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별꼴을 다본다

게임회사가 구조조정하는 법

by 붕어빵의 효능

얼마 전에 희망퇴직을 실시할 수도 있다는 유언비어가 블라인드에 퍼졌다.

당연히 손 들어야지. 아 그런데 시켜주려나? 리텐션 기간이 아직 남았는데 그건 뱉어내면 되나?

위로금은 얼마를 받을 수 있는거지? 컴포즈 커피 정도는 차릴 수 있는건가?

난 컴포즈커피 빡세보여서 별루. 요아정이 좋겠어. 최소창업비용... 검색...

망상에 가까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블라인드를 하루 온종일 들락거렸다.

(어차피 퇴사할거, 블라인드 지워버려야지 원)


사실 좀 해보고 싶은 것 그래서 추진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의사선생님이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한 걸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대충 아무것도 안 하고 블라인드만 돌아다니며 마음 편히, 정말 문자 그대로 시간을 흘려 보냈다.

킬링 타임 아니고, '킬 타임.'


드디어 느지막한 오후가 되자 희망회로 돌리느라 거의 하루 통짜를 허비한 것 싶어서 마음이 초조해졌고

그래도 뭐 주말 다가오는 기념으로 생산적으로다가 빵이라도 굽자 싶어서

이스트나 사러 미스트만 칙칙 뿌리고 동네 마트에 나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블라인드를 켜 본다.

분사가 또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대충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긴 했다. 내가 알기로 내가 속한 조직은 아직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나를 괴롭힌 새키들은 이참에 쓸어보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아 혹시 나도 대상인데 휴직 중이라 연락을 못 받은건가? 싶고 그러면 희망퇴직은 물 건너간건가? 요아정? 컴포즈?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결국 또 돈이 아쉬운건가 나란 인간. 참으로 얕고 세속적이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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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부터는 엔터산업 전반의 인력구조에 관한 내 생각을 좀 써보겠다.

그간 정신과 마음의 횡설수설만 쓰다가 약간의 산업적인 이야기를 쓰려니 정리가 잘 되지 않는데

그래도 이것 역시 개인적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해 왔던 생각이다.


게임산업이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거의 도박 수준으로 말이 안되게 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역설적으로 그 비효율과 비대함은 말이 안 될 정도이다.


예를 들어 과거 몸담았던 영화산업은 워낙에 영세하다 보니... 가난함에 근거한 효율화가 진행된 구조이다.

기획개발은 제작사에 속해있는 소수의 정규직, 일부 프리랜서들로 이루어져 진행되고, (개발비 개저렴. 심지어 요새는 검증된 원작만 사옴. 이게 싸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거지)

프로젝트가 투자를 받게 되면 실제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되고,

프로덕션 진행은 프로젝트에 기반한 계약직들로 뭉쳐모여 이합집산이 가능하다.

제품이 만들어 진 후, 온에어나 와이드릴리즈되기까지의 과정. 즉 게임식으로 따지면 퍼블리셔는 투자를 집행한 대기업의 정규직들이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도 일부 외주를 맡겨 (마케팅 대행 같은) 비용을 최소화한다.

물론 영화산업은 코로나 이전 십년동안 유례없는 호황기였고, 그래서 인하우스네 뭐네 하면서 자체제작과 같은 방법을 강구하며 비대해졌지만 뭐 이건 게임에 대면 귀엽다못해 찌질한 수준이다.


게임은 완전 거꾸로의 엄청 무거운 시스템이다.

엄청 비대한 조직이 비대하게 전체 인하우스가 그 월급을 받고 기획개발부터 출시까지 전체 과정을 움직이는 구조다. 기획개발만 비대한게 아니라 거기에 사업이네 뭐네 하면서 덕지덕지 더 붙어있고

차피 이 인건비 5천억 굴려서 3조 버니까 '괜찮았던'거다.

심지어 정치가 판치는 우리회사의 경우 더 쓸데없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머릿수가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대충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컨셉인듯. (노동자를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뭐 하는 줄 알고 왔는데 피피티질이나 오며 현타올 사우님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만 전할 뿐.)


자 그래서 일부 발빠른 얍쌔비 회사들은 이걸 자회사 분리를 통해 스튜디오화 시키고, 퍼블리싱 위주의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마치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처럼 재무쟁이가 펜대만 굴려서 오옷 개효율 이러면서 고안해낸 거다. 시스템의 완성은 사람이다. 산업과 제품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으면 이건 그냥 허울일 뿐이고 쓸데없는 프로세스만 자가증식시켜 구성원들을 속박시키기나 할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재무재표는 개선될 것이고 인건비는 줄어들 것이다.

지금 하는건 딱 이정도의 칼질이다.

그 어떤 인사이트도 없다.

내가 게임을 정말 사랑했으면 가슴이 미어졌을 것 같다. 회사가 너무 괘씸해서.


하지만 난 나갈거니까, 그리고 그냥 회사 뿐 아니라 삼전도 그렇고 대한민국 전반적으로 본질에 대한 고찰은 없고 땜질식으로 엉뚱한 사람만 책임지는 그 행태가 너무 킹받아서 약간 감정만 격해진다.


저 비대해진 시스템에서 회사에 빨대 꽂아서 능력도 없는게 20년 호강한 주제에 라떼는 시전하면서..

우리회사에만 있는거 아니잖아.

그런게 열이 받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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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나 분사되는거야 마는거야 빨리 알려죠라 휴직 더 때릴지 말지 결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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