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마지막 화
여훈은 오랜만에 달린다.
평소에는 뛸 일이 없으니까.
운동도 잘하지 않는 몸이니까.
정말 오랜만에 달린다.
오랜만에 달려서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아니, 무겁다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몸이 잘 나아가지 않는다.
거센 바람이 여훈을 가로막는지 달리는 게 정말 힘겹다.
마을까지 11km.
사실 평소에 뛰지 않는 사람이 달리기에는 먼 거리이다.
까마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거리에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수 있다.
어쩌면 뛰어보지 않았기에 달리는 것 일수도 있다.
여훈은 뛰다가 멈추다를 반복한다.
30분 정도 뛰었을까 저 멀리서 익숙한 오토바이 한 대가 온다.
“뭐여? “
상철이다.
“차는 어디 두고 뛰어오는 거야? ”
여훈은 그대로 도로 위에 주저앉는다.
헉헉대며, 심장의 두근 거림을 느낀다.
“야, 위험해. 뒤에 타. ”
여훈은 상철의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상철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오토바이도 생각만큼 잘 달리지 못한다.
“익사하겠네. ”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빗소리에 유토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상철은 여훈과 유토를 뒤에 태우고 마을로 달린다.
수다스러운 상철도 자꾸 어떤 말을 하지만, 여훈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
헬멧을 쓰고 주변 소음 때문에 상철이 말하는 것을 상철의 배가 불룩 대는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여훈은 상철이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배의 울렁거림에서 느껴지는 리듬감.
분명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야, 일 났어. 얼른 뒤에 타! “
그날 학교를 마치고 교문 앞을 나설 때, 상철이 형이 오토바이 앞에서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아버지도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위험하디는 이유로 한 번도 뒤에 태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상철이 형 오토바이에 탄다는 것이 그때는 엄청난 일탈이라고 느껴졌다.
“여훈아 형 허리 꼭 끌어안아야 한다. ”
난 상철이 형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상철이 형은 나를 뒤에 태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디로 인가 달렸다.
교복을 줄였냐느니, 고등학교는 서울로 가야 한다느니 오지랖을 부렸다.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만큼 부렸는지 그제야 자신이 나를 태우러 온 이유를 설명해 줬다.
허리를 꼭 끌어안은 팔로 상철이 형의 배가 볼록대는 게 느껴졌다.
사실 그 볼록대는 리듬감을 느끼느라 상철이 형의 말을 듣지 못했다.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에는 마을 사람과 경찰들이 오롯이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나를 불렀다.
나는 그날의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상철이 형은 잠깐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난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이해하려 했던 기억이 있다.
경찰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손가락을 공장 외벽에 매달려있는 누나를 가리켰다.
“여훈아! ”
누나는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했다.
상철의 오토바이는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거센 태풍에 문을 걸어 잠근 집, 손전등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누나의 이름을 부르는 경찰, 창문으로 여훈을 보는 치매 걸린 노인.
여훈은 자신이 마을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상철은 마을 회관 앞에 선다.
“일단 들어가자! ”
여훈은 상철을 따라 일단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홀딱 젖은 여훈.
마을 회관에는 몇몇의 어르신들과 아버지가 있었다.
마을 회관에 들어선 여훈을 본 아버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버지. ”
아버지는 여훈의 젖은 몸을 둘러보았다.
여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마을 어르신에게 따뜻한 커피 좀 달라고 했다.
상철은 여훈에게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이 손을 달달 떨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건네어주었다.
“아버지, 누나는요? ”
“찾다가 태풍이 점점 심해져서 잠깐 들어왔어. ”
다시 보니 아버지도 역시 온몸이 젖어있었다.
“근디, 여훈이 너는 회사는 어쩌고 온겨? ”
커피를 건네준 어른이 물었다.
“취직을 했던가? ”
그 옆에 있던 어른이 묻는다.
“서울 어디라 했지? 대기업 가려는 겨? ”
여훈 뒤에 있는 어른이 불쑥 나타나 묻는다.
“복지사 한다고 안 했었냐? “
”여훈이는 세일즈맨 한다고 했어. “
“세일즈 맨이 아직도 있어? ”
“여훈아 세일즈는 잘 되냐? 힘들지 않어? ”
“월급은 얼마나 디야? ”
“그만들 해요! ”
쏟아지는 질문 사이로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토하겠군. ”
여훈은 깜짝 놀라 휴대폰을 꺼버리려 했다.
여훈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는 말한다.
“여기 있지 말고 집에 가 있어. ”
“같이 누나 찾으려고 왔어요. “
“엄마가 혼자 있어. 넌 엄마를 지켜줘야지. “
“그럼 집에 있다 태풍이 약해지면 나올게요. ”
“아니야. 경찰이랑 상철이랑 내가 찾을 테니까. 엄마랑 있어. “
“야, 그려 아버지 말대로 혀. “
여훈은 잠시 고민한다.
그러다 아침에 엄마에게 한 실수를 생각한다.
지금의 일보다 더 큰 일이라도 겪은 듯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는다.
여훈은 아버지 말대로 마을 회관을 나가 집으로 향한다.
태풍은 잠잠해질 생각이 없는 듯 천둥을 치며 요란스럽다.
여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멀리 집이 보인다.
집을 보니 여훈의 울음이 울컥 쏟아지려고 한다.
집 현관을 열고 여훈은 들어간다.
“엄마!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여훈은 안방을 열어본다.
꽤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의 침대 머리맡 십자가가 보인다.
그렇지만 엄마는 없다.
다시 거실로 나가 엄마를 부른다.
여전히 아무 대답 없다.
여훈 귀를 기울이니 작은 엄마의 기도 소리가 들린다.
여훈은 자신의 방 문을 연다.
엄마는 여훈의 침대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열리는 방문 사이로 여훈이 보인다.
엄마는 여훈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멘. ”
엄마는 여훈을 와락 끌어안는다.
젖은 여훈의 찬 몸을 끌어안으며 여훈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핀다.
“누나 찾으러 왔어? ”
“네. ”
“취업은 어쩌고. ”
“끝나지, 뭐. “
여훈은 유토를 침대에 던진다.
“괜찮아요. 나중에 하면 돼요. ”
“얼른 씻어. 감기 걸리겠다. ”
여훈은 욕실로 가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인다.
샤워가 끝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침대에 여훈의 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여훈은 옷을 갈아입는다.
“답 없네. ”
“누나가 어디 있을까? ”
“어디 있는 지도 모르면서 왜 온 거야? 당장 찾을 것처럼 행동하더니. “
“나랑 대화한 걸 토대로 추측해 봐. 너 그런 거 할 수 있잖아. ”
“나야 모르지. 내가 걔 속을 어떻게 알아. 어디 물살에 떠내려가지만 않았으면 다행이지. ”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
“너네들은 가장 가능성 높은 일을 항상 외면해. 왜 그러는 거야? 나였으면 마을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하천에 뛰어들었을 거야. ”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 ”
“중간에서 갈팡질팡 하지 말고, 이타적일 거면 확실하게 이타적으로 행동해. “
엄마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구랑 얘기하니? ”
“기도 하고 있었어요. “
“내가 방해했구나. “
“괜찮아요. ”
엄마는 여훈의 옆에 앉는다.
우물쭈물하며 무슨 말을 하려 한다.
“아침에는 미안해. 엄마가 너무 놀라서 그랬어. 억지로 내려오게 하려 한 게 아닌데. ”
“괜찮아요. ”
“여정이 찾는 건 네가 제일 잘했잖아. 그래서 이번에도 네가 오면 바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랬던 거야. 생각해 보니 경찰도 태풍 때문에 위험해서 못 찾는다는데, 내 아들을 끌어들이려고 했어. “
“괜찮아요. ”
“부모로서 그랬다는 게 얼마나 죄스러운지 아니? 그래서 엄마가 사과하려고. 미안하다고. 미안해. 옛날에 여정이가 없어지면 네가 불쑥불쑥 찾아왔었는데. ”
“아니에요. ”
”응? “
“제가 누나 찾아온 거 아니에요. 누나가 저 찾아온 거예요. 제가 누나 피해서 숨어 있으면 항상 찾았어요. 어디에 있든 금방 찾아냈어요. 가족 피해서 숨어 있으면 항상 누나가 찾았어요. ‘찾았다! ’ 이러면서요. 허무하게. 이번에는 못 찾겠지? 그럼 누나가 와요. ‘찾았다! ’ 천진난만하게. “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네. ”
“괜찮아요. 제가 말을 안 했으니까. ”
“그래서 못 찾고 있구나. ”
엄마와 여훈은 한동안 말이 없다.
“이제는 여훈이가 누나를 찾고 있네. ”
여훈의 힘없이 뜬 눈은 갑자기 맑은 안광을 밝힌다.
여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 밖을 나간다.
“어디 가니? ”
여훈 답 하지 않고, 집 아래로 달린다.
집에서 몇 걸음 가지 않아도 보이는 아랫집에서 멈춰 선다.
그때보다 더 낡은 농기구 창고를 본다.
그 앞에 멈춰 선다.
농기구 창고 뒤로 간다.
작은 개구멍이 있다.
그 시절 여훈이 드나들던 개구멍이다.
여훈은 그 심연에 빨려 들어간다.
몸을 낮춰 개구멍을 들여다본다.
무언가를 발견한 여훈은 다시 농기구 창고 문 앞으로 간다.
굳게 잠긴 문을 바라보다 세게 발로 찬다.
물에 불려 금방 부러질 거라 생각한 나무 문은 오히려 더 단단해져 있었다.
문을 더더욱 세게 발로 찾다.
수 차례 발로 차니 아무리 단단한 나무 문이라도 부러질 수밖에 없었다.
부러진 문을 뜯어 나무 창고를 열었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좁은 창고에 쭈그려 앉아 있는 여정이 보였다.
겁에 질려 놀란 눈으로 여훈을 바라보는 여정.
그 모습이 여훈에게는 가슴이 아프게 보였다.
“여기서 뭐 해. ”
여정은 여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훈을 끌어안았다.
여훈은 그런 여정을 떼어낸다.
“여기서 뭐 하냐고. ”
여정은 차갑게 떼어낸 여훈의 손을 꼼지락 거리며 만진다.
그러다 시선을 올려 여훈의 얼굴을 본다.
마찬가지로 차갑게 식어있는 여정의 손이 여훈의 얼굴을 감싼다.
여훈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을 보며 활짝 웃던 여정의 얼굴.
여정은 그날처럼 오늘도 말한다.
“찾았다! “
여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날 왜 찾아. ”
“이번에도 찾았어! ”
“내가 누나랑 숨바꼭질하는 줄 알아? 나 누나랑 숨바꼭질 한 적 없어! ”
“동생이 없어지면 안 되잖아. ”
파랗게 질린 여정의 입술이 떨린다.
저체온증으로 달달 떨면서도 동생을 보고 따뜻하게 웃는 여정을 보니 여훈의 감정은 무너지는 듯하다.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약해지더니 이내 해가 뜬다.
이번에는 여훈이 여정을 끌어안는다.
여정은 지쳤는지 미소 띤 얼굴로 여훈에게 기대 잠을 잔다.
여훈은 여정을 업는다.
그리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저 멀리 집이 보인다.
엄마는 마침 해가 떠서 여정을 찾으려고 나온다.
그때 저 멀리서 여정을 업고 오는 여훈이 보인다.
여정이 여훈을 업고 오던 그날처럼.
여훈이 여정을 업고 오고 있다.
에필로그
한 차례 소란을 넘긴 여훈은 침대로 가 눕는다.
경찰도 마을 사람도 모두 제자리로 간다.
여정은 잠들었고, 여훈도 지쳐 쓰러졌다.
소란에 마을 모두가 지쳤다.
여훈은 자신의 핸드폰을 켜 유토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
여훈은 검은 화면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러다 폰을 내려 놓고 눈을 감는다.
스르르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