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나는 사랑을 모른다. 알듯말듯한 사랑은 불쑥 찾아오다가도 금세 발길을 뚝 끊어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것이 사랑이었다는걸 깨닫는다.
가끔 나는 막막함을 느낀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고 지쳐버리는 내 일과가 지겹기도 하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나는 나의 마음에 휴식을 줄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사랑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한낱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짝 비틀어진 한지 위에 떨어뜨린 먹물과 같이 내 일상에도 사랑이 서서히 스며들기를 꿈꾼다.
사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걷다가도 대화를 나누다가도 같이 일을 하다가도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건 당연하니까. 그러나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해나가는건 너무나도 어렵다. 웬만한 인류애 없이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심이 사랑으로 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매순간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다. 호감이던 비호감이던 누군가를 향한 관심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싫어하는 마음도 관심에 포함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참 어렵다. 호감에서 사랑으로 변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참 어렵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모른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볼 때면 문득 한 사람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일 때도 있고 그저 감정적으로 애틋함이 느껴지는 사람일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을 제대로 알게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 순수한 그때의 감정으로 보면 어쩌면 그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고 따지지 않고 그저 순간에 생겨난 감정에 솔직한 그때가 아마 사랑에 가장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만큼 누군가에게 깊고 솔직한 마음을 품는다는건 참 어려우니까.
나는 내 감정이 다양하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저 그냥 그런대로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게 나다운거라고 생각하니까. 크고 작은 일에 사사로이 나의 감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무던하게 흘러가는 나의 인생을 찰나의 감정으로 어지럽히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을때도 있고 숨길때도 많다. 그 감정들은 모두 금방 지나가버릴 소나기같은 감정일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금방 나를 떠나버릴 소나기에 헤어나오지 못해 발버둥치고 싶지 않으니까. 금방 지나가버리는 만큼 나의 온 세상을 바꿔버릴 소나기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도 나는 사랑을 모른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도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도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이렇게도 어려운줄 알기에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픈 사랑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내가 간과한 사실은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랑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저 나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을 뿐 나는 지금도 오늘도 사랑을 하고있다. 사랑을 해도 사랑을 하고있는줄도 모르는 나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