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간섭은 함께 공존할 수 없기에
나는 사랑에 대해 매우 예민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상대방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른 감정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다. 어쩌면 사랑은 감정에 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속성을 단순한 감정으로 정의 내리기에는 사랑이 가지고 있는 부수적인 수많은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다른 감정으로 인해 관계에 있어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상대방과 싸워서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 순간의 분노일 뿐 며칠이 지나고 나면 잠시 사그라진다.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그 찰나의 감정일 뿐 그 감정으로 인해 평생의 상처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느끼는 그 순간부터 아프고 사랑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로 인해 결국에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상처로 가득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인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에서도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간혹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서로에게 혹은 일방적으로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사랑이라는 게 분명 아픈 거라고 하지만 서로에게 죽을 듯한 상처를 남기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어디선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에는 간섭이 필요한가. 나는 간섭이라는 단어가 신기하다. 듣자마자 불쾌해지고 불안해진다. 누군가의 간섭은 내가 나의 삶을 이끄는 주체가 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고 누군가의 간섭은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슬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간섭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핑계로 이루어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 하기 때문에 간섭하고 친척이 조카와 사촌들을 ‘사랑’ 하기 때문에 간섭하고 내가 애인을 ‘사랑’ 하기 때문에 간섭한다. 그리고 그 간섭은 결국 ‘사랑’을 깨트리는 지름길로 이끈다.
간섭은 통제한다. 짧은 치마를 입지 못하게 통제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가고 싶은 대학에 가지 못하게 통제한다. 이렇게 간섭 자체가 애초에 통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누군가의 간섭을 느끼면 자연스레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그 누가 통제 당하는 걸 좋아하겠는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 상대방의 간섭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 여기고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사람의 말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서 간섭이 생기게 되면 그 사람과 거리를 두기 어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제 나의 삶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나에게 중요해지고 그들의 생각을 따르고 존중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더욱 사랑을 앞세운 간섭은 통제력이 강해진다.
보통 누군가가 나를 통제한다고 느껴지면 바로 그들을 떠난다. 그러나 이 간섭이, 이 통제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느껴지면 그들을 떠나기가 어려워진다. 그들이 나에게 간섭하는 이유가 나를 ‘사랑’해서 나를 아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면 그들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랑’의 기한이 끝나고 나면 간섭으로 인한 후유증을 심하게 앓게 된다. 그 사람의 간섭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모두 상처가 되어 평생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나는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간섭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간섭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의 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화가 나서도 안되고 벌을 주어서도 안된다. 나와 상대방은 전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간섭은 사랑의 속성과 전혀 맞지 않다. 사랑의 속성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간섭과 사랑은 절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