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로또를 15년째 할까?

아빠는 왜 매주 로또를 할까? 그것도 15년 넘게.

by 내곁의바람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승객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앉을자리가 몇 군데 비어있었다. 건너편의 문이 열리고 한 아저씨가 탔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안경을 쓴 모습이었는데,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는 구석 자리에 몸을 살짝 웅크려 앉더니, 주머니에서 천천히 핸드폰을 꺼냈다.


후두둑, 하고 손바닥만 한 종이 세 장이 떨어졌다.

로또 종이였다.

나의 짧은 로또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5000원짜리 3장으로 보였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분이 로또 종이가 떨어졌다며 알려주자 그는 허겁지겁 종이를 주워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로또….

우리 집에도 로또를 매주 사는 아저씨가 있다.

바로 우리 아빠.


아빠의 로또 취미는 꽤 오래되었다.

내가 중학생 때도 하고 계셨으니, 적어도 15년은 넘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게 무슨 번호가 느낌이 좋으냐며, 직접 번호를 고르게 해 주던 시기도 있었던 걸 보면.


난 지금까지 로또는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을 정도 당첨운이 없다.

그런 내가 불러주는 번호가 가망이 없어 보였는지 어느 날부터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빠가 로또에 당첨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실했던 시기도 있었다.

로또는 결국 확률게임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아빠는 빈 스프링 노트가 빽빽해지도록 로또번호를 적었다. 몇 번째 숫자가 얼마나 나왔는지를 적어 내려간 것 같았다.


노트 한 권을 다 채워갈 무렵, 그 방법이 통했다.


어느 주말이었다.

모두가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빠가 엄마를 나지막이 불렀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그 목소리에 나와 동생도 눈을 뜨고 아빠 이야기를 들었다.


간발의 차로 1등은 놓쳤지만, 3등이 되었다고.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엄마는 그때 아주 기뻐했지만 아빠는 꽤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아빠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로또 번호를 계속 연구했다.

나는 그때 아빠가 왜 그렇게 로또에 목을 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첨되는 그 짜릿함 때문일까? 일주일을 기다리는 그 시간들 때문일까


그 뒤에도 아빠의 로또 노트는 권 수가 늘어갔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변화의 시기를 겪었다.


아빠가 다른 지역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우리와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 나와 동생도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이 되었다.


주말이 되어야 모일 수 있는 가족.


지금까지 남은 아빠의 규칙은 아래와 같았다.

하나, 매주 토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5000원 치 로또를 하는 것

둘, 꼭 엄마에게 현금 5000원짜리 한 장을 부탁한다. 천 원짜리는 싫고, 꼭 5000원권 1장.

셋, 정말 감이 좋을 때는 10000원 치를 하는 정도일까.


나는 아빠가 로또가 당첨되었나 번호를 확인할 때면 꼭 옆에 붙어 당첨 여부를 묻는다. 아빠가 당첨되지 않아 시무룩한 표정이면 더 신나서 묻는다.

“아휴! 아빠가 당첨이 되어야 나도 콩고물을 얻어먹는데! 언제 당첨되는 거야?”

하는 장난을 치기 위해서.

아빠는 내가 그렇게 너스레를 떨 때마다 요새 로또 당첨이 쉽지 않네~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로또 당첨이 뭐 그리 쉽겠는가.

난 그저 아빠의 취미생활을 그런 방식으로 같이 즐긴다.


언젠가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다.

“로또 당첨되면 뭐 할 거야?”

“글쎄, 딸이랑 아들한테 1억씩 주고 나머지는 너네 엄마 줘야지.”

“엥? 아빠는?”

아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빠는 평소에 돈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매주 로또를 사는 건 재미일 뿐이었을까?


“연구를 해야 당첨이 되지! 요새는 연구를 안 하니까 안되잖아.”

아빠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랬다.

“요새는 그렇게 막 1등 당첨이 되고 싶지 않다.”

“왜?”

“그냥.”

그렇게 말하며 아빠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냥 그때는 돈 들어갈 데도 많고 그래서 필요했는데 지금은 뭐…”


어릴 때 아빠와 침대에 나란히 앉아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 집은 그때 당시 가게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4명이 살고 있었다.

“이제 우리 딸도 중학생 되면 방도 하나 있어야 하고, 아들도 방도 있어야 되는데….”

“난 괜찮은데!”

“그래도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는 말.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때 아빠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그 대화가 선명해지는 건 왜일까.

코 끝이 찡해졌지만 아빠의 다음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무서워! 로또 1등 되는 거.”

내가 한참을 웃다가 문득 진지하게 말했다.

“맞아, 로또 1등 되는 거 무섭다. 그렇게 큰돈이 갑자기 생기는 게 좀....

“아이고~ 둘 다 당첨 먼저 되고 말하셔.”

엄마가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근데 난 1억 정도는 괜찮을 것 같으니,

아빠가 얼른 당첨되었으면...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다.

아빠가 꾸준히 일확천금을 노렸던 건 아내와 자식의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걸. 지금은 로또 1등이 되면 그 큰돈에 가정의 평화가 깨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것도.


지금 우리 집엔 로또 당첨은 필요 없다.

그런 행운이 있다면, 더 오래 지금처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길 바랄 뿐.


아빠는 이번 주도 습관처럼 로또 가게로 향한다.

늘 그랬다는 듯이,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뒷모습을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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