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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Mar 06. 2022

캐리의 원더랜드, 뉴욕

전 세계 국적을 불문하고 21세기의 30~50대 여성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아이콘은 누구일까? 나는 단호하게 미국의 유명 TV 시리즈이자 동명소설 원작인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캐리, Carrie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자유 분방한 연애와 성(sex) 이야기가 매스 미디어에서 과감히 방영 되며 미국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발칵 뒤짚었다. 지금 세대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이 아무리 한국 보다 개방적이라고 해도 20년 전의 미국도 여성과 남성의 절대적 ‘성’평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성의 자유 분방한 연애는 성적 우월한 능력이자 수컷의 본능이지만 여성에게는 문란하고 부도덕한 인격체의 방탕이고 본능을 참지 못하는 원죄의 범죄자로 치부되었다. 당시 뉴욕에서도 기성세대들은 한국의 표현대로 “말세”라고 했고 아니면 하얀 쓰레기 (white shit)라며 여성 성평등의 자유와 권리를 외면했다. 하지만 여자 뉴요커들은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라도 본방 사수를 했고 다음날이면 가까운 친구들과 모여 서로의 연애사를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비교분석했다. 


캐리의 자유롭고 발랄한 성격은 과감한 패션감각으로도 대변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매 시즌마다 다양한 시도로 시장을 선도하고 싶었지만 가공 인물 캐리처럼 패셔니스타라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매 에피소드 마다 등장하는 그녀의 믹스 매치 (Mix Match) 스타일은 캐리 룩 (Carrie Look) 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낳았고 그녀가 매장 앞에 설 때 마다 찬사를 내뱉은 스페인 디자이너의 마놀로 블라닉 신발은 단번에 전 세계 여성이 가장 갈망하는 스타로 등극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는 내 주변 여자친구들이 모두 한 두개쯤은 갖고 있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나는 독립군 기질을 발휘하여 그 대유행에 합류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때 내내 명찰 차고 다녔던 것도 지겨운데 굳이 목걸이까지 만들어서 거는 것에 반감이 들었다.) 

sex and the city, 캐리의 목걸이 


그녀의 감각적인 혁명은 패션 산업에만 영향을 끼친게 아니다. 뛰어난 글쓰기 솜씨로 작가의 직업을 갖고 있지만 패션과 사랑의 달콤함에 중독된 그녀는 에피소드 마다 쇼핑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소비 습관은 많은 현대 여성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며 가산 탕진은 패션 매니아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필수 덕목이라는 긍정적인 인식 전환과 면죄부를 제공했다. 어떤 사회 운동가나 예술가도 이런 파급력은 없었다. 그리고 스토리의 배경인 뉴욕은 그녀의 사랑과 삶이 아무리 실패해도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로 밀레니얼 시대의 패션 아이콘 캐리가 영원히 함께 할 원더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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