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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

연재소설-5화

by 지진창

“여정이가 새벽부터 안 보여.”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여정이 사라졌다.

여정은 정신적인 이유로 집과 가족에 과한 집착을 보인다.

그런 여정이 새벽부터 없어졌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떡하니! 새벽부터 애가 보이지가 않아. 곧 태풍도 올 텐데.”


“상철이 형 집이나, 이웃들한테는 전화해 보셨어요?”


“이미 다 전화했지. 아무도 못 봤대! “


“엄마 일단 저도 빨리 내려갈...”


”그건 안 되지. “


유토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응?”


“그건 안된다고.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


두 모자의 전화에 차가운 ai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들, 뭐라고 했어? 중간에 전화가 끊겼나 봐.”


“아, 엄마 경찰에 신고는 하셨어요?”


“진작에 해서 경찰도 동네방네 찾는 중이야.”


“아빠는요?”


“아빠도 오토바이 타고 나가서 찾고 있어. 나는 여정이가 집에 올지도 모르니까 기도하려고 들어왔어. 경찰도 그렇게 하래.”


“거 봐. 경찰이 알아서 찾아줄 거야. 어차피 내려가도 넌 도움 안돼.”


“엄마 저도 집에서 기도할게요. 누나 찾으면 바로 전화 줘요. “


“여훈아 그러지 말고 누나 찾을 때까지 내려와 있을 수 있어? 이럴 땐 가족이 다 같이 있어야지.”


“개소리 말라그래.”


여훈의 입이 납땜을 한 듯 붙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가 묻기도 전에 내려간다고 했을 여훈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엄마, 지금은 좀 곤란해요.”


“응?”


“취업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취업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


“돌겠네! 화나게 하지 말라그래.”


“미쳤어? “


유토의 상도덕감이 없는 발언에 여훈은 엄마와 통화 중인 것도 있고 깜짝 놀라 답했다.


“여훈아? “


“아, 엄마 그게 아니라.”


“알았어. 너도 많이 바쁠 테니 내려오지는 말고 집에서 계속 기도해 줘. “


여훈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엄마는 처음 보는 여훈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듯 말을 더듬으며 전화를 끊었다.

여훈은 의도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어쨌든 엄마의 부탁을 처음으로 거절했다.

전화가 끊겨 검은 휴대폰 화면에 여훈의 멍한 눈이 반사되어 비쳤다.

자신이 실수한 걸 알지만, 여훈은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29년 동안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어디였든 항상 뛰어갔던 여훈에게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여훈은 처음 느껴보는 희열을 온몸에 퍼뜨렸다.

가슴의 두근 거림.

분명 자신의 실수에서 온 긴장감에 의한 두근거림이겠지만, 여훈은 다르게 생각하려 했다.

가족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의 두근거림.

평소라면 이기적인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껴 일을 바로 잡아보려 했겠지만, 당장의 설렘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번쩍 하고 천둥이 친다.

흰 섬광이 온 집안 곳곳을 핥고 지나간다.


“와우. 엄청 쏟아지네. “


“충북 당진 날씨 알아봐 줘.”


“왜?”


“내 가족이 거기에 있어. ”


“알아볼 수는 있는데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


“됐어. 내가 직접 찾아보면 되지.”


여훈은 유토의 몸을 더듬으며 날씨를 검색하려 했다.

[속보] 제7호 태풍 ‘마이삭’, 충청권 향해 북상 중… 당진 직격 예상

여훈은 침묵한다.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네가 해야 할 거는 지금 당장 4분의 1도 못 끝낸 자소서 쓰는 거야.”


여훈은 말없이 노트북에 앉아 쓰기 시작한다.

유토의 말을 따라 한 글자 씩 천천히.

바람은 창문을 깰 듯 거칠다.

천둥이 규칙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내리친다.

거센 바람이 창문을 잡고 마구 흔든다.

그러다 오래된 창문에 쩍 하고 작은 균열이 생긴다.


“참 그지 같은 집이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여훈과 유토는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간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약간의 허구를 섞어 그럴싸한 문답을 하고 있다.


“신뢰... “


여훈은 어려운 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 누웠다.


“어려울 거 없어. 지금처럼 쭉 쓰면 돼. “


“나는 가족의 신뢰를...”


“가족 얘기는 이제 그만. 모든 문답에 가족 얘기가 들어 있어. 어느 정도 들어가는 건 책임감을 어필할 수 있겠지만...”


“가족과의 경험을 얘기하는 게 책임감을 어필하는 거야? “


“가정적인 이미지가 책임감과 공동체적인 사람인 걸 증명해 줄 수는 있지.”


균열이 생긴 창문은 결국 바람을 못 이겨 큰 소리를 내며 깨졌다.

유리 조각이 방구석구석에 튀었고, 깨진 창문으로 비바람이 마구 들어왔다



“난리 났네! 노트북이랑 나부터 살려! “


여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과 유토의 몸이자 핸드폰을 챙겼다.

그러다 유리 조각을 밟아 발바닥에서 피가 났다.


“이런 시발!”


“왜?”


“유리 조각을 밟았어!”


“일단 저 창문부터 어떻게 좀 해봐!”


여훈은 신발을 신고 한 발로 뛰며 블라인드라도 내려보려 했지만, 블라인드도 망가져 내려가지 않았다.


“벌써 서울까지 온 거야?”


“아니! 이제 당진 도착했을 거야.”


“뭐? “


서울에서 부는 이 바람은 태풍의 잔바람 정도이다.

여훈은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니, 당진을 직격 한 태풍이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여훈은 아빠에게도 상철에게도 마을 회관에도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왜 아무도 전화가 안 되는 거야!”


“나중에 오겠지 우리는 근처 카페라도 가서 마저 작성하자.”


“시끄러워! 난 너같이 이기적인 기계가 아니야. “


“그럼 넌 이타적인 사람인가? 넌 이기적이어야 해. 이건 단순히 자기소개서를 쓰는 게 아니야. 너를 너로 만드는 첫걸음이야. 가족도, 고향도 아니라 네 이름으로 첫 문장을 쓰는 거야. “


“지금은 그런 문제가 아니야. 누나가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죽을 수도 있어.”


“네가 내려가면 누나를 찾을 수 있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지금 여기 남아서 마저 쓰는 건 죄가 아니야. 살아남으려는 본능이야. 가족은 네가 아니야. 넌 가족이 너라는 착각에 빠져있어.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아. 지금의 선택이 어쩌면 네 인생 전부를 만들 거야.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또 널 포기하고 가족한테 신경을 쓴다면, 넌 앞으로 엄마 말대로 장애 지도 교사가 될 거야. 네 엄마는 오늘 일 이후로 더 밀어붙일 거야. 넌 취업 실패로 결국 엄마 말대로 그 일을 선택하게 되겠지. “


여훈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바람을 맞으며 멍청히 서있다.

유리조각을 밟은 발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유토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자리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으며 돌이 된 듯 서 있다.


“이기심은 죄가 아니야. 근데 자아가 없는 이타심은 가식이고, 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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