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가르친다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는 일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그것에 대한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된다.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며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고단한 노력의 대가는 참으로 보람되다. 단, 학습자가 부단히 성장했을 때의 말이다. ‘성장’이 빠지고 ‘반감’만 생기게 된다면 ‘좌절’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내가 수학을 가르치게 된 건 순전히 아들 덕분이었다. 아들은 아주아주 꼬맹이때부터 숫자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숫자놀이를 자주 하고, 또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묶어 세기와 띄어 세기 놀이를 하면서 만 5세가 되기도 전에 곱셈구구의 원리에 대해 통달하기에 이르렀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들이 ‘가만히’가 안 돼서 후다닥 로션 바르고 옷 입힐 요량으로 구구단송을 불러줬더니 물개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 석자도 못 쓰는 아이가 손가락 발가락을 가지고 두 자릿수 덧셈 뺄셈을 뚝딱뚝딱해내기에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그런 아들은 아빠의 오래되고 낡은 공업용 계산기를 토미카보다 아꼈다. 요즘도 예쁘게 생긴 계산기만 보면 사고 싶어 눈이 뒤집힌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한국 내 확진자가 3000명을 넘어서면서 아들이 다니던 병설유치원은 무기한 휴원이 결정되었다.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확진자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외국에서는 국경 폐쇄를 비롯한 도시 봉쇄 조치까지 이루어졌다.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고 당신의 불안버튼은 긴급경보를 울렸다. 쿠팡의 빠른 배송 덕분에 집 밖을 나가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조차 없었기에 아들과 나는 모든 외출을 끊고 집에만 있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오시는 아들의 피아노 선생님만 허용되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아들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6살 남자아이가 공원에 나가지 못해 몸살이 났다. 블록을 쌓고 보드게임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학원만큼은 아니어도 뭔가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의도는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놀이로 배우면서 즐기자였다.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수학의 나라’가 우리 집에서 개장을 알렸다. “땡땡땡땡! <수학아 놀자!>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유난히 큰 앞니 두 개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은 곧 나의 1호 제자가 되었다. 눈으로 배우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수학 공부를 ‘학교놀이’ 하듯이 매일같이 했다. 아들은 차근차근 여러 가지 도형과 여러 종류의 단위, 규칙과 분수를 배워나갔다. 사촌형에게 물려받은 맥포머스와 몰펀으로 여러 가지 모양과 도형을 배우고, 수직선은 그림으로, 등호와 부등호는 원숭이 양팔 저울에 츄파츕스를 올려가며 이해했다. 바늘 시계로 시각과 시간을 배우고, 달력으로 날짜를 계산하고, 길이는 줄 자, 무게는 주방 저울, 우유와 음료수 병에 적힌 양을 비교하면서 들이를 배웠다. 물론 츄파츕스와 우유와 음료수는 우리의 배움에 대한 노력의 산물로 자축하면서 꿀꺽꿀꺽 삼켰다. 배달 치킨을 먹으면서 닭과 닭다리의 관계로 규칙과 대응을 읽어냈고, 피자를 먹으면서 분수를 배웠다.
내가 지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보조교사가 아들을 찾아왔다. 바로 EBS에서 방송되던 <수학이 야호>이다. 이때쯤부터 아들과 함께 TV를 보기 시작한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수학과 피아노가 아니었다면 코로나19의 끔찍했던 비대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수학이 야호>의 워크북이 있어 스티커를 붙이고 숫자도 끄적였지만 아들에게 문제집 풀이나 쓰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이름 석 자 밖에 쓸 줄 몰랐다.
2023년 5월, 아들의 1타 강사였던 내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인생의 세컨드 잡을 만났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수학 시간에 난다 긴다 하는 아들의 얘기가 엄마들 사이에서 돌더니 아들의 친구 엄마가 부탁을 해왔다. 이렇게 시작된 1:1 수업이 입소문이 나더니 여기저기서 문의가 들어왔다.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공부방을 차렸을 텐데 아이의 성장이 목표였기에 과외 수업으로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집으로 수학을 배우러 오는 친구들이 세 명, 네 명 늘어나면서 아들의 얼굴에 점점 그늘이 생겨났다.
트레이드오프(trade-off)란, 두 가지 이상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으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내가 영화를 선택할 때도 그랬고, 결혼을 선택할 때도, 영화를 포기하고 육아를 선택할 때도 그랬다. 트레이드오프 시 가장 중요한 점은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한 포기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세컨드잡’에 대한 ‘아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내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 존재한다. 수업을 줄여서 줄어든 수입은 기회비용이 될 것이고 줄어든 수입으로 인한 아쉬운 마음은 매몰비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은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좋은 선택이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여전히 몇 명의 아이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수학의 나라’로 찾아온다. 그 시간 동안 아들은 쿠쿠밥솥으로 저녁밥도 하고, 저녁 배송된 쿠팡 정리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면서 자신의 기회비용을 세컨드잡에 뛰어든 엄마를 위해 기꺼이 사용한다. 그리고 주말이면 자신에게 찾아올 엄마와의 <수학아 놀자!>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