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연 Mar 06. 2022

5번가의 마법

한국에도 성북동, 청담동 같이 권위와 부를 자랑하는 명소가 있듯이 꿈의 도시 맨하탄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리가 있다. 시류에 변함 없이 최고로 꼽히는 곳은 5번가 (5 Ave)이다. 인기 있는 장소가 그렇듯 5번가는 세상의 모든 부자들과 명사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 아무리 유명한 거리라고 해도 인프라 및 공원, 쇼핑등의 편의시설과 보안 및 교육시설,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모두 갖춘 곳은 드물다. 5번가는 빌딩 숲 맨하탄에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센트럴 파크를 바로 옆에 끼고 있어 공원의 인접성과 자연 경관까지 갖추었고 맨하탄 중앙 최적의 자리에 위치해 맨하탄 내에서도 교통이 편리하고 뉴저지나 롱 아일랜드 등 주변 도시를 여행 하기도 용이하다. 또한 유럽풍의 고풍스런 건물들은 모던한 유리벽 빌딩과는 달리 고고한 귀부인들처럼 5번가의 기품을 한 껏 드러낸다. 그래서 전 세계 선진국들의 대사관과 대사관저들이 모두 모여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명품 샵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나도 그 화려함과 우아함에 매혹되어 가끔 시간이 생기면 일부러 그쪽 거리를 지나갔다. 여느 뉴요커들처럼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이나 피크닉을 하고 캐리가 빙의한 듯 화려한 쇼 윈도우를 넋 놓고 들여다 보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그래도 구매할 능력이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만 볼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여러 고급 매장 중 가장 나의 눈에 띄는 건 까르띠에 Cartier 매장이었다. 길 건너편에서도 빛이 쏟아져 나오는 매장은 행객의 눈길과 발길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눈부시게 찬란한 다이아몬드 장신구들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크고 정교한 세공의 보석들은 생전에 본적이 없었다. 정말 저 정도 크기와 아름다움이라면 온갖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요술 반지일지도 모른다. 쓰여진 가격을 보면 반지가 마법은 없더라도 마법사나 되어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여자한테 최고의 친구는 다이아몬드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주변에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의별 생각을 하며 쇼윈도에 껌처럼 붙어 있는데 나의 존재를 알아 챈 문지기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진심 어린 경외심이 느껴졌는지 우람한 체격의 그가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목례를 한다. 한눈을 감고 보아도 초라한 행색을 감출 수 없는 유학생에게 그가 보이는 온정이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보통은 장사에 부정 탄다고 손사레 취급을 당하는게 순서인데 그는 친히 문까지 열어 주며 들어오라는 손짓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황금 다이아몬드 세계의 분위기에 압도 되어 감히 발도 뗄 수가 없었다. 매장안의 손님들은 얼핏 보아도 모두 여배우들처럼 우아했다. 주제도 모르고 갖지 못할 것을 탐한 죄를 범한 것 같아 얼굴도 빨개졌다. 나는 감사의 목례를 하고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우아하게 쇼핑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 그런 날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하루는 나의 세상과는 너무 먼 5번가를 거닐며 동경에 빠져 있는데 식당의 단골 손님을 마주쳤다. 엉뚱한 곳에서 나와 마주친 니키는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고 집에 가는 길인데 저녁 운동시간까지는 시간이 빈다며 커피 한잔을 제안했다. 아직 친구가 별로 없어 거의 외톨이다시피한 나는 흔쾌히 그녀를 따라 갔다. 뉴욕 토박이인 그녀는 유난히 경쾌한 성격에 수다스러웠다. 앉자마자 나의 뒷 배경과 뉴욕에 온 동기에 대해 심문조사를 했다. 1차 면접에 통과 했는지 그녀는 곧 자신의 이야기를 쉼 없이 쏟아 냈다. 열혈 시민 운동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고등학생부터 사회 운동을 했고 특히나 나 같은 이민자나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마도 간신히 안면만 있는 나를 불러 앉힌 이유일테다. 당시엔 아직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이 없었고 마크 주커버그는 하바드를 다니던 때라 페이스북도 없었다. 니키는 수첩에 보관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 사진을 보여 주며 조기 시민활동을 증명해 보였다. 백악관 앞에 모인 여러명의 시위대들 중에 유독 어려서 눈에 띄는 소녀가 바로 그녀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것도 지금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기도 했다. 내가 단번에 그녀를 알아 보자 그녀는 더 신이 나서 미국의 심각한 인권 불평등과 사회 문제를 쭉 열거 했다. 나에게는 꿈의 낙원인 미국이 그녀에게는 가장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나라로 묘사 되었다. 그녀는 모든 열정을 담아 미국의 고질적 문제인 총기 소유법과 흑인 인권 문제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나에게는 거리감만 느껴졌다. 하루 살이 인생에 불과한 나에게 정치나 사회에 대한 담론은 내게는 3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까마득히 멀기만 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니키는 입시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와는 별개로 인권 공부와 투쟁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국과의 격차가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 참여나 사회 운동에 대한 우려 의견이 높고 어른들은 학생들의 인권이나 의견은 가볍게 무시하며 ”어린 니가 뭘 아냐?“며 핀잔 주기 일쑤다. 니키의 조숙한 정치 철학과 소신은 사회 전체의 열린 토론 문화와 경청 문화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니키는 현재 변호사 시험을 준비중인데 인권 변호사가 되어 자신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본격적인 사회 운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금전주의 사상에 깊게 찌든 나의 영혼이 부끄러워졌다. 나의 꿈은 그녀와 달리 지극히 단순하고 개인적이었다. 입신양명도 나에겐 의미 없었고 그냥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나의 목표는 그렇게 편협적이고 속물적이기만 한데 그녀의 목표는 거시적이고 인간적이었다. 한국의 관습과는 달리 미국의 문화는 개인주의가 바탕이라서 모두들 이기적이라고 들었었다. 그런데 금발 머리, 파란 눈의 그녀가 내가 도덕 시간에만 들어 본 공동체를 위한 이타주의의 중요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너와 나 이방인이지만 이렇게 뉴욕이라는 한 도시에 모여 살아. 

우리는 계속 이방인으로 무관심하게 남남처럼 지낼 수도 있어. 하지만 외국인인 너도 뉴욕에 와서 이렇게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너도 나와 같은 인권과 자유권, 평등권등을 보장 받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공원에 산책도 하고 같이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야. 이렇게 개인 개인이 연결 된다면 뉴욕은 이방인으로 채워진 도시가 아니라 친구나 이웃이 채워진 공동체가 되는거야. 소외되는 사람 없이, 차별 없이 우리는 하나의 건강한 공동체가 되는거야.“ 

”그렇지, 그렇겠지“ 

사회 운동가들은 대부분 이상주의자다. 대학 때 만난 운동권에 몸 담은 선배들의 열변이 생각 나기도 했다. 인간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지만 모호한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불특정 다수인 ‘인간’의 숫자는 너무 많고 각자의 희망사항은 너무나 다양하다. 나는 그녀의 희망찬 이야기에 동조는 했지만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관심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인이야. 우리 미국, 미국인이 최고의 나라라고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인권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아니라면 우리가 정말 최고일까? 러시아를 봐. 그냥 힘만 있는 나라면 우리도 러시아랑 다를 바 없어. 미국이 우월한건 인권을 믿기 때문이야. 우리가 더 인권이 보장된 나라라고 모범을 보여야 해. 그래야 저 먼 다른 나라의 독재 국가들이나 비민주국가들도 비교하고 투쟁할 수 있는 모델이 생겨. 그렇게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 지구는 더 행복한 행성이 되는 거야. 이 걸 우리, 미국이 못한다면 다른 어느 나라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너의 행복과 인권이 우리에게 중요한거야.“  

그녀의 변증논법을 들으며 나는 또 다른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말한대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힘은 단순히 국방력이나 경제력에서만 나오는 것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인간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국가관을 세계관으로 확장 시킨 엘리트라는 것을 나는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한국의 뿌리 깊은 가족중심주의 문화는 혈연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의 꿈은 성공해서 부모님 호강 시켜 드리고 서울에 집 한 채 사는 것처럼 가족 편향적이고 일률적이다. 지금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행복이 우리 부모님의 행복’인 단순 명제는 효자 효녀로 칭송 받았기에 더 이상 확장 시킬 필요성이나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어렸을때부터 노래로 익히 들은 ‘잘 살아 보세’도 개인만을 위한 구호가 아니었다. 전쟁 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자국과 자국민을 단결 시키기 위해 만든 구호였다. 그 빛나는 결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지만 여전히 주변국이나 소외국에 대한 관심은 없다. 미국의 인권타령은 승자의 여유, 강자의 허세, 가진자의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락한 삶을 살수 있는 한 엘리트 여성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험난한 사회운동의 길을 꿈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미국이 건강하고 풍성한 사회라는 반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칭찬을 들은 그녀는 들떠서 또 다른 초대를 했다. 다음 날 저녁 남자친구네 집에서 조촐하게 피자 파티를 한다며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었다. 드디어 처음 만나는 ‘미국식 파티’를 나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다시 흔쾌히 ‘OK’를 외쳤다. 


파티라고 해서 턱시도나 드레스를 차려 입은 파티는 미국에서도 드물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파티는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피자나 바비큐를 나눠 먹는 정도다. 뉴욕엔 아파트만 들어차 있고 한국같이 베란다나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는 더 드물어서 바베카 파티는 교외에 사는 미국인들이 주로 한다.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외출을 하는 경우는 우리가 한복 입는 것처럼 무도회 파티 (Prom-party 프롬 파티)나 본인 결혼식 때 한번 입을까 하는 정도다. 다음 날 니콜이 알려준 거리에 도착하니 이미 쿵쾅 거리는 락앤롤 음악이 들리며 이미 파티가 시작 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파트 안에 도착하자 하이틴 영화에서 본것처럼 맥주와 피자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미국이 강대국인 건 대식가의 나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상 한판 만한 피자를 혼자서 다 먹어 치우는 미국인들은 볼때마다 경이롭다.


니콜이 반갑게 맞이해 주며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니콜과 같은 나이 또래인 친구들은 모두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하고 곧 본인들의 화제로 돌아갔다. ‘미국식 파티’에 큰 환상을 갖고 온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은 외국인들에게 혼자 둘러 싸여 있으니 어색하기만 했다. 니콜 남자친구 브라이언이 맥주를 건네 주긴 했지만 그 당시엔 굳이 왜 이 쓰고 떯은 맛의 물을 돈 주고 사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받아 들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 맥주병도 늘고 초대객들의 취기도 올라갔다. 음악 소리도 덩달아 커지며 여기저기 춤판이 벌어졌다. 나는 자연스런 그들만의 파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재밌었다. 미국인들은 제스처와 리액션이 워낙 크고 표정이 다이나믹해서 방관자로 지켜만 봐도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다. 드디어 생생한 미국 문화 체험을 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며 새삼 내가 대견스러웠다. 자정이 되자 더 신나는 흥을 원하는 친구들은 클럽으로 간다며 자리를 떴다. 브라이언은 흥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 재즈 음악으로 바꾸고 친구들과 조촐히 모여 앉았다. 나까지 예닐곱 남은 소규모 그룹으로 자리가 정리되자 몇몇 친구들이 눈빛 교환을 하며 다른 방으로 향했다. 나도 언제 일어 서는게 가장 어색하지 않을지 눈치를 보았다. 한국에서 잠깐 직장생활 할 때도 겪은 일이지만 분위기를 깨지 않고 일어서는 최적의 타이밍을 찾는 일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다른 방을 갔던 친구들이 코를 비비며 거실로 돌아 왔다. 다들 별말은 없었지만 잠깐의 어색함이 흘렀다. (후에 다른 친구에게 설명을 했더니 분명히 코카인을 한 거라며 그런 부류에 섞이면 위험하다고 알려 주었다.) 누군가 어색함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흥분한 목소리로 모라고는 하는데 취기까지 섞인 그의 영어를 나는 완벽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혼자서 낄낄 거리는 것을 보아 분명 농담인 것 같아 보였으나 다른 친구 토마스가 불현듯 화를 냈다. 

”너는 아직 어린 여자 애가 혼자 뉴욕에 왔는데 그런 짖궂은 농담을 하고 싶어?“

”어차피 쟤는 하나도 못 알아 듣는데 뭘 그리 화를 내?“

인간의 직감은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언어 능력이 딸려도 남이 내 욕을 할 때는 귀신 같이 잘 들린다. 

”외국인이라고 못 알아 듣는 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는 거 잘 알잖아. 

너무 저급하다.“ 

토마스의 언성이 높아지자 어색한 분위기는 냉랭하게 변했다. 안경을 쓰고 선한 인상의 토마스는 나에게 다가 왔다. 

”내가 대신해서 사과할게. 쟤 말에 너무 기분 상해 하지마.“ 

”아니야, 괜찮아. 괜히 나 땜에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다. 일어날게.“ 

이상한 감만 눈치를 챘지 내용을 시원하게 모르는 외지인인 나 하나에 분위기가 망치는 것 같아 민망했다. 기사도 정신으로 나를 보호해 주려는 토마스가 고맙긴 했지만 역시나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어떻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할지도 막막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나오는데 토마스도 따라 나섰다. 다들 흥건히 술에 취했기에 아마도 더 있었으면 몸싸움으로 번질 위험도 있었다.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지만 나는 아직도 민망함에 사로 잡혀 있었다. 분명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왜 자꾸 민망함이 드는 것인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로비에 도착하자 토마스가 작별 인사를 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다시 한번 사과할게. 그 친구는 정말 너한테 잘못한 거야.“

”괜찮아. 너무 고마워.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그 친구 말대로 내가 잘 못 알아 들어서 기분 그렇게 안 나빠.“        

”정말이야?“ 

”응 정말이야. 외국인이 이럴 때 좋아.“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토마스의 사과는 나를 진정 시켰다. 그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나를 포함한 모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헤프닝이었다. 고맙게도 그의 솔직한 용기와 정중한 매너가 방금의 나쁜 기억들을 지워줬다. 아직도 언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방인에게 이런 말벙어리 귀벙어리 생활은 짧지 않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털어 내려 길을 걸었다. 안전한 5번가는 늦은 밤에도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호사를 제공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긴 밤을 달래려는지 혼자 조깅을 하는 뉴요커가 무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멀리서 거리 음악가의 섹스폰 연주도 들린다. 홀로 걷는 5번가는 운치도 있고 씁쓸하기도 하다. 

이전 03화 캐리의 원더랜드, 뉴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