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등산을 위해 집 부근 산본의 수리산을 향해 가는데 e-비즈니스 고교 앞 도로 복판에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있다. 그냥 놔두면 오가는 차량들에 사체가 심히 훼손될 것이 뻔해 이를 수습하여 수리산 초입 덤불 속에 낙엽으로 덮어줬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닭둘기, 유해조수라는 오명으로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산에 오르며 생각에 잠겼다.
비둘기의 수명은 10년 이상이라는데 저 녀석은 몇 년을 살았기에 저렇게 쓰레기처럼 그 생이 종결되었을까?
알에서 깨어나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점차 무리를 이루며 수년의 사계절 풍상(風霜) 속에서 저만치 성장했을 텐데 사람도, 새들도, 점차 가을의 자태를 채비하는 수목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아스팔트 위에 그 죽음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저 녀석은 고향이 어디일까? 삶의 영역이 이곳 산본이었을까? 수리산, 산본역 앞 중심상가, 아파트 단지가 녀석의 생활터전이었을까?
그 미물에게도 삶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태어나 어미와 떨어진 후엔 무리들과 교감하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풀씨도 먹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며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엔 어딘가에서 생존을 위한 본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널찍하고 환하여 하루치 먹이가 있으면 만족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면 ‘구구구~’하며 짝에게 구애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천부적 존재이유를 갖는다. 이유 없이 태어나지 않고 이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 세상, 이 푸른 지구는 인간의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준 새우깡을 먹으며 친구들과 머물렀을 산본역 앞 로데오거리에선 지금 가을 행사가 열리고 있다. 풍성한 먹거리 시장과 가수의 출연, 흥에 겨운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길 것이다.
그 녀석은 이런 축제가 열리는지도 모르고 떠났다. 누구도 그 녀석을 아는 이는 없다.
섭리(攝理)로 이 세상에 초대되었다가 저렇게 가버린 한 마리 비둘기의 막연한 죽음에서 생명의 의미와 존중함이 다시 생각난다. ♣