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엄마와 아빠의 가내수공업

부모님의 수고 속에 쌓여가는 사랑, 그것을 먹고 자란 우리들.

by 내곁의바람

우리 집엔 한 번씩 가내수공업이 열린다.

"자! 내가 겉껍질 까면 당신이 속껍질!"

저녁상을 치우고 엄마가 가져온 과일 쟁반에는 커다란 연두색 자몽이 두 개 얹어져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메로골드. 청자몽이야. 이거 엄청 맛있다. 근데 까먹기가 좀 번거로워. 내가 겉껍질 까면 네 아빠가 속껍질 까야해."

아빠는 하기 싫은 눈치였지만, 상 앞으로 바짝 엉덩이를 붙이고 엄마가 겉껍질을 제거한 뒤 건네는 청자몽을 받아 들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 청자몽은 금세 껍질을 벗고 황금색 속살만 남았다.

접시 위에 소복이 쌓인 것이 참 먹음직스러웠다.

우리 집엔 이렇게 한 번씩 엄마아빠의 가내수공업이 열린다.

그 시간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 말 한마디 없다.

난 그 모습을 보면 왜인지 웃음을 참기 힘들다.


그전에 자몽청을 담근다며 자몽을 한 박스 샀을 때도, 부모님은 하루 종일 이렇게 자몽껍질을 깠다고 했다.

"그땐 주말 오전 내내 자몽만 깠다니까."

엄마가 지겹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직접 담근 자몽청을 내게 내밀었다.

"헉, 엄마. 이건 자몽청이 아니라 자몽조림이네!"

자몽들이 거의 으스러지지 않은 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꿀과 설탕 속에 담겨있으니 그것은 마치 자몽조림 같았다.

그 해 겨울은 단물에 잠겨 있던 부모님의 사랑으로 내내 배가 불렀다.


그리고 새우.

우리 아빠는 새우를 못 먹는다.

생긴 게 징그러워 싫다고 했다.

비린내도 싫어해서 날 생선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셋은 새우도 회도 좋아한다.

엄마가 새우볶음밥을 할 때면 아빠 밥엔 최대한 새우를 골라낸 채 주었다. 그래도 아빠 밥에 남아 있는 것들은 우리가 쏙쏙 골라먹었다.


아빠는 거제도에서 한 번씩 새우나 회를 포장해 집으로 들고 왔다.

어느 날은 비린 생새우 냄새를 참으며 2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오더니, 저녁 내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유, 담부터 새우는 사 오지 마! 자긴 먹지도 못하면서. 먹으려면 손도 많이 가는구먼."

아빠는 엄마 말에 대꾸가 없었다.


엄마는 그 새우를 먹기 좋게 손질해서 얼려두었다가, 내가 자취방으로 돌아갈 때 챙겨주며 말했다.

"이거 가져가. 냉동새우보다 생새우가 맛있잖아."

아빠가 조달하고, 엄마가 손질한 그 새우가 한동안 내 밥반찬이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서로 미루지 않고, 또 기꺼이 서로를 위해 해내는 시간이 있다.

접시 위에 쌓인 청자몽처럼, 냉동실에 가지런히 담긴 새우처럼, 말하진 않지만 분명한 마음이 우리 가족 사이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가내수공업이 참 좋다.

그 단순한 손놀림 속에서 오래된 애정이 또박또박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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