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내게 다른 사람 기분을 말해줬을까?

아빠가 설명한 타인의 마음, 이해 속에 성장하던 매일.

by 내곁의바람

몇 년 전 친한 언니가 엄마가 되었다.

딸은 이제 겨우 네 살이 넘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언니를 닮아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오랜만에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언니, 근데 언니는 딸이랑 싸운 적 있어?"

"엄청 싸우지! 고집이 얼마나 센 지... "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조신하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착하고 이해심이 많아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나도 엄마랑 엄청 싸웠으니까.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를 아주 화나게 한 적이 있었다.

내복을 입고 있던 기억이 나니 추운 겨울이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엄마가 짐가방을 싸주며 그럴 거면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런 말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엄마가 짐가방에 내 옷을 다 밀어 넣을 때까지 나는 울고 있었지만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쯤에서

"엄마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하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난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여기서 할머니집으로 갈 때 몇 번 버스 탔었지?

어디서 타더라? 떡볶이집 앞에서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되는데...


맹랑한 초등학생시절, 난 엄마가 나가라기에 집 나가서 할머니집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마침 여기저기서 받은 용돈 몇 만 원을 지갑에 곱게 접어 넣어놓았으니, 그걸 들고나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열 살 남짓한 어린 딸을 진짜 내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결국 최후의 발언을 했다.


"저기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 언제까지 드는데?"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백까지 세고 내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곤 방을 나갔다.

내가 70을 좀 넘게 숫자를 세고 있을 무렵, 아빠가 들어왔다.

양 팔 든 채 눈물콧물 범벅인 날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손들고 있으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었는데?"

뭔가 설명한 기억이 있는데, 두서가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 얘기를 한참 듣더니 물었다.

"그래서 숫자 얼마까지 셌는데?"

"몰라..."

"아이고, 손 내려도 된다. 엄마도 없잖아."

악마의 유혹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와 100까지 세고 내리기로 약속했으니 나머지 숫자를 세겠다고 했다.

아빠는 알겠다며 날 기다려주었다.

내가 팔을 내리고 편하게 앉자, 아빠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속상하잖아, 너도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 기분 안 좋지?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엄마가 내가 그렇게 말해서 속상했구나.

그래서 화를 낸 것이구나.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설명해 주니 비로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내 잘못을 알려줄 때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지 않겠어?

저 사람이 네가 그런 행동을 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말들은 늘 내 마음의 브레이크가 되었다.

상처가 될 말과 행동을 되도록 삼켰다.


아빠가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는 버릇을 그렇게 닮아갔다.




나는 언니에게 다시 답장을 보냈다.

"언니, 그래도 걔는 잘 클 거야. 언니 닮아서ㅎㅎ"

내가 아는 언니는 마음이 깊은 사람.

아마 그 애도 언니를 닮을 것이고, 그렇기에 착하고 예쁜 사람이 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