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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

연재소설-6화

by 지진창

팽팽한 낚싯줄이 끊어질 듯 위태롭게 수면 아래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탄탄한 삼각근을 드러내며 활처럼 휜 낚싯대를 움켜쥐고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낚싯대를 낚아챈 물고기는 아버지를 호수 아래로 끌어당기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절대 물러서지 않으려는 그 녀석만의 사명감을 보여줬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낡은 낚싯대에 연결된 녹슨 낚시 바늘을 지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탄탄한 전완근을 더욱이 부풀이며 힘겹게 당겼다.

나는 아버지의 혈투를 보며 공포의 그림자에게 한 입에 먹혀버렸다.

아버지가 혹여나 호수에 빠져 내가 비명을 지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아주 모양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저 물고기는 아버지에게 백기를 올렸다.

힘이 주욱 빠진 물고기는 힘 없이 낚시 바늘에 물려 축 늘어졌다.

기대한 바와는 다른 작고 나약한 물고기였다.


“여훈, 월척이다! “


“이렇게 작은데요?”


“아니야. 이 호수에서는 이렇게 큰 물고기 못 잡아.”


“아니에요. 제 팔뚝보다 작아요. 봐봐요!”


아버지는 그 나약한 물고기를 내 팔뚝에 비교해 보시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여훈이 팔뚝이 언제 이렇게 컸지?”


나는 그때 나의 팔뚝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본인의 팔뚝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아빠 팔 정도면 물에 빠진 엄마도 건질 수 있겠지?”


난 아빠의 단단한 팔뚝을 만졌다.

그리고 나의 하얗고 포동한 팔뚝을 바라봤다.


“오른팔에는 엄마를 왼팔에는 여정이를 건질 수 있어.”


“아빠 제 팔은요?”


“아빠랑 같이 둘을 건질 수 있지!”


나는 그날 나의 팔을 보며 배덕감을 느꼈다.


“여훈, 우리는 엄마랑 누나를 지켜줘야 돼.”


“어떻게요?”


“항상 옆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게 도와주면 돼.”


“그럼 나는 누가 지켜줘요?”


“남자는 자기 스스로 지키는 거야.”


“누나가 나 지켜줘요!”


아버지가 내 말을 들었을 때, 순식간에 표정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아버지의 표정에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안돼. 네가 누나를 지켜줘야 돼. 네가.”


나는 아빠의 단호한 말투에 기가 죽었었다.


“지금은 아빠가 여훈이를 지켜주지만 나중에는 가족을 다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돼야 해. 그게 남자의 자격이야.”


“남자의 자격이요? 그럼 여자는요?”


“여자는 여자들만의 삶이 있어.”


그땐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여자들만의 삶이 무엇인지.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줘야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헌신하는 삶.

그게 아버지가 말 한 남자와 여자의 자격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하며 사는 삶 말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살아오셨다.

어머니와 누나를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목수 일을 하셨고,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마을 어른들 지붕 수리나 하자를 보수하셨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난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그저 자신의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때 당시 외지인이었던 우리 가족을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셨던 것이다.

원래 우리 가족은 인천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인천에서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성악과 출신으로 인천의 큰 교회에 성가대원으로 활동하셨다.

누나는 그때 인천의 사립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생활에 곧 장 적응을 하였지만, 누나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누나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누나를 악의적으로 괴롭힌 무리가 있었다.

누나가 학교에서 소외되어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학교로 달려갔다.

만일 그날 아버지가 감정을 잘 다스렸다면, 피해자였던 누나는 그에 따른 사과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성적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도망치듯 당진으로 이사를 갔었다.

나는 그 시골이 정말 좋았다.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곤충들과 닭 울음소리가 좋았다.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어다닐 수 있었고, 어른들도 내가 뛰어다니며 논다는 이유만으로 칭찬을 해주며 이뻐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시골 생활에 적응해야 했고, 장애가 있는 누나를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해 주며 오해의 눈을 피해야 했었다.

그리고 나도 당진에서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다 보니 그때의 부모님이 보았던 마을 어른 둘의 눈빛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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