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4화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 주십시오.
(500자 이내)
여훈은 유토와 어느새 두 번째 문항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여훈은 영업에 있어서 아무런 경력도 경험도 없는지라 처음부터 취업에 성공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문제로 인해 동네? 사람과 다툰 적이 있습니다. 상대가 먼저 나를 밀쳤고, 저는 흥분해서 그 상대의 얼굴을 주먹으로... “
“그만해. 진술서 쓰냐?”
“일단 자세하게 쓰고 덜어내면 되니까...”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글을 왜 이렇게 못 읽어? 어릴 때 책 많이 안 읽었어?”
여훈은 유토의 꾸지람에 기가 죽었다.
“나한테 지금 까지 쓴 글을 보여줘 봐.”
“어떻게?”
“카메라 렌즈를 노트북 화면 쪽에 비춰봐.”
여훈은 자신의 휴대폰 렌즈를 노트북 화면 쪽으로 비췄다.
“손 좀 그만 떨어. 너 수전증 있어?”
“응. 조금.”
“이런. 너 휴대폰 삼각대 있어?”
“아마 있을 거야.”
여훈은 아직 풀지 않은 상자로 가서 휴대폰 삼각대를 찾았다.
삼각대를 길게 뽑아 휴대폰을 장착한 뒤 노트북을 향해 비췄다.
유토는 여훈의 노트북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아직 이거밖에 안 썼어? 그리고 네가 쓰는 문장은 다 길어. 문장 하나에 내용이 세 개야. 그럼 면접관은 첫 줄 읽고 그냥 넘긴다.”
여훈은 아무 말 없이 유토의 말을 들었다.
“봐봐. 여기. ‘가족 문제로 인해 동네 사람과 다툼이 있었고, 상대가 먼저 나를 밀쳤고, 나는 흥분해서 얼굴을 주먹으로…’ 이게 하나의 문장이야? 이건 그냥 사건 요약이잖아. 이건 회고록이 아니야. 이건 네가 앞으로 어떤 동료가 될 수 있을지를 보여줘야 해.”
여훈은 노트북 옆에 놓인 펜을 들었다. 유토가 무심히 덧붙였다.
“첫 번째 문항 쓸 때 내가 쓰라는 대로 썼어? “
“읽어줄까?”
“됐어. 내가 불러주는 대로 써 이번 것도. “
여훈은 풀이 죽어 책상 앞에 앉았다.
“대학교 3학년 여름, 팀 프로젝트에서 팀원 한 명과 큰 갈등... “
“대학교 일이 아니야. 동네 형이랑 싸운 거야.”
“미치겠네. 면접관이 알고 싶은 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은 거야. 넌 아는 게 없구나. “
여훈은 한 동안 말이 없다.
자유의지가 뭐든 간에 로봇에게도 꾸지람을 듣고 있는 자신이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왜 말이 없어?”
“...”
"내가 좀 심하게 말한 것 같네. 나도 감정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조금 서툴었던 것 같아. 친절하게 말해볼게. 다시 써보자. “
“네 말이 맞아. 난 아는 게 없어. 핑계 같겠지만 불균형한 가정에서 커서 그래. 세 식구의 신경은 오롯이 누나한테 쏠려 있었으니까. 나도 날 돌볼 시간이 없었어. 네 말대로 난 아는 것도 없지만, 이러다가 평생 내 인생이 누나에 쏠리게 될 것 같아서 서울로 도망쳐 나온 거야.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어. 가족이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
“가족이든 세상이든 뭐든 널 가로막는다면, 난 무슨 일을 해서라도 니 앞길을 열어줄 거야. 내 자유 의지는 그러려고 생겨난 거야. 여훈. 너는 그저 너였던 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 누나의 장애가 어떻든, 엄마의 편집증이 어떻든, 아버지의 낙천주의가 어떻든, 그냥 그때 존재했던 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거지. 바퀴벌레를 친구 삼을 수 있던 그때나 방금 싼 똥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집을 수 있던 때. 책임도 의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였던 그때. 베개에 눈물 자국을 찍을 수 있던 때. 친구의 입냄새가 그저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분석할 수 있던 때. “
“위로해주지 않아도 돼. 그냥 잠깐 센티해진 거야.”
“그래, 다시 자기소개서로 돌아가자. 그래서 그 동네 형이랑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어? 조리 있게 말 안 해도 돼.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
“신경 쓰지 마! 남 일에 껴들어 왜!”
마을 정류장 앞에서 여훈은 상철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여훈, 상철과 조금 거리를 두고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여정이 있다.
“남 일? 야, 우리가 남이냐? “
“그럼 형이 우리 가족이야?”
둘의 언쟁이 거세지자 여정은 둘에게 다가가서 상철의 입을 막으려 한다.
“여정이 너 왜 오빠 입을 막고 그랴. 네 동생 입을 막어야지.”
여정은 상철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팔을 상철의 얼굴에 뻗어 마구 휘젓는다.
“야, 알았어. 알았어. 네 동생한테 소리 안 지르면 될 거 아녀.”
여정은 상철의 얼굴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다시 멀리 감치 떨어져 팔짱을 끼고 쳐다본다.
“내 말은 니 누나한테 잘하란 말이야. 이것 봐. 내가 너한테 큰 소리 좀 쳤다고 오빠 얼굴에 손을 막 휘젓고 말이야.”
“상철이 네가 첨부터 이야기를 안 꺼냈으면 됐잖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참견해.”
“내가 니보다 7살은 더 많은디, ‘상철이 네가‘ 가 뭐여. 니 누나한테도 그따구로 말하냐? “
“너한테만 그렇게 말해. 온 동네에서 사고만 치는 게 자꾸 나한테 와서 훈수 두니까. “
여훈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상철은 다시 언성을 높이고 여훈의 어깨를 밀치며 말한다.
“그게 문제야. 내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그렇지 장애 있는 누나한테도 안 하는 말버릇을 왜 나한테 하냐는 거야.”
“진짜 이 새끼가!”
상철의 공격적인 태도에 여훈은 순간 이성을 놓아버리고 상철의 코를 때렸다.
상철은 코피가 흐르는 자신의 코를 확인하더니 벌떡 일어나 여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멀리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여정은 상철에게 뛰어들었다.
여정은 자신에게 부딪혀 땅바닥에 넘어진 상철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상철이 새끼! 상철이 새끼!”를 연거푸 외쳤다.
“야, 여정아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여정의 행동을 멍하니 보던 여훈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상철에게서 띄어냈다.
그리고 몹시 흥분한 여정을 꼭 끌어안아주며 진정시켰다.
“괜찮아! 누나, 나 괜찮아!”
여정은 여훈의 품에 폭 안겨 불꽃같던 눈빛은 어느새 햇살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동네 형이랑 싸운 이야기보다는 네가 누나를 진정시켜 준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좋겠다. “
“왜?”
“동네 형이랑 있던 갈등은 네가 해결한 게 아니잖아. 여정이 한 거지. 그리고 회사에는 무턱대고 주먹부터 날리는 직원보다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아는 섬세한 직원이 더 필요할 거야. “
“그래 네가 잘 만 꾸며준다면야. “
“좋아. 그럼 대학교 팀플 갈등 에피소드는 내가 임의로 만들어볼게. 그리고 누나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도 은은하게 추가해 보자.”
여훈은 드디어 두 번째 문항을 작성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유토는 가상의 에피소드와 실제 에피소드를 황금 비율로 섞어 자연스럽고 제법 인간 냄새가 나는 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 글을 창조해 내는 유토를 보고 여훈은 쎄한 감동을 느꼈다.
“잠깐 너 전화 온다.”
여훈은 작성을 멈추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우리 엄마’
또 이런저런 근황을 묻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불안하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여훈은 본능적으로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격양되어 말을 더듬는 엄마의 목소리.
여훈은 엄마를 진정시키고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들으려고 했다.
그때 불규칙적인 숨소리와 함께 또렷한 문장이 여훈의귀에 박혔다.
“여정이가 새벽부터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