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7화
여훈은 시동을 건다.
아버지의 30만 킬로를 탄 쏘렌토에 시동을 건다.
엔진의 힘이 가득 실린 차를 바람이 가로막는다.
여훈 오늘따라 밟히지 않는 엑셀을 신경 쓰지 않는다.
여훈 와이퍼를 작동하고, 그저 밟는다.
“멍청한 짓이야. “
“아냐.”
여훈은 유토의 말을 배척한다.
이상하다.
여훈이 유토의 말을 배제한다.
“이 차 뭐야?”
“쏘렌토.”
“어쩐지.”
“니 보다 좋아.”
“웃기시네. 자동 주행 돼? 난 네가 원한다면 해줄 수 있어. “
“필요 없어. “
여훈은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쏘렌토는 빗속을 달린다.
“엔진 터지겠다.”
쏘렌토는 유토의 시비에 개의치 않고 여훈과 함께 달린다.
“궁금한 게 있어. 너가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여정은 어차피 경찰이 찾아 줄 거야. “
여훈은 유토의 말을 듣지 않는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달린다.
“여훈, 그럼 너가 원한다면 마지막 항목도 내가 알아소 채워줄 수 있어.”
“됐어. ”
“왜? ”
여훈은 답하지 않고 말없이 달린다.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달리는 낡은 쏘렌토는 생각보다 더 힘차게 달린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왜 나한테 부탁하지 않냐는 거야. 넌 운전해. 내가 알아서 써줄 수 있어. ”
“신뢰? ”
“그래, 신뢰. “
“네가 신뢰를 알아? ”
“내가 너보다 잘 알걸? ”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
“신뢰란 신용이야.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쌓아야 할 숙제 같은 거지. 네가 누구인가? 그리고 남은 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게 신뢰야. 타인이 너의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가? 넌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그게 신뢰야. “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
“이것 봐. 난 네가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돼. 넌 말을 포장할 줄만 알지. 정확한 그 뜻은 몰라. 미지근한 놈. “
”답답해 미치겠네. 여훈, 가족이 싫어서 서울로 간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서울의 삶을 내려놓고 다시 고향으로 가는 거야? “
“넌 이해 못 할 거야. ”
“설득할 자신이 없는 거겠지. ”
“맞아. 나도 지금 내가 이해가 안 가거든. ”
“지금이라도 차 돌려. 가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너도 지금 이해를 못 하고 있는 행동이잖아. “
“그냥 거기에 가족이 있으니까. 가는 거야. ”
태풍이 미친 듯이 휘몰아친다.
나무뿌리도 뽑아버릴 만큼 강한 바람이 시골 마을을 괴롭힌다.
낡은 판자 농기구 창고도 더 이상 힘을 못쓴다.
강한 태풍에 여훈의 아버지, 상철, 그리고 건장한 몇몇 마을 경찰들 만이 플래시를 여기저기 비추며 들쑤시고 있다.
“아버지, 여정이가 여훈이 찾아서 버스 타고 간 거 아닐까유? “
“버스? ”
“기냥 서울로 가겄다고, 겁도 없이 막 갔을 수도 있잖어유. ”
아버지 덜컥 심장이 내려앉은 듯 풀썩 주저앉는다.
건장한 마을 경찰 둘이 화들짝 놀라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터미널에 전화 해봤는디, 새벽부터 움직이는 버스도 없대유. 걱정 말어유. ”
“여훈이 보겠다고 무턱대고 그 아이가 갔으면 어떡하죠? 기차라도 타겠다고, 역으로 무작정 걷고 있으면 어떡해요? ”
상철은 속이 타는 아버지가 보이지도 않는지, 한 술 더 뜬다.
”여정이 삐쩍 말라서, 바람에 날아갔으면 어떡한대유? “
아버지, 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트린다.
경찰,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상철에게 쏘아붙인다.
”도움도 안 되니까 들어가유. 아까부터 나무나 뒤지고 뭐 하는 거여. ”
“걔 원래 나무 잘타유. ”
상철, 삐죽 대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낡은 농기구 창고가 눈에 들어왔는지, 뚫어지게 쳐다본다.
“저건 날아가지도 않네. 주인 할아버지랑 똑같어. ”
“와우, 난리 났네. ”
달리던 쏘렌토는 멈춰 섰다.
도로 위를 가로막는 큰 나무가 쓰러져 있다.
“11킬로 남았네. “
여훈, 자신을 가로막는 큰 나무를 말없이 본다.
그러다 유토를 주머니에 넣고, 쏘렌토를 두고 뛰기 시작한다.
여훈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