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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Sep 30. 2022

아큐를 통해 들여다 본 중국

『아큐정전』 을 읽고

전 문학 작품을 함께 읽을 모임을 만들었다. 고전문학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읽고 싶어 하는 장르다. 문학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보편성은 개별 독서취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고전이 주는 묵직한 울림을 직접 느껴보고 싶은 마음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읽어야 할 책들에 밀려 계속 미루게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수많은 고전 문학 작품들 중 우선 각 나라별, 시대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싶었다. 소위 '대 문호'라 일컬어지는 작가들의 작품들 말이다. 아큐정전은 그 연결선에서 선택되었다. 나에겐 중국문학을 생각할려치면  떠오르는 사람이 루쉰이다. 작은 꺼리를 덧붙이자면 어릴 때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동화책으로 보았던 아큐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 당시 나에겐 이상야릇한 머리 모양을 하고 옷 속에서 찾아낸 이를 콕! 콕! 씹어대던 아큐의 모습이 충격 그 자체였다. 나중에 이 작품이 중국 문학사에서 가지는 무게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큐는 이름도 성도, 출신조차 불분명한 젊은 남자다. 웨이주앙에 거주하지만 그에겐 집이 없다. 동네 사당에서 임시거주하고 있다. 하루하루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때문에 하루 일거리가 없으면 그 날은 굶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겐 근거 없는 자존심과 배짱이 있다. 만사에 태평한 듯 하지만 작은 일에 분개하여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기도 한다. 주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침해당했을 때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 기준을 스스로 세우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그것이 곧 그에게 가치가 된다. 여하튼 그는 살면서 배워온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올바른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혹은 그 사실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아큐는 부잣집 하녀를 희롱한 죄로 동네에서 고립된다. 동네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진 그는 성내로 들어간다. 거인어른 댁에서 물건 빼돌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그리고 다시 웨이주앙으로 돌아온다.


내에서 성공하여 돌아온 듯 한 아큐는 일정 기간 동안 웨이주앙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는다. 당시는 혁명의 분위기가 지역의 말단부까지 스며들던 시기였다. 원래 아큐는 혁명당을 반역이라 여겨 증오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혁명당이 거인어른마저 겁먹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동경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혁명당 행세를 하는 아큐를 동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에 아큐는 혁명당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누리는 정신적인 충만감에 비해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그는 여전히 가난하고 배고픈 신세다. 그는 혁명당임을 과시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변발을 틀어올려본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그가 기대했던 반응은 없었다. 이번에는 혁명당 사람들과 친해지길 소망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큐는 혁명당 사람들을 만날 수도, 접촉할 수조차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 거주지조차 불분명한 그였기에 사회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집안은 물론 지역사회의 일원도 아니었다. 아큐는 짜오씨네 강도 사건이 일어난 후 잡혀 들어간다. 평소에 그가 보여주었던 언행으로 인해 혁명당으로 오인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비슷한 시기에 그가 짜오씨네 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아큐 자신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혁명당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록 수감되었지만 그의 눈을 통해 보이는 변화와 몸으로 체감되는 사실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감옥이 사당보다 조금 못하다는 사실로 조금 불안해 할 뿐이다. 오히려 혁명당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위태로운 자신의 운명을 깨닫지 못한다. 조리돌림 당할 때 군중들이 뿜어내는 살기어린 눈빛을 보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인식한다. 그것은 마치 어렸을 때 보았던 굶주린 늑대의 눈빛과 같았다. 처음으로 그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야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한다. 경멸과 위협과 역겨움으로 가득했던 그것을 아큐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응대해 왔다. 얼떨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큐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아큐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왜 총살당했는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죽음의 과정에서 참수만큼 구경거리를 주지 못하고 총살로 끝난 것을 불만스러워 할 따름이다.


아큐정전이 쓰일 당시 중국은 연이어 일어나는 근대화 운동들이 교차되던 혼란한 시기였다. 소설은 중국의 무지랭이 민초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진 것 없이 배짱과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아큐는 그 시대 중국의 모습인 듯하다. 그들만의 혁명이 민중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거인어른과 짜오어른으로 묘사되는 구세력들, 그들만의 혁명을 꿈꾸는 신세력들, 그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갈팡질팡하는 일반 민중들, 세 가지 범주의 사람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 아큐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이 안고 있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지키고 살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신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지,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진짜 가치를 찾아야 한다. 아큐처럼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한 순간 허황되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2022.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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