은 너무나 딴판이어서 둘 다 웃었다.
남자친구와 만났는데 둘 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점심만 먹고 쿨쿨 잤다.
오후에 일어나 재개봉한 위키드 1편을 보러 갔다. 나는 이미 작년에 두 번을 봤지만 남자친구가 보지 않아 2편을 보려면 예습이 필요했다. 세 번째 보는데도 눈물을 질질 흘렸다. 신시아 에리보는 정말 엄청나다.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작년에 위키드를 볼 때는 노랫말이나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올해 다시 보니 거의 모든 부분이 다 들렸다. 영어가 늘긴 늘었나보다. 또 예전에는 한국어 자막이 있으면 무심코 자막을 봤는데 이제는 자막을 이전보다 덜 읽는 것 같다. 뿌듯하다.
세간의 평이 좋아 기대하던 어떤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번역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읽히지가 않는다. 영어로 읽어야 하려나. 짧지 않아 영어로 읽기가 번거로울 텐데 이럴 때에는 오히려 번역본과 원서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괜한 망설임을 더 낳는 것 같다. 일단은 보류해야겠다.
요즘 일상을 잘 보내는 것치고 내심으로는 괜히 초조해지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신춘문예 시기가 다가와서 그런 것 같다. 소설 합평 모임을 다닐 때는 신춘문예 시즌이 다가오고 당선자가 발표되면 합평 참석자들의 분위기가 현격히 달라져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모임을 영영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겉으로 표는 잘 안 나지만 그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듯하다.
최근 몇 년 들어서는 소위 말하는 ‘멘탈이 센’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 도시 전설과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겉으로 멘탈이 센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가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지 않고 모른 척하는 것에 능숙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와 달리 정말 여유 있고 내면이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단지 스스로 그 감정의 파고를 다루는 것이 능해 외부에 표출하지 않고 혼자 관리하는 것일 뿐,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 세상에 없지 않나 싶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언제나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그러니까 흔들리는 것도 괜찮고 영향받는 것도 괜찮다. 다만 그에 대한 대처는 본인의 선택이겠지.
날씨가 확 추워졌는데 집에 아직도 모기가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