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퇴사도 있다
아직 퇴사를 한 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높은 확률로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거의 다다랐고
(정신질환으로 병가 중이긴 하지만)
내 마음을 에이아이가 읽는 건지 핸드폰만 열면 온통 퇴사자 관련 콘텐츠들이 추천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솔직히 좀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퇴사 콘텐츠는 주로 삼십대 초중반의 대리말 연차 친구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더 넓은 세계가 있고 내 알고리즘이 그정도에 머무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을 누구보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고? 내가 해봤다. 오. 꼰대.
이 무렵이 되면 왠만한 알 것은 다 알고 회사나 내 업황은 미래가 없는 것 같으며
당연히 그간 열심히 해왔을 터이니 번아웃도 왔고 암. 이해한다.
그땐..돌이켜 보면 당시의 난 겁도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다. 그냥 아. 난 여기까지인가보다 싶었다.
딱 대리에서 과장진급 시절이라 치고 나가는 애들은 한창 더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난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딱 고만고만한 수준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다. 이직을 하려고 해도 계속 실패했고, 그게 갓 결혼을 한 여성이어서 그런건지 (면접에서 대놓고 임신계획 물어보는 새끼도 있었다) 내가 역량부족이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시점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경쟁에 임했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 포기했다. 난 여기까지인가봐. 그때 마침 굉장히 좋은 기회가 왔다. 배우자의 주재원 파견. 흔히들 말하는 뭐 사직서 던지고 그런 것없이 예쁘게 잘 퇴사했고 지금도 그때 동료 상사 후배들과 연락하고 잘 지낸다.
사실 그때는 시원섭섭, 후련한 감정이 더 컸다. 뭐. 여기까지인가 보지.
정 미련이 좀 남으면 나중에 좀 취미로 깔짝거려보던가. 그렇게 영원히 이 일은 못 하게 될 줄 알았다.
간간히 친구동료들과 연락은 했지만 정말 거의 신경쓰지 않고 실컷 놀았다. 미래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코로나가 올 줄 몰랐던 한국영화산업은 나날이 번성하는 중이었고 그건 그냥 내 자리가 아닌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왔고, 정말 요상하게도 내게도 기회가 왔다.
정말, 우연히, 하지만 진심으로
그냥 제안이 와서 성실하게 임했던 것들이 스노우볼처럼 굴러들어와서
지금 직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그것이 일종의 숙명이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아. 역시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구나. 나는 실력이 있어. 쓸모가 있어. 그러니 열심히 해야지.
언젠간 더 성공할거고 인정받을거야. 그런 헛된 기대가 버무려지며 내 마음이 이상한 허영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담백한 마음이었었는데 말이지. (아 그리고 판교 특유의 허세스러움까지도 배워버린 것 같기도)
그리고 여기에서 일을 하면서 실제로 어려움이 존나x100많았지만 열심히 살았다.
생각해보면 진짜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어려움 뿐이었다. 이딴 거지같은 장애물을 통과한 노하우는 아무리 나중에 칠십살에 분식집을 차려도 써먹을 데 없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실제로 성과도 있었고 이걸 기반으로 난 더 점프업 하겠다는 커리어적 야망마저 생기려고 하던 찰나였다.
저 거지발싸개같은 새끼들이 날 괴롭히고 왕따당하고 있지만 이것만 해내면. 이것만 해내면.
오직 그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크게 좌절하고 우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다시 40에 퇴사 준비를 한다.
그때처럼 철없는 상태도 아니지만 조금만 일의 자기효능감을 내려놓으면 그냥 조금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상태로 남편과 가족의 보호를 받으면서 강남 사모님으로 살아버려도 된다.
모르겠다.
브런치가 자꾸 글 쓰라고 해서
그리고 아침에 약 먹었는데도 소파 앉아 있으면 자꾸 울음만 나오는데
신기하게 글만 쓰면 눈물이 그쳐서
그냥 쓴다.
그리고 삼십대 친구들아 혹시 이 글을 보거들랑 너네 퇴사를 비웃는 건 전혀 아니고
혹시나 막막한 사람 있으면 나를 봐라.
정말 우연히 일이라는게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그렇다. 뭐 그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