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목이 꺾이다. 그래도 말을 못하니 괜찮아
마차가 있다.
트럭이 많지 않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마차는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말은 웬만한 짐은 거뜬하게 운송할 수 있는 상업용 수단으로 주인에겐 귀한 재산이었다. 비포장 흙길이나 산길을 넘어 오일장 장사꾼 짐을 날라주고 벽돌과 같은 공사 자재를 운반해 주었다. 소는 말보다 힘이 더 세지만 느린 걸음으로 인해 기동성이 떨어져 주로 논밭의 경작에 활용되는 농경용이었다.
짐을 실어 나르는 대부분의 말은 정확히 말하자면 노새, 당나귀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종류들을 말로 통칭하고자 한다. 노새는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 이뤄진 잡종으로 말에 비해 체격이 작지만 힘이 세고 지구력이 좋다. 말과 노새, 당나귀, 조랑말 등은 각기 체격이 다른데 수송용으로 많이 쓰이는 노새의 경우 30~40kg의 짐을 등에 싣고 하루 30km 정도 다니고 수레를 끌고서는 350kg 까지도 가능하다.
마부가 말을 때리고 있었다. 그 장면이 충격이었기에 웬만큼 사실 묘사가 가능하다. 공사장 인근의 시멘트 포대를 실은 마차였다. 무거운 짐이 실린 마차를 끌지 못하자 주인은 삽자루로 말의 옆구리를 세게 내리쳤다. 말은 버둥거리며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마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매질에 말은 머리를 흔들며 마차를 끌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헛발질만 할 뿐이고 주인의 신경질적인 매질은 거칠어졌다.
충격과 공포, 분노에 몸이 얼어붙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초등학생 시절의 필자가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고 저 마부에게 벌이 내려지길 바라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집으로 향했다.
말은 거의 유일하게 인간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가축이다.
암행어사가 소지한 마패는 말을 바꿔 탈 수 있는 증표이기도 하다. 장거리에 지친 말을 계속 탈 수 없으므로 지정된 곳에서 말을 바꿔 타는 것이다. 필자의 고향에는 역리(驛里)라는 곳이 있다. 말을 대기시켜 바꿔 탈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역(驛)이라는 글자처럼 정거장의 역할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은 고대부터 일찌감치 승용, 군마(軍馬)의 역할을 해 왔다.
말은 사람 3~5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감정이 풍부하고 고집이 세지만 온순하다. 400~500kg 피지컬에서 나오는 파워와 빠른 속도, 날렵함으로 전쟁에 가장 많이 동원된 가축이다. 차가 못 다니는 산길, 좁은 험로에 전시 보급품이나 무기 등을 운반할 때도 그 역할을 했다.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만큼 희생도 많다.
속도를 중시한 칭기즈칸의 몽골 기병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동부, 러시아 등을 점령한 적도 있다. 서부영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기병대이다.
제주도의 승마체험장은 여행코스이다. 주로 경마장에서 퇴역한 말이 승마장에서 관광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주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 불쌍하다며 측은해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나도 그 측에 속한다. 성인들은 말을 타면서도 그런 생각 한번쯤 했을 것이다.
단체로 몇 번 승마장에 갔을 때도 말을 타지 않았다. 같은 코스를 일 년 365일 무표정하게 돌고 도는 저 생명체를 돈 몇 푼 내면서 타고 싶지 않았다. 승마장 직원들은 몇 천 원에 당근 몇 조각을 내놓으며 말의 복지를 위한 것이니 구매해 달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말이 우두커니 묶여 있는 것보다는 저렇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말을 때려야만 동물 학대는 아닐 것이다. 내가 유별 나긴 한 것 같다.
드라마 한 장면을 위해 치명적 부상을 입고 고통 속에서 죽어 간 말이 있다.
2021년 KBS 사극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한 마리 말의 생명이 어이없이 사라졌다. 주인공이 말에서 낙마하는 사실적 장면을 위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달리게 한 뒤 줄을 잡아당겨 강제로 넘어 뜨으렷다. 말은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고 목이 부러져 사흘간 고통 뒤에 폐사되었다.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 말 못 하는 짐승의 생명이 고통 속에 가 버렸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가능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이 짐승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끌려 와 훈련된 대로 힘차게 달리다가 왜 넘어지는지 모른 채 목이 꺾어졌다. 이런 슬프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동물을 상업용으로 인식하고 생명윤리에 대한 정서나 양심이 몰각된 짓이다.
시민단체, 유명연예인, 동물보호단체 등 여론이 분노하자 국회는 관련 법안을 내놓았고 농식품부는 출연동물 안내지침 등 가이드라인 개발에 나섰지만 지지부진하다가 지금은 둘 다 폐기된 상태이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같은 일이 반복될 때까지 다시 무심해진다.
2024년 이 사극드라마 제작진은 동물학대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았다.
유명 관광지에는 말마차를 운행하는 곳이 많다. 꽃으로 마차를 장식하여 꽃마차로 불리기도 한다.
딸들이 어렸을 때 여름휴가로 경포대에 갔는데 그곳 즐비한 상가 도로에 꽃마차가 따각 따각 말발굽 소리를 내며 무더운 여름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호기심을 가진 딸들에게 말이 힘드니까 저런 건 타지 말자고 하니 이내 수긍하였다. 이런 꽃마차에 대해 시민, 단체 등에서 동물 학대를 제기하며 민원을 내기도 하나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말 주인의 생계 문제라고 한다.
다행인 것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져서 요즘은 꽃마차를 타는 관광객이 많지 않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수년 전 뉴욕의 관광명소 센트럴 파크에서 관광용 마차를 끌던 말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주인은 채찍질을 하며 말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말은 버둥대며 일어서려다가 무릎이 휘어지며 다시 쓰러졌다.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와 얼음물을 붓고 견인차에 실려 마구간으로 실려 간 그 영혼은 몇 달 뒤 안락사 되었다. 시에서 조사해 보니 이 말은 26살이고 영양실조로 저체중 상태였다. 말의 수명이 25년이라는데 지독한 학대를 당해 온 것이다.
동물학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고 뉴욕 맨해튼 지방 검찰은 말에게 적절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고문 및 상해를 가한 혐의로 말 주인을 기소했다.
말 주인은 검찰에서 뻔뻔스럽게도 자기처럼 말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 금년 7월, 배심원단은 말의 주인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관념적으로 재량 하는 사법의 불공정, 비타당성을 보여 준 미국의 사례가 될 것이다. 살인을 해도 10년, 15년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내보내는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생각난다.
동물권(動物權)은 동물이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인간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개념의 완전한 실천을 원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선언적 의미가 강하고 현실 세계에서 바람직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동물의 고기를 섭취하여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이고 자연의 섭리라고 본다. 모든 동물이 자연 수명을 다하고 먹이사슬, 약육강식이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을 경우 자연은 카오스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구는 황폐하고 비좁아진다.
농경, 이동, 운송 등 동물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거나 부산물을 얻고, 동물을 키우며 기쁨과 행복을 얻는 선순환(善循環)은 이상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동물도 밥값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학대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아주 많이 실현될 수 있다. 현실적이고 다각적인 시스템 마련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면 이슈가 되다가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생생히 살아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