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없었다면 뉴욕도 그저 흔한 한 대도시의 이름일뿐 지금의 마법같은 낭만과 화려한 명성도 없었을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로 뒤덮인 울창한 공원은 바쁜 도시 생활에 갇힌 뉴요커들에게 사시사철 자연의 아름다움과 숨을 돌릴 휴식처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뉴요커들의 일상은 그들의 톡톡 튀는 개성만큼 독특하고 다양하다. 봄에는 비발디의 사계처럼 전형적이고 정적인 풍경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이나 연인들이 호숫가를 거닐며 한가로이 볕을 쬐는 모습은 한국의 공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센트럴 파크가 유난스러워 지는 건 여름이다. 한 쪽 구석에선 첼로나 바이올린을 든 음악가 지망생이 연주를 하고 한편으로는 백발의 노인이 런닝 차림에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활강을 한다. 미국에 온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제일 크게 받는 문화 충격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대륙의 크기가 아니라 백발 노인이 새빨간색의 스포츠 카에서 내릴 때라고 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백세 시대라고 하며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보이는 노년층이 많지만 롤러 블레이드 같이 속력이 빠르고 위험한 레포츠를 즐기는 은발의 도전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과 관습 따위는 쿨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을 취사선택하여 자유롭게 사는 뉴요커에게 센트럴 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무대가 된다.
뉴욕의 여름이 매력적인 이유는 초록 공원 속에서 선사하는 음악축제다. 뉴욕은 매해 여름에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음악 축제를 선보인다. 가장 미국적이고 대중적인 락앤롤이나 컨트리 음악부터 오페라 콘서트가 주말마다 열리며 뉴요커들을 불러 모은다. 공원 속 숲속에서 듣는 락 뮤직은 나같은 몸치도 춤을 추게 하고 아리따운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는 어떤 사랑도 믿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 된다. 일찌감치 대기하고 있던 극성 음악팬들에게 야외 공연 무대 앞자리를 뺏기었어도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자유롭게 듣는 음악은 이방인인 나에게는 최고의 위로이자 격려였다. 맨발의 청춘이자 외노자로 살아 온 내가 음악과 문화를 좋아하게 된건 이런 뉴욕의 훌륭한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성장기의 한국은 아직도 가난했기에 문화시설을 꼽으라면 대중 목욕탕 아니면 도서관 정도였다. 대부분이 동네에 변변한 예술관 하나 없었고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님은 미술관 한번 제대로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아마 본인들도 생전에 가본적이 없으리라. 교향곡이나 오페라에 대한 지식은 수능 필수 과목이 아니기에 암기할 필요가 없었고 시청각실에서 본 적이 있는 실시간 공연은 분명 해외 유명 공연단의 공연이었겠지만 교실 끝자락에서 앉아서 보는 녹화 공연으로는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졸음을 참아야 하는 고문에 가까웠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아름다움을 보면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다시 타인에게 나눌 수 있다면 또 다른 감동이 된다는 것을 센트럴 파크에서 처음 체험했다. 유명 극장처럼 화려한 무대장치나 조명이 없어도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들에게 음악과 관객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불러 낼 수 없는 감동이다. 그리고 관객은 환호와 갈채에 진심을 담아 그 열정에 답한다. 도심 속 숲속에서 타인으로 마주한 관객과 아티스트의 존재가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다 서늘한 가을이 되면 뜨거웠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 식지 않은 듯 밤 늦게까지 살사 댄스를 추는 뉴요커들이 등장한다. 클럽의 화려한 사이키 조명도 없고 매끈한 무대가 없어도 자유로이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들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세상의 시계가 멈춘듯 조용한 공원의 가을 밤에 나무 숲 사이에서 춤을 추는 그들 모습은 현대의 숲속 요정처럼도 보인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뉴욕의 이방인인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나 눈이 내린 날이면 센트럴 파크는 겨울왕국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아름드리 나무숲이 빌딩숲을 가리며 도시의 갑갑함을 잊게 만든다. 먼 빌딩의 불빛들은 나뭇가지에 걸리며 반짝이는 트리 장식이 되고, 쉬지 않고 귀를 울리던 도시의 소음은 눈속에서 사라진다. 눈이 흔치 않은 서울에서 자란 내게 풍성한 도시 속 눈 구경은 또 다른 낭만이었다. 그리고 좀 더 여유가 있는 날에는 아이스 스케이팅 장을 찾았다. 서투른 초보자인 내가 주로 할 수 있는 건 보호대를 잡고 걸음마 정도만 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의 설렘과 기쁨은 넘어질 때의 아픔과 챙피함도 기꺼이 잊게 해주었다. 때때로 운이 좋다면 전문 피겨인처럼 (한마디로 김연아처럼) 전문 의상을 입고 빙반을 쉴새 없이 도는 왕년의 피겨 여왕(?)들도 구경할 수 있다. 링크를 메운 대부분의 초보 이용객들 속에서 화려한 반짝이 의상을 입은 그녀들의 용기와 스핀을 연출하는 묘기는 매번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의 지나친 시선이 무례가 될줄 알았는데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관중의 관심을 즐기는 것 같았다.
'관종인 것인가 쿨한 것인가?'
그들은 나의 좁은 생각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나 매순간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뉴요커들은 어디 구석에서나 빛을 냈다. 그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삶을 엿보며 자연스레 나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도 크기 시작했다. 뉴욕 이후로도 여러 대도시를 다녀 봤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좁은 한 곳에서 모든 문화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뉴욕이 유일무이하다. 24시간 쉬지 않는 도시의 소음과 맨하탄의 협소한 공간에 갇혀 사는 뉴요커에게 센트럴 파크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는 그들의 자본주의 사상처럼 백만불짜리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