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주는 복수를 하자
나쁜 놈 잡아 족치면 속 시원할 거 같지? 살아봐라 그런가.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오물 뒤집어써. 그놈만 뒤집어쓰지 않아.
- 나의 아저씨 中
한참 인터넷에 떠돌던 명언이 있었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다’라는 글귀였는데 어렸던 나는 이 글귀를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낯간지러운 말이라 생각했고 진정한 복수는 똑같이 되갚아주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도 그럴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속 시원하게 복수하고 갚아주는 것이 나에게 찬란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글귀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무의식 중에서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복수는 되갚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성공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에 앙심이 생길 때가 있다. 나에게 이런 상처를 준 사람, 무례한 말을 했던 사람, 해코지를 하려 했던 사람, 배신했던 사람 등 사람에게 앙심을 품을 일들을 매번 경험한다. 나를 억울하게 만들고 나와 나의 가족을 아프게 하고 끝나지 않을 기나 긴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가 복수를 주제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복수니까. 그러나 복수에 관한 영화, 드라마가 널리고 널린 와중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이상하게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점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속 시원함,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해방감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나쁜 놈 잡아 복수하면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오물을 뒤집어쓴다. 어떻게 하든 복수를 하려고 하는 순간 마음의 오물을 뒤집어쓴다. 나도 그와 똑같이 나쁜 마음과 생각에 의해 통제당하고 조종당한다. 단지 내 손을 더럽힌다고 표현할 수가 없는 건 굳이 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지 않더라도 복수를 마음에 품는 순간 그 오물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동훈은 도준영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도 복수를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정말 밉고 싫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 밑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도준영과 같은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 대신 성공하기로 결심한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니까.
사람에게 공감을 사는 것은 분명 복수일 거다. 나를 대신해서 복수해 주는 스토리를 보다 보면 억울했던 것이 풀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분명 복수가 아니다. 살다 보면 복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한다. 복수를 꿈꾸다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면 혹은 복수가 끝나고 나면 찾아오는 허무함에 사람들은 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복수 대신 성공을 꿈꾸고 ‘나’의 삶을 살다 보면 삶에서 오는 따뜻한 위로를 통해 살아갈 수 있다.
비록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준 사람일지라도, 그 흉터가 깊게 내 마음과 몸에 새겨질지라도 똑같이 되갚아주는 복수는 나의 흉터와 기억을 지워줄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팠던 기억과 흉터를 나의 삶에 녹아내는 데에 성공하면 끔찍했던 기억과 상처는 어느새 나에게 아픔을 줄 수 없게 된다. 그 기억은 나의 삶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 한 부분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 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 아닌 내가 말하는 성공이기에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내 마음에 성공을 새기면 복수는 이루어진 거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내 삶에 한 부분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최고의 복수를 성공으로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