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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 데려가 주세요

청춘의 영혼이 애절하다

by 김선웅

어머니, 날 데려가 주세요


소먹이 풀 베니 지게에 한 짐

저무는 석양빛이 얼굴에 가득

땅거미 내려앉은 토담집 굴뚝에

밥 짓는 하얀 연기 별이 뜨려 한다

흙손 털고 고봉밥 깡마른 아버지

호롱불 밑 바느질 졸음 겨운 어머니


떡갈나무 돌무더기 내가 있는 이곳에

오소리가 다녀가고 산까치가 쉬어갔다

밤이 깊어 벼랑 끝 부엉이 울음

풀섶 귀뚜라미 달빛 젖은 적막이여

울어도 울어도 밤이슬만 내려앉네


"어머니, 다녀올게요"가 마지막 인사

낡은 군복 입고 무심할 뿐 총질에

나는 왜 백골 되어 이곳에 누워있나

꼴망태 친구들아 이제 나를 잊으련가

어머니 무서워요 날 데려가 주세요


(시 해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든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저마다의 역사를 지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다 갖지도 못하고 생(生)의 역사를 짧게 마감하여 사(死)로 돌아가는 억울한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소년병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전쟁이 발발하여 많은 병력자원이 필요했고 급기야 고등학교에나 다닐 법한 아이들도 전선에 나갔다. 며칠 간의 짧은 훈련, 소년병들에게 버거운 무겁고 기다란 M1소총으로 난생처음 어디인지도 모를 들판에서, 산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린 채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군복 상의 주머니에는 유서를 넣어 두고,

산화한 이 어린 병사는 깊은 산 골짜기에 묻히고 임시로 돌을 쌓아 표시해 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무덤은 기억에서 잊혀진다. 봄이 되고 여름을 거쳐 가을과 겨울이 되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속이다.

소년병의 영혼은 낯선 곳의 두려움과 고독, 그리움이 애절하다. 오가며 들르는 산짐승, 달과 별과 바람은 위안이 되지 못하고 설움과 적막을 더할 뿐이다.

넉넉치 않지만 소박한 고향과 이 세상 모든 것을 담은 어머니 품으로, 과묵하지만 대들보 같이 커다란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따로 있는데 죄 없이 꺾여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청춘의 원초적 귀소본능과 절규는 지금도 깊은 산 이제는 흐트러진 돌무덤에서 “나를 잊지 마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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