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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

연재소설 - 3화

by 지진창

그날은 비가 정말 많이 왔었다.

내 고향은 한번 비가 오기 시작하면 온 동네를 휩쓸어갈 만큼 쏟아졌다.

하천이 범람할 때도 있었다.

때문에 마을 어른들은 비가 오면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던 날 아빠는 아랫집 상철이 형네 마루 바닥이 잠겼다는 전화에 단숨에 달려갔다.

아빠는 우리 마을 맥가이버였다.

젊으셨을 때 건축업을 오래 하셨던 덕에 마을 사람들 집에 문제가 생기면 항상 달려가 고쳐주었다.

감기에 걸려도, 발목을 접질려서 잘 걷지 못할 때도 항상 고민도 않고 뛰어나갔다.

그러면 누나는 항상 아빠를 뒤따라 나갔다.

발랄하게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하지만 그날은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천둥도 치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엄마는 아빠는 막지 않았지만, 누나는 막아섰다.

아빠도 누나를 조심스럽게 타일렀고, 나도 누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렇게 아빠는 구멍 난 우산을 들고 장대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빗물이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가 누나의 울음소리를 이기지는 못했다.

누나는 오열하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식탁을 뒤엎기도 하고, 베개를 던지기도 했다.

엄마는 누나를 진정시키려고 꼭 끌어안았다.

꼭 끌어안고 노래를 불러줬다.

엄마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난장판이 된 거실에서 엄마는 누나를 꼭 끌어안고 노래를 불러줬다.


난 엄마 어깨 너머 창에 비춘 거실을 바라봤다.

소녀를 꼭 끌어안은 여자와 그걸 바라보는 소년.

그 소년은 주룩 하고 코피가 흘러나왔다.

난 “엄마 나 코피!” 하고 말했다.

엄마는 누나를 끌어안은 채 소리 없이 “휴지! 휴지!” 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난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그날따라 코피가 많이 났다.

휴지를 전부 적셔서 다시 한번 휴지를 뜯어 코를 틀어막았다.

마룻바닥에 코피가 떨어진 걸 알았을 때, 난 쭈그려 앉아 휴지로 닦아냈다.

천둥이 번쩍 치자, 누나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무심코 다시 창문을 봤을 때 쭈그려 코를 틀어막은 채 마루 바닥에 떨어진 코피를 닦는 나, 엉엉 우는 누나 그리고 누나를 꼭 안아주는 엄마가 비춰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번쩍 천둥이 치고, 누나는 더 크게 울었다.


그다음 날도 역시 비가 왔다.

나는 보통 오전 8시면 눈을 떴는 데, 그때는 오전 5시쯤 일어났다.

난 모두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밖으로 나갔다.

신발장에는 전날 아빠가 쓰고 나간 우산이 세워져 있었다.

난 아빠의 낡은 우산을 들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우산을 쓰고 마을 아래로 걸었다.

양쪽 어깨에 빗물이 뚝 뚝 떨어졌다.

아빠의 우산에는 구멍이 두 개 나있었다.


난 마을 아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 되신 할아버지 집 농기구 창고로 들어갔다.

그 할아버지는 혼자가 된 후 기력이 약해져 농사도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온 신경을 쓰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농기구 창고 뒤편에는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구멍이 있었는데, 몸이 작은 나는 그 구멍으로 들어가 웅크려 앉았다.

여름이었지만 날씨가 쌀쌀해 입김이 나왔다.


난 그날 그렇게 가출을 했다.

인생 첫 가출은 꽤 설레었다.

나를 찾아 헤매는 엄마와 아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우는 누나.

내 이름을 온 동네에서 부르며 찾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게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너무 일찍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축축한 창고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깐 잠에 들었다.


여훈아!

여훈아!


마을 사람들이 날 찾는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미세하게 들렸다.

그 소리에 깬 나는 엄마 아빠에게 관심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마을 사람들은 내 이름이 아닌 누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여정아!

여정아!


내가 가출을 한 날.

누나도 가출을 했다.

난 너무 서러워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내 울음소리는 누나처럼 빗소리를 뚫진 못했다.

난 그때 평생 가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훈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난 너무나도 기뻤다.

하지만 날 부른 건 홀딱 젖은 채로 개구멍으로 들어온

누나였다.

누나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환하게 웃었다.

너무 미운 누나였지만, 그때의 손바닥은 너무 따뜻했다.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차갑게 비에 젖은 누나의 손이 얼굴에 닿았을 때 따스함.

난 누나를 보자 터져 나온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

원망스러웠던 건지, 서러웠던 건지 알지 못했다.

내가 울자 꼭 끌어안아주는 누나가 엄마를 따라 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 포옹이 그렇게도 따뜻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누나의 손을 잡고 개구멍을 나왔을 때 해가 떴다.


“업어줄까?”


누나는 자세를 낮추고 등을 보이며 내게 말했었다.

난 아무 말 없이 누나의 등에 업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난 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내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나를 보고 엄마는 말했다.


“누나 찾아줘서 고마워 여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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