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존중이 필요하다

뿌리가 올바른 사랑은 사랑하는 방식도 방법도 존중에 뿌리내린다

by 더 메모리 THE MemorY


우리는 왜 이리 사랑한다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왜 상대방을 옥죄고 괴롭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걸까. 사랑해서 괴롭고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괴롭고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이기심일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껴주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왜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시 돋친 말로 서로를 찌르는 걸까. 아마 그건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의 대상이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다.


내가 중학생 때 한창 나쁜 남자가 유행해서 자상하고 스위트한 남자보다 츤데레에 짓궂게 구는 남자를 선호하는 유행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같이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를 볼 때면 나쁜 남자 시리즈들을 많이 골랐었다. 그때는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게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쁜 남자들에게 끌렸던 이유는 사랑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한다면서 헤어지고 하는 그런 것들이 나는 애틋해 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존중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쁜 남자는 상대방에게 진심인 적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없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정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정말 상대방을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라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존중이 항상 전제되어 있어야만 한다.


존중 없이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일방적으로 떠나고 떠나보내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라면 제대로 된 방식으로 존중이 바탕이 된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그리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한다면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사랑을 앞세워 누군가의 인생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이기적인 독점욕에서부터 비롯된 잘못된 욕구이다.


사람은 존중받을 때 가장 빛난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평안해진다.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존중이다. 나와 의견이 달라도 나의 생각에 따라주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은 나의 삶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존중의 시작이다.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어른에게 있어 아이들의 삶은 아직 미완성이고 부족한 것투성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것 투성이인 아이들의 삶에 어른들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삶의 주체는 그들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덧셈 뺄셈을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는 덧셈 뺄셈을 배울 시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 왜 이렇게 쉬운 덧셈 뺄셈을 못하느냐고 나무라고 곱셈과 나누기를 하도록 강요하기 시작하면 그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각자의 삶에 다른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꼭 해야 하는 일들도 모두 다 다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놓치면 삶에 한 부분에 틈이 생기게 된다. 인정받지 못해 생긴 틈, 경험하지 못해 생긴 틈, 창의성을 기를 기회가 없어 생긴 틈. 어른이 되어 차가운 비가 내리는 사회에 나오게 된 아이들은 그렇게 생긴 많은 틈들 사이로 쏟아지는 시린 빗물에 젖어버린다.


존중은 자신감을 심어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으로 인한 자신감은 존중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그 존중이 없는 사랑을 받을 때면 항상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불안에 떨게 된다. 왜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게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이 중심에는 존중 없는 사랑이 심어주는 의심의 씨앗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어른들의 조언에는 아이들이 쉬운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고 어른들의 말은 사실상 다 옳다. 오래전부터 어른들의 입을 통해 굳이 어렵고 힘들게 갈 필요 없이 쉽게 갈 수 있는 방법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부딪히고 깨지면서 그 방법들을 깨닫기를 선호한다. 굳이 경험해야 아느냐고 나무라는 어른들이지만 나는 애초에 그 경험을 막는 이유가 궁금하다. 힘들지 않아도 되는데 힘들었던 경험도 우리 인생에 필요할 텐데 왜 모든 걸 쉽게 가기를 바라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 방법들을 알려주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사랑에서 비롯되어겠지만 그 방법을 전하는 방식에는 존중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상대방의 삶을 그들의 삶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 혹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상대방의 삶에서 찾으려고 할 때 벌어진다.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다. 그리고 의심과 불안의 씨앗이 마음 깊이 심어진다. 그렇게 점차 벌어지는 마음의 틈 사이로 야속한 차가운 비가 그들을 맞이한다.

나는 사랑에는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존중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거다. 그렇게 존중은 사랑에 꼭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속성이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즉 사랑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존중이 없다면 사랑의 뿌리조차 갉아먹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연인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작 연인의 외로움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애초에 뿌리가 올바른 사랑은 사랑하는 방식도 방법도 존중에 뿌리내린다. 그렇기에 사랑에는 존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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