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녀석의 몸은 중간 부분이 테이프에 감겨 두 명의 남자에게 끌려 나갔다.
이십 삼 년 간 주방 옆 오직 한 곳에 고정되었던 녀석이 나갈 때 뒷모습은 세월의 먼지가 덕지덕지 했고 초라하기만 하다. 우리 집에 온 후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다.
건강했던 녀석은 얼마 전부터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더니 급기야 내부에 문제가 생겼고 서비스 기사는 너무 오래되어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진단했다.
낮이면 텅 빈 집을 혼자 지켰고 밤이면 불침번으로 작은 소리를 내며 가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존재이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녀석을 보내야만 했다. 마냥 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녀석이 있던 자리엔 더 크고 세련되며 당당한 모습에 기능이 추가된 새로운 녀석이 들어왔다. 이젠 이 녀석의 봉사를 받게 된다.
이 녀석은 “제가 더 많은 서비스를 해드리겠습니다” 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위세를 뽐낸다.
우리 집 냉장고 이야기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졸업식 노래의 구절이다.
때가 되면 자리를 물려주고 가야 한다. 영원한 자리는 없다.
고급스러운 사무실에 근엄했던 고위직의 의자에도 나중엔 다른 사람이 앉게 된다.
뒷물결은 앞물결을 쳐대며 앞으로 나간다. 그 뒷물결은 다시 앞물결이 되어 뒷물결에 밀려 나간다.
순환이 되면서 세상은 변화해 간다. 때가 되었을 때 다음의 자에게 역할을 넘겨 순환시키는 것은 질서이고 순리이다. 퇴장 후 그간의 실적과 역할이 희미해지고 잊히는 것은 서글프지만 계절의 바뀜처럼 시대의 조류는 막을 수 없다.
국산 자동차의 선구자 정주영 회장의 아들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고급화하며 세계 10위(2000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끌어올렸고, 손주 정의선 회장은 2025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를 달성했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독일, 일본차에 못지않다.
비록 쇳덩어리 몸에 플라스틱 내부, 전기 배선으로 이뤄진 냉장고지만 그 역할을 다한 것이 대견스럽다. 다만 쓸쓸히 실려 나가는 마지막 모습은 짠하기만 하다.
그 녀석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분되었을까?
무엇이든 자기 역할을 다 하고 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박수와 경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