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걸으면 돼, 엄마는

(남의 시간을 차지하고 싶지 않았어)

by kerri

>>엄마가 된 나에게도, 아픈 노모가 있다.
노모는 자꾸 작아진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는 걸 보면,
이제는 나보다 내 눈치를 더 본다.
나는 그게 가끔 서글프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닮아가는 내가 조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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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걸으면 돼, 엄마는>



오늘도 병원을
바쁜 딸이 함께 다녀간다

집에 도착도 하기 전에
나는 얼른 말했다
“그냥 저 앞에서 내려줘”

그러자
“엄마 진짜 왜 그래!
집 앞까지 가야지.”
잔소리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그 말에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너 바쁠 텐데ᆢ"
작은 소리로 삼켰지만

그래도 결국
집 앞까지
데려다주더라

안전벨트를 풀면
언제나처럼
고맙다, 미안하다
두 말이 꼭 따라붙는다

딸은
"또 시작이야, 엄마가 남이야?"
한숨 섞인 눈빛으로
나를 본다

사실 나도 안다
그 말이 다 사랑이라는 걸
그 짜증과 답답함 속에도
내가 있다는 걸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작아졌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딸의 눈치를 보고
딸의 기분을 살핀다

어릴 적
엄마만 찾던 그 아이와의 사이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을까

나는 그냥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아픈 몸으로
남의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딸이 “괜찮다”라고
덤덤히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만 받는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란
그 정도면 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