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니 특급 작전

by E Hana

한일 월드컵으로 2002년을 뜨겁게 보낸 세대라면 축구가 얼마나 낭만적인 스포츠인지 잘 알 것이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카드 섹션 문구가 <꿈은 이루어진다>였는데,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전술과 카리스마로 언더독이던 대한민국 축구를 4강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이때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경기에서 골이라도 넣는 순간이면 “와~아!”하는 함성이 집집마다 쏟아졌고, 거리 응원을 하는 사람들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목이 터져라 “대-한 민 국”을 외쳤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도 이에 뒤질세라 “빵-빵 빵 빵”, “빵빵-빵 빵빵” 경적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당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전 세계 곳곳에 인상적으로 보였고, 또한 빛나는 시민 정신으로 경기를 즐긴 후 깔끔하게 뒷정리까지 하고 귀가하면서 각종 미디어에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윤도현의 <오! 필승 코리아>를 자주 흥얼거리던 나는 그때 조인성, 신민아 주연의 영화 <마들렌>을 한참 촬영 중이었다. 촬영팀에서 촬영스크립터로 일하던 나는 스물일곱 피 끓는 청춘이었는데 ‘꿈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나의 열정에 기름을 들이붓기도 했다.


한동안 뜸했던 축구에 다시 빠지게 된 건 손흥민 선수가 독일의 레버쿠젠에서 영국의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을 하면서부터다. 2015년 8월 28일, 쏘니(Sonny는 손흥민 선수의 애칭이다)는 토트넘으로 계약을 확정하면서 등번호 7번을 배정받았다. 나는 숫자 3을 좋아하는데 이제 7에게도 애정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당탕탕 육아 중 아들의 낮잠 타임이 되면 나는 으레 핸드폰으로 쏘니의 경기 후기를 찾아보며 짧고 간절한 자유를 즐겼다. 아들의 탄생이 2015년 8월이었는데, 쏘니의 토트넘 훗스퍼에서의 성장과 아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면서 나는 쏘니에게서 받은 영감을 꽤나 아들의 육아에 갈아 넣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들은 또래보다 많이 작았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받았던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아들은 백분위로 키 16%, 몸무게 10%, 머리둘레 49% 였다. 백분위란 같은 성별과 같은 나이의 영유아 100명 중에서 작은 쪽에서부터의 순서를 말한다. 내 아들이 이렇게 머리만 유난히 큰 이유는 엄마 뱃속에서 살기 위해 6개월째부터 모든 영양공급을 머리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어른들은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는 거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머리만 커서 ‘밥주걱’ 닮은 우리 아들이라며 웃어넘겼지만 가슴 한편은 늘 부채의식이 자리 잡았다. 이적 첫 해에는 쏘니도 성적이 부진했는데 이는 나에게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타인의 일에 쉽게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마치 과학자라도 된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양으로 분유와 이유식을 번갈아 먹였다. 아직 단유를 하지 않았기에 아들에게 모유는 간식이었다. 아들은 감사하게도 모유든 분유든 뭐든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첫 돌이 되던 즈음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아들은 키 74%, 몸무게 46%, 머리둘레 81% 라는 성작표를 받았다. 내가 이래서 수학을 좋아하는 거다. 구구절절이 미사여구로 설명하지 않아도 숫자 하나로 다 설명이 되니 말이다. 엄마의 고군분투에 아들은 부단히 성장했다. 머리는 당연히 크고 이제 기럭지까지 길어졌는데 여전히 말랐다며 ‘숟가락’ 타령을 했다.


만으로 24개월이 가까워진 날, 세 번째 영유아 건강 검진을 받았다. 키 80%, 몸무게 38%, 머리둘레 94% 라는 영광의 숫자들이 검사 결과지에 찍혀 나왔다. 쏘니가 리 알리, 크리스티안 릭센, 해리 인과 함께 데스크(DESK) 라인을 이루며 공격수로서 EPL 그라우드를 훨훨 날아다니는 동안, 아들은 엄마의 지극정성 애지중지로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의 가슴에는 ‘작게 낳아 크게 키운다’는 훈장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제 ‘숟가락’에서 ‘머들러’로 성장했지만, 앞으로도 머리가 너무 커지면 뇌종양 검사를 권유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웃픈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2020년 9월 만 5세가 되던 아들은 키 89%, 몸무게 68%, 머리둘레 82%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병설 유치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반 친구들이 고만고만했는데, 이제는 반에서 두 번째로 큰 아이가 되었다. 비쩍 말랐던 몸도 살집이 점점 붙으면서 마음을 놓았다. 유치원 엄마들이 비법을 물어왔지만 함구했다. 사실 삼시 세끼 잘 먹이고 하루 12시간씩 꼬박 재운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타민 영양제 대신 고기반찬과 제철 과일로 간식을 먹이는데 집중하려는 노력은 했던 것 같다. ‘숟가락’ 농담은 이제 우리 집의 금지어가 되었다. 쏘니도 승승장구했다. 19-20 시즌에 아시아인 최초로 EPL에서 10-10(10골 10 어시스트)을 달성했고, 16라운드 번리전 골이 PL 올해의 골과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했다.


2021년 8월엔 키 94%, 몸무게 77%, 머리둘레 96%로 아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고 아들의 머리를 다시 재는 안쓰러움이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머리둘레 부분에 ‘양호’가 아닌 ‘정밀 평가 필요’에 체크를 하셨지만. 어쨌거나. 아들은 ‘넘사벽’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1-22 시즌에 쏘니는 드디어 EPL에서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득점왕을 수상했다. 시즌이 끝난 2022년의 눈부신 5월에 쏘니가 ‘골든 부트’를 안고 귀국했다.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다년간 쏘니와 아들의 성장과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엄청났다. 온 우주에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2023년, 토트넘 141년 역사상 비유럽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팀의 주장을 맡은 쏘니의 행보를 보면서 아들에게도 쏘니와 같은 부드러운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지나가는 말처럼 운동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1초도 망설임 없이 노!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체형과는 다르게 운동과 거리가 멀었고, 도서관 나들이를 제일 좋아했고, 6년째 혼자 배우는 피아노를 즐기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오감이 매우 예민한 아이였다. 3학년 반에서 남자, 여자 모두 합친 달리기 시합에서 꼴찌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신의 첫마디는 “다 주지 않아, 그럼.”이었다. 또 한 번의 오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겨울이 오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아들과 함께 쏘니의 경기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 같다. 북중미 월드컵 예선부터 시작해서 토트넘의 EPL 경기는 본방사수를 실패하면 하이라이트라도 찾아서 보았다. 사전에 축구에 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머릿속에 담아 뒀다가 아들과 함께 경기를 보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김진짜의 축구 유튭도 함께 시청했다. ‘진짜의 축구 이야기’는 진짜 재밌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2024년 3월 10일, 빌라파크에서 열린 23-24 시즌 EPL 28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토트넘이 4-0 대승을 거두었다. 마침 주말 경기라 아들과 함께 TV로 시청하고 있었는데 풀타임을 소화한 쏘니가 1골 2 도움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경기는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경기 직후였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으레 껏 축하와 격려를 주고받고는 경기장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 와중에 쏘니가 그라운드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것이 아닌가! 경기의 MOM(최우수 선수)으로 선정된 건 당연했으며 외신에서도 캡틴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캡틴 쏘니의 성숙한 모습은 아들의 롤모델로 충분했다.


때마침 3학년 1학기 회장 선거가 있었다. 아들도 회장 후보로 나갈 생각으로 소견문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쏘니의 이런 모습에 영감을 받았는지 손흥민 선수처럼 교실의 쓰레기를 줍는 성숙한 리더가 되겠다는 소견문을 완성했다. 그리고 회장에 당선됐다. 지나가는 말처럼 축구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대답을 망설였다. 3개월에 걸친 엄마의 ‘쏘니 특급 작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가스라이팅이라고 했지만 절대 아니다. 네버!


2024년 3월 16일, 우리는 춘천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전에 축구학원에 들러 체험 수업을 받았는데 재밌었는지 아들은 상기된 얼굴로 ‘축구를 배워 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3개월치 카드를 긁었다. 이런 역사적인 날은 기념해야 또 제 맛이 아니던가. <샘밭>에서 수육 한 접시에 막국수를 점심으로 때우고는 <손흥민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2019년 tvN에서 방영된 <손세이셔널>에서 쏘니가 이곳에서 인터뷰도 하고 또 손웅정 축구교실의 한 장면도 보여주었기에 직접 가보기로 한 것이다.


입구부터 웅장한 사자상에 압도되었는데 한 벽면에 크게 걸린 쏘니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들은 쏘니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바로 옆에 자리한 카페 <인필드>에 들어가 가장 유명하다는 축구공 빵도 먹었다. 빵가루를 입술에 붙이고 신이 나서 쫑알거리는 아들은 이미 국대급 축구선수였다.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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