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롱펠롱 올레꾼

by E Hana

북풍 찬서리가 코 끝을 에이던 날, 아들과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롱패딩에 장갑까지 낀 둔한 몸과는 달리 깃털 같은 마음으로 공항을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살고 있는 미사역이 5호선이라 지하철은 환승 없이 한 번에 도착했다. 각자 짊어진 백팩 외에는 수화물이 없어 앱으로 모바일 탑승권을 받아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신분증과 미성년 아들을 위한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고는 바로 탑승구로 이동했다. 시간이 남아 프레첼과 음료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복도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국내선 비행기를 배경으로 아들에게는 첫 번째 제주도 여행으로 기억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우리는 원래 베짱이라 평소에도 둘이서 여기저기 잘 놀러 다니지만 당신 없이 외박 여행을 하기로는 처음이었다. 이유는 우리가 당신보다 하루 먼저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올레길을 걷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새벽비행기로 도착해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무리였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한 껏 부풀었다. 보호자 없이 일탈하는 느낌이랄까. 아들은 기억도 안나는 제주도 가족사진에 항상 볼멘소리를 냈었다. 이번 기회에 그간의 아쉬웠던 감정을 다 날려 보내주리라.


2025년 1월 12일, 당신이 제주도로 출장을 간다기에, 우리도 제주행 비행기표 2장을 끊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당신의 지방출장이 예정되면 서둘러 숙소와 차편을 알아보고는 우리도 따라 붙인다. 그렇게 따라간 곳이 제주도를 비롯해 광주, 완도, 거제도, 부산, 대구, 경주, 강릉. 당신이 일하는 동안 우리는 숙소 앞 바닷가에서 놀던가 아니면 동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뒤 해 질 녘이면 당신을 만나 지역 맛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당신은 항상 개미였고 우리는 늘 베짱이였다. 그럼에도 당신은 한 번도 권위를 세우거나 잔소리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미안해한다. 그러면 우리는 응답으로 틈날 때마다 수십 개의 하트를 날려 보낸다.


영화 인생 20년이라 가방 싸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3박 4일 일정에 백팩으로 내 거 하나, 아들 꺼 하나. 가방은 각자 매기. 속옷과 양말은 3일 치분만 넣고 츄리닝 한 벌씩, 충전기와 칫솔, 비상약으로 알레르기약과 해열제, 상처밴드, 다회용 물병을 한 개씩 챙겼다. 배낭여행자에게 깔끔은 사치라며 인간은 적응적이라 불가피한 상황에서 입은 팬티를 뒤집어 입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 개똥철학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다. 당신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기겁을 했다. 아들은 상황에 따라 씻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눈을 번뜩였다. 남자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니 청결에 조금씩 귀찮아하는 게 보인다. 머리 식힐 때 맞춰야 한다며 3x3큐브 하나를 추가로 넣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려면 챙겨야 할 물건들이 정말 많았다. 기본적으로 체온계를 비롯한 아이가 쓸 수 있는 구급상비약과 티슈, 물티슈, 부식과 간식, 샤워용품에 여벌옷, 애착인형까지 한 보따리였다. 잠자리가 예민한 아이라면 담요에 무드등까지 챙겨야 한다, 한 번도 안 쓰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반드시 챙겨야 할 목록들이다. 아들 나이가 한자리에서 두 자리 숫자로 바뀌면서 이런 꼼꼼함으로부터 졸업할 수 있다는 점에 나는 이미 감개무량했다.


숙소는 함덕에 잡았다. 함덕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우리 가족이 제주도에 올 때마다 묵었던 곳이라 익숙했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으로 고기국수를 먹으러 나갔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부터 아들이 고기국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고기국수를 1번으로 제주여행 버킷리스트를 지워내려 갔다. 바닷바람이 세찬 덕분에 밤산책은 꿈도 못 꾸고 숙소로 돌아왔다. 제주도의 첫날밤은 아들과 단둘이 보내는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아들이랑 쫑알쫑알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검은 바다 위의 반짝이는 오징어배들이 우리의 밤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설렘과 흥분이 우리의 수다를 부추겼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성산포여객터미널로 가야 했기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제주도의 201번 버스는 제주 버스 터미널에서 서귀포 버스 터미널까지 동쪽 해안가를 달리기 때문에 뚜벅이 여행자들에겐 제주 바다를 눈에 담기에 딱 좋은 노선이다. 버스 차창 왼편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함께 동네 사람들과 큰 차 타고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아침밥도 거르고 201번 버스를 기다렸다.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갔다가 오후에 다시 나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함덕에서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1시간쯤 지나니 성산포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비수기라 식당들이 문을 닫아 아침을 때울 곳이 없어 편의점에 들어가 에이스 하나, 빵 하나, 우유 하나씩 사들고는 배에 올랐다. 승선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우도에서 나오는 마지막 뱃시간이 오후 5시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성산일출봉을 마주하고 멀어지는 3층 뱃고물에 자리 잡은 우리를 갈매기 때가 먼저 반겼다.


목표는 제주올레 1-1코스인 우도-올레길 완주였다. 총 13.2km이다.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올레패스 앱에 들어가면 완주한 꼬마 친구들 사진이 드문드문 보였기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미리 바당색의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구매했다. 올레길 여정에 수첩에다가 스탬프를 찍는다는 말에 아들이 재밌겠다며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제주올레 완주증서와 메달도 받는다. 아들의 승부욕과 공명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도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밑밥을 깔았다. 하지만 제주올레는 27개 코스, 437km로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첨된 곳이 우도-올레다. 나는 자주 이런 방법으로 아들을 꾄다. 순진한 아들은 다행히 ‘아직까지는’ 잘 넘어온다. 당신이 말하는 가스라이팅은 절대 아니다. 네버!


하우목동항에 내린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소 동상 옆 간세를 열어 패스포트에 시작 스탬프를 찍고는 해안도로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걸었다. 바닷바람이 불었지만 햇살이 따뜻해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배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렸는데 어느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길 위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짙푸른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하얀 파도가 검은 현무암 위로 쏟아졌다가 부서지면서 애수를 더했다. 현무암의 채도 때문일까. 오랜 전설을 품은 제주도의 겨울바다는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구석이 있다.


올레길은 따로 지도가 없더라도 나뭇가지나 전신주에 매달린 파랑과 주황의 리본이나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파란색 화살표는 정방향,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이다. 갈림길에서 파란색 화살표를 따르니 검은 돌담길이 한참을 이어졌다. 뻥 뚫린 밭들 사이로 난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발바닥에 닿은 포슬한 흙길의 부드러움에 음악이 없어도 걸음걸음마다 음표가 달라붙었다. 풍경에 심취해 가끔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하는데 올레패스 앱을 켜고 코스 이탈 알림을 설정하면 실시간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 바야흐로 GPS의 시대가 아닌가!


해가 쨍-하고 내리쬐다가 저 멀리 먹구름 때가 몰려오는 가 하더니 다시 해가 반짝였다. 섬이라 그런지 하늘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우도 사람들과 해녀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벽화들이 이어졌다. 고즈넉한 마을에서 둘이 셀카봉을 들고는 벽화를 배경으로 꿀 떨어지는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마을을 나와 정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언덕을 내려오니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11시쯤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아침에 눈뜨고부터 위장으로 넣은 게 별로 없어서인지 시장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겠다는 아들의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주변 식당을 스캔했다. 입구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빨간색 건물과 해적이라는 이름에 자석처럼 끌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정신 사나운(?) 장식품들에 혼이 빠져 구경하는 사이 주문한 전복죽과 불고기덮밥이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우리는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했다.


배가 부르니 이제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하고수동 해변의 고운 모래밭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현무암과 맑은 옥빛의 바다가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청명한 하늘에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뭉실뭉실한 구름이 솜뭉치처럼 피어올랐다.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보였다. 아들의 볼에 뽀뽀를 하며 사랑을 고백했다. 아들은 간세를 보자마자 후닥닥 뛰어가 패스포트에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올레길에는 보이지 않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해녀 동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12시 30분 다시 길을 나섰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처럼, 사막의 베두인처럼,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삶을 생각하며 나그네가 되어 꼬닥꼬닥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숲과 밭을 지나 섬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우리 뒤로 한 무리의 올레꾼들이 따라오기에 먼저 가라고 길을 내어 주었다. 모자가 다정스럽다는 칭찬말이 돌아왔다. 마라톤에서 말하는 ‘데드포인트’가 이쯤이련 가. 지친 아들이 길 한가운데 드러누웠다. 데드포인트를 지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기고 마음도 편해진다고 아들을 설득하면서 나도 아들 옆에 주저앉았다. 잠시 쉬었다 가자. 느릿느릿 걸어가자는 뜻을 담고 있는 제주 올레길 아니던가.


1시 30분 우도저수지 앞에서 우도봉 간세를 만났다. 저 멀리 우도등대가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밭이 햇살을 받아 금빛 물결을 이루었다. 사르륵사르륵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보라는 갈대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이제부터는 오르막길이었다. 막판 스퍼트다!


오후 2시, 드디어 우도봉 정상에 올랐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이마의 땀을 가져갔다. 한없이 푸른 바다 끝으로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멀레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능선에 서니 내가 가진 속세의 감정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못된 마음, 원망, 미련한 후회, 몰이해와 오해 속에서 어긋난 관계를 이 생소한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사뭇 진지해진 나와 반대로 해탈한 표정으로 벤치에 드러누운 아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에게 참교육 당한 것 같다며 구시렁거리는 아들은 남은 에이스를 입에 물고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3x3큐브를 꺼내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우도등대 옆 설문대 할망에게 동전을 던지며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소원을 빌었다.


세계 각국의 등대 모형이 자리한 우도등대공원을 지나서 소머리오름의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넓은 평원에 한가로이 풀 뜯는 말들 사이로 마주하는 바람 소리, 풀 냄새조차도 우리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숲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는데 눈앞에 <슈가탱크>가 떡하니 자리 잡고는 우리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슈가’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제주 버킷리스트 2번인 땅콩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난한 여정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오후 4시, 천진항 입구로 가니 간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패스포트에 완주 스탬프를 찍고는 성산포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성산포 여객터미널에는 이미 당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바람맞고 곳곳에 출몰하는 날파리 때에 기겁을 하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렇게 고생스러운데 왜 걷냐고 묻는다면 세상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집중된 시간은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다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과 나란히 걸었던 오늘의 우도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펠롱펠롱 올레꾼.

반짝반짝 내 아들.

다음은 산티아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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