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인간적일 때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 나의 아저씨 中
“잘 살잖아. 그러니까 좋은 사람 되기 쉬운 거야.”
이 세상에서 잘 살고 못 살고의 차이는 분명하다. 특히 빈부격차가 보여주듯이 돈에 있어서 잘 사는 사람들과 못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분명한 것을 넘어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여유가 달라지기 때문일까? 사람의 여유는 돈과 시간에서 나오기 때문인 걸까?
바쁜 것은 악에 가깝다. 선함은 여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기 쉬울까. 나는 종종 여유를 가지고 모든 일을 바라보라는 충고를 들을 때가 있다. 사람이 여유가 없으면 실수가 잦아지고 관계에 있어 여유가 없는 사람은 그가 본래 가진 매력을 반이나 잃기 나름이다. 그러나 이런 여유를 가지는 것과 잘 살고 못 사는 것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조건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운 걸까 아니면 그저 쉽게 보이는 걸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온 ‘잘 사는 것’의 의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초반에 이지안이 본 박동훈은 잘 사는 사람이었던 걸까. 그리고 박동훈을 알아가면서 이지안은 그가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 건가. 초반에 이지안은 박동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하면 월 5-600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이지안에게 박동훈은 분명 잘 사는 사람이었다. 2천만 원의 빚을 갚지 못해 처절한 삶을 사는 이지안에게 박동훈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잘 살면 행복해야 하는데, 잘 살면 인생이 즐거워야 하는데, 왜 이 사람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래서 이지안은 박동훈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물질적인 충족과 연관 지어 말한다. 그가 착한 이유는 돈이 많아서, 여유가 넘쳐서, 시간이 있어서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러나 곧 이지안은 깨닫게 된다. 박동훈이 좋은 사람인 것은 그가 돈이 많아서도 잘 살아서도 아니라는 것을. 대표이사인 도준영은 분명 돈이 많다. 재벌가에 사위로 들어가 대기업 대표가 되고 이지안에게 천만 원을 주고 단 하루 만에 일억을 준비할 정도로 돈이 많다. 그러나 이지안은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잘 살아서 좋은 사람이 되기 쉬운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잘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박동훈은 부하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윤이사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그는 박동훈에게 1분 당 천 원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 것이라며 돈을 날로 받아먹는다며 큰 소리를 친다. 박동훈은 천 원을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책상 위에 둔다. 시간을 돈으로 보는 윤이사와 그런 윤이사의 시각에 맞춰주는 박동훈.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박동훈은 여유가 없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여유가 없으면 악에 가까워야 일반적이다. 잘 살지 못하니까 좋은 사람 되기가 어려워야 한다. 그런데 박동훈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박동훈이 좋은 사람인건 잘 살아서 혹은 못 살아서가 아닐 거다. 그저 박동훈이라는 인간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좋은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동훈만 좋은 사람은 아니다. 박상훈, 박기훈, 최유라, 겸덕, 정희, 심지어 이광일마저 좋은 사람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분명 선함이 있다. 그러나 박동훈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인간적’인 것에 있다. 박동훈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양심이, 선함이 그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듣는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고 악한 짓을 저지르는 도준영과 다르게 박동훈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인간적일 때, 인간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