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겹겹이 신뢰한다

by 더 메모리 THE MemorY


인간 다 뒤에서 욕해. 친하다고 뭐, 욕 안 하는 줄 알아? 인간이 그렇게 한 겹이야? 욕하면 욕하는 거지. 뭐 어쩌라고. 뭐 어쩌라고 일러. 쪽팔리게.
- 나의 아저씨 中


인간이 그렇게 한 겹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한 겹으로 싸여있는 게 아니라 겹겹이 싸여있는 게 인간이라면 누군가의 욕을 하는 게 당연한 건가. 혹은 겹겹이 싸여있는 만큼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하고 이해하는 게 힘든 건가.


인간은 뒤에서 욕한다. 한솥밥을 먹던 사이에도, 함께 많은 일을 도모했던 사이에도, 심지어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사이에도 서로를 욕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가며 본 사이어도 서로 이야기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사이일지라도 욕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대단한 인간은 자신을 해하려고 한 사람의 욕을 하지 않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욕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하지 않는 인간. 욕하는 게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인간.


누군가가 자신을 욕하면, 특히 친하던 사이에게서 자신의 욕을 듣는다면 상처받지 않을 인간이 없다. 모든 게 상처가 되고 흉터가 남는다. 이미 한 번 신뢰관계가 깨진 관계는 이어 붙이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점은 누군가가 자신의 욕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용서하고 말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항상 빠지는 딜레마는 그 욕을 하는 사람은 그저 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자유로운 생각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그러니 욕하면 욕하는 거다. 욕을 한 사람을 용서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피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았을 뿐이기에 그 인간의 생각을 내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드라마에서 박동훈은 자신의 부하직원이 자신의 욕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상처가 되지만 그 상처가 그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화가 나지만 그 화가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이지안을 통해 전해 들은 자신의 욕은 부하직원의 생각일 뿐 그 생각이 박동훈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부하직원에게 ‘잘못했습니다’를 열 번 외치게 한 것으로 상처를 털어버린다.


왜 그는 이지안에게 쪽팔린다고 말했을까. 사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의 욕을 한 사람보다 고자질을 한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고자질을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왜 나에게 이 말을 해줬을까.’ ‘혹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욕을 한 사람에 대한 신뢰보다 고자질을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하락한다. 그래서 이지안에게 쪽팔린다고 말한다. 자신의 신뢰를 자신이 갉아먹는지 모르는 이지안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려고 욕 한 사람에게 맞선 이지안이 쪽팔린다. 어떤 면에서는 어쩌면 박동훈은 쪽팔린다는 말보다 바보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뢰를 갉아먹고 자신의 입지를 좁힌 이지안이 바보 같으면서도 불쌍한 거다.


어느 순간에는 우리 모두 누군가를 욕하지 않을 때가 올까.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져서 누군가를 욕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올까. 나를 아무리 해하려고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이 한 겹이 아니라는 말이 꼭 인간이라면 욕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한 겹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를 더 알고자 노력하게 될 테고 그렇게 한 꺼풀 한 꺼풀 서로를 알아가게 될 때 누군가를 욕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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